소란한 일상의 틈바구니 속에서 정신없이 부대끼다 보면 고요하고 여유로운 공간과 시간이 절실해지는 때가 온다. 그럴 때 많은 이들은 절에서의 하룻밤을 꿈꾼다. 수많은 계절이 지나도 변치 않고 언제든 고향 가는 마음으로 찾아갈 수 있는 장소임과 동시에 ‘고요’와 ‘휴식’의 의미를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곳. 계절이 바뀌면 계절이 바뀌는 대로, 자세히 살펴보면 볼수록 그 매력이 다양한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그곳에서 배종훈 저자는 “비슷비슷해 보이는 사찰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찾았다. 이후 한 달에 한 번, 카메라와 그림 도구를 챙겨 사찰 구석구석의 모습을 기록하러 떠난 지 벌써 2년이 훌쩍 넘었다. 약 30곳이 넘는 전국의 사찰을 다녀온 저자는 앞으로 100곳의 사찰을 방문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자꾸만 그가 절로 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절에서 저자는 어떤 풍경들을 마주하고 어떤 생각들을 눈에 담았을까?
배종훈
서양화가, 일러스트레이터, 만화가, 여행작가, 그리고 중학교 국어 교사.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며 바쁘게 살아가는 그는 낮에는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틈틈이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눈에 담은 것들을 그림과 글로 성실히 기록 중이다. 불교, 명상 등과 관련된 일러스트와 만화 작업을 17년째 병행하고 있다. 출간한 책으로는 『행복한 명상 카툰』, 『유럽을 그리다』, 『마음을 두고 와도 괜찮아』 등이 있다.
부처님 마음을 닮은 그곳
12 별이 쏟아지는 봄밤 공주 마곡사
24 소소하게 삶의 울림을 노래하는 절 파주 보광사
32 푸르고, 희고, 붉은 찰나의 시간 서산 개심사
44 붉은 꽃과 흰 별이 쏟아지는 절 구례 화엄사
54 바다를 마당으로 품은 절 양양 낙산사
66 가을처럼 푸르고, 붉게 익은 마음이 쌓인 곳 평창 월정사
78 시간이 눈처럼 소복소복 쌓인 절 부안 내소사
90 보이지 않는 모든 곳에 부처가 있다 남해 보리암
96 연꽃이 주렁주렁 달린 절집 화순 만연사
108 바다보다 더 넓은 가슴으로 안아주는 절 강화 보문사
118 흙과 바람, 바다를 펼쳐두고 사람을 기다리는 절 해남 미황사
130 푸른 하늘 위에 떠 있는 섬과 같은 절 봉화 청량사
138 산에서 만난 바다를 닮은 절 속초 신흥사
148 푸른 바람이 노래하는 절 영덕 장육사
156 마음을 고요하게 할 연못을 닮은 절 부여 무량사
164 미륵불을 기다리며 바닷속에 잠든 절 밀양 만어사
처마 끝 풍경이 내게 물었다
172 특별함이 없어 특별한 절집 서산 부석사
182 여전히 불국토를 꿈꾸는 땅 화순 운주사
192 느릿하게 마주하는 절정의 순간 순천 송광사
198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 강화 전등사
210 나를 흔드는 것은 결국 나 자신임을 알게 한 시간 원주 구룡사
220 빼곡하게 들어찬 마음 서랍을 비우는 절집 영주 부석사
230 나를 위로하는 시간이 흐르는 절 보은 법주사
240 수수하고 포근한 미소가 가득한 절 제주 관음사
250 없음으로도 충만할 수 있음을 깨우쳐주는 절 진도 쌍계사
262 혼자 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발견한 절에서의 하룻밤 경주 기림사
272 부처님이 사는 땅에서 보낸 하루 경주 남산 옥룡암
282 모든 것을 잠시 멈추고 바라보는 절 안동 봉정사
292 하얀 달이 하늘과 바다에 뜨면 오롯한 섬이 되는 절 서산 간월암
특별하지 않은 곳에서
발견한 특별한 것을 그림과 글로 담아내다
국어 선생님, 서양화가, 일러스트레이터, 만화가, 여행작가, 그리고 중학교 국어교사. 저자를 가리키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안 그래도 번잡한 세상, 1인 다역을 소화하면서 일상의 어떤 ‘틈’을 갈망하게 되었다는 그는 느리게 흘러가는 사찰의 곳곳을 저자 특유의 그림체로 기록하기 시작한다.
어떤 것을 오래 바라보게 되면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계단 옆 돌수반에 핀 연꽃의 문양, 햇빛의 움직임에 의해 시시각각 바뀌는 마애불의 표정, 석탑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자신의 원을 전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표정까지. 낮에는 낮의 고요함이 깃들고 밤에는 까만 어둠을 덮은 정적이 가득한 사찰의 풍경에 집중하며 저자는 차차 자신의 소란한 마음과 번잡한 생각을 비워내는 연습을 한다.
저자가 바라보는 풍경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절 구석구석의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또 하나는 꽉 차 있는 자신의 마음 서랍이다. 이런저런 계산들과 소란함으로 잔뜩 채워져 틈이 없어진 좁은 마음은 특별한 것 하나 없이 그저 고요함과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하나둘 비워져간다.
조금 더 느릿하게 흘러가는 절의 시간,
그곳에서 비춰본 마음의 풍경
1부 ‘부처님을 닮은 그곳’은 저자의 시선으로 보고 담은 절의 소박하고도 정감 있는 풍경을 성실하게 기록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사찰을 향해 가는 길에서 느낄 수 있는 계절마다의 아름다움, 처마 밑에 매달린 풍경이나 오래된 석물과 빛이 바랜 탱화, 절 마당에 자리 잡은 무영탑 하나, 소박한 문구가 새겨진 돌기둥 등 절 곳곳에서 발견한 것들, 그리고 절이 자리 잡은 곳 주변의 자연 풍광까지 “부처님의 마음을 닮은 사람들이 사는 곳”에 대한 애정 어린 기록들로 가득하다.
2부 ‘처마 끝 풍경이 내게 물었다’에서는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그 모든 것들에 소란한 마음을 비춰보는 사색적인 글들을 모았다. 절에서 마주한 풍경들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결국 자신의 마음 안으로 향한다. 한구석에 자리한 불확실성, 불안감, 크고 작은 슬픔들, 휴식에 대한 갈망 등 다양한 모습들로 제각기 쌓인 마음을 풍경에 비춰보며 그는 점점 그 특별할 것 없는 풍경들에 마음의 온기를 느낀다. 자신이 일상에서 그토록 아파하고 조급해했던 문제들에서 잠시 떨어져 그것을 바라보며 잠시라도 ‘작은 나’가 아닌 ‘큰 나’가 되어보기도, 무너져도 다시 쌓고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를 얻기도 한다.
이 책은 그가 바라보고 기록한 절의 풍광과 비슷하다. 특별할 것 없이 비슷비슷한 절의 모습들에서 특별함을 발견한 그처럼, 독자들은 그의 글과 그림을 감상하며 점점 일상의 시간과는 다른 속도로 흘러가는 절만의 특별한 매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 온통 소란한 것들로 가득차 있는 일상에 조금의 위안을 얻고 싶거나 작더라도 아주 조그만 틈이 필요한 모든 독자들에게 <처마 끝 풍경이 내게 물었다>는 느린 듯 밀도 높은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