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퉁불퉁한 삶의 여로에서 저자를 일깨워준 스승과 벗이 되어 주었던 수행자 32명의 이야기가 때로는 다정하게, 때로는 매서운 경책으로 다가온다.
먼발치에서 뵙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었던 성철 큰스님과 ‘절구통 수좌’로 불렸던 법전 큰스님, 불문(佛門)에 들어온 저자를 이끈 은사 월암 스님을 비롯한 스승들의 가르침이 귓가에 생생하다. 또 중노릇을 배우던 학인 시절부터 함께 울고 웃으며 말없이 귀감이 된 도반들과의 지중한 인연이 있었기에 흔들리지 않고 수행의 길을 걸어올 수 있었다. 그들이 곧 스승이자 도반이자 선지식이었다.
이 책은 32명 수행자 각자에게 표하는 저자의 오마주이자,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저자 스스로 40년 수행길을 돌아보는 점검이기도 하다.
문득 돌아보니, 그들은 그곳에서 늘 저자의 삶을 응원하며 서 있었다.
그래서 현진 스님은 말한다.
“그리운 이에게는 자주 안부를 물어라. 생을 사랑하고 축복할 시간이 많지 않다.”
현진 스님
십 년째 산사의 뜰을 가꾸며 수행하고 있는 현진 스님은, 오천여 평의 부지에 꽃과 나무를 심어 농사지으며 산사 생활의 고요와 기쁨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꽃과 바람이 전하는 깨달음이 가득한 스님의 정원에는 삶의 진리와 감사의 향기가 넘친다.
월간 「해인」 편집위원과 「불교신문」 논설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펴낸 책으로 『수행자와 정원』, 『꽃을 사랑한다』, 『좋은 봄날에 울지 마라』, 『스님의 일기장』, 『산 아래 작 은 암자에는 작은 스님이 산다』, 『삭발하는 날』, 『번뇌를 껴안아라』, 『언젠가는 지나간다』, 『삶은 어차피 불편 한 것이다』, 『오늘이 전부다』, 『두 번째 출가』, 『산문, 치 인리 십번지』, 『잼있는 스님 이야기』 등이 있다. 현재 충청북도 청주 마야사 주지를 맡고 있다.
1장 앞섬과 뒤섬이 어울려서 지금
가야산의 거목 성철 큰스님
공부에는 추상같았던 혜암 큰스님
절구통 수좌라 불렀던 법전 큰스님
언제나 자상하셨던 나의 스승 월암 스님
고고한 수행자 여연 스님
백세지사(百世之師)의 어른 혜남 스님
선승의 향기 함현 스님
신심 제일 관암 스님
삼무(三無)의 수행자 원철 스님
우리 시대의 은자(隱者) 설곡 스님
영원한 운수납자 청암 스님
결코 시샘할 수 없는 수행자 오성 스님
지치지 않는 열정 성원 스님
소탈한 여백을 지닌 도영 스님
운동을 수행처럼 하는 상법 스님
심 목사라 불리는 향산 스님
2장 따뜻한 눈길 행복한 동행
감성의 목소리 성전 스님
잔잔한 가르침을 주는 불굴 스님
미소가 아름다웠던 성안 스님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한 수보 스님
달콤한 인생을 살고 있는 설몽 스님
무궁무진한 이야기 보따리 지묵 스님
노래 잘 부르는 태경 스님
지금도 그리운 이 덕문 스님
눈웃음이 아름답던 혜우 스님
묵언하며 효심 깊은 환기 스님
바람 같은 수행자 동은 스님
만화 즐겨 보는 낭림 스님
팔방미인의 수행자 도일 스님
열정과 탐구의 소유자 도후 스님
도반이라는 이름의 선지식 일선 스님
산사의 정원을 가꾸는 여경 스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도를 높이는 현진 스님의 따뜻한 문장
“문득 돌아보니, 늘 그곳에서 나의 삶을 응원하고 있었다.”
“좋은 도반, 좋은 선지식, 좋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것은 수행의 전부를 완성한 것과 다르지 않느니라.” <잡아함경>
불교계 대표 문사(文士) 현진 스님이 40여 년의 출가 생활 동안 만난 선지식과 도반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이웃들의 표정과 태도가 수행길의 죽비였고 선지식이었다.”는 현진 스님은 “지금껏 여러 벗들이 있어 수행 여정이 고립되거나 쓸쓸하지 않았으며 그들로 인해 인생수업이 더욱 알차게 되었다.”고 말한다.
큰스님의 추상같은 가르침
먼발치에서 뵙기만 해도 경책이 되는 스승이 있다. 학인 신분임에도 해인사 선방에서 일주일간의 용맹정진에 참여했을 당시, 성철 큰스님은 불시에 수행을 점검하며 “밥버러지 안 될라 하면 졸면 안 되는 기라!” 하며 추상같은 가르침을 내렸다. 큰스님께 받은 ‘마른 똥막대기’라는 숙제를 지금껏 풀지 못하고 있다는 현진 스님은 “미혹의 길을 헤맬 때 바른길을 안내해 주는 준엄한 스승을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축복.”이라고 회고한다.
해인사 원당암에서 후학을 지도하셨던 혜암 큰스님과의 인연도 지중하다. 철없던 시절, 불쑥 찾아가 서투른 질문을 던졌음에도 일일이 응대하며 공부 분상을 논하셨던 혜암 큰스님. “수행자가 공부하다가 죽는 것은 가장 값진 죽음.”이라며 죽비를 내리치시던 큰스님이 계셨기에 수행의 길이 더욱 빛날 수 있었다.
정진에 들면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해서 ‘절구통 수좌’라 불렸던 법전 큰스님, 불문(佛門)에 들어온 저자를 이끌어 주신 은사 월암 스님, 경안(經眼)을 열어 주고 올바른 수행자로 인도해 주신 다정한 스승 혜남 스님의 가르침도 가슴 깊이 남아 있다.
나를 성장시킨 지기지우들
40년 출가 세월 동안 현진 스님을 성장시킨 것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저자의 삶 속으로 들어와 만나고 헤어졌던 도반들이다. 늘 배고프던 학인 시절, 몰래 사하촌에 내려가 함께 자장면을 사 먹고, 안거철 선방을 옮길 때마다 물어물어 찾아가 정담을 나누었던 소중한 인연들. 특히 현진 스님이 인생에서 본받고 싶은 스님으로 꼽는 ‘신심 제일’ 관암 스님, 종립선찰 봉암사 주지를 지낸 수좌이자 찬불가 보급을 위해 도솔합창제를 개최하고 있는 함현 스님, 제주 불교를 이끌며 ‘남성원 북오성’으로 불려던 성원 스님과 오성 스님, 토종벌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 직접 양봉을 하는 설몽 스님, 다음 생에도 보리수하(菩提樹下)에 만나 서로 이끌어 주는 다정한 도반으로 지내고 싶다는 동은 스님, 도반이지만 수행의 지남(指南)으로 삼는 스승이라 할 일선 스님 등 함께 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도반들의 다채로운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현진 스님과 함께 불교계 대표적 문장가로 손꼽히는 원철 스님, 성전 스님과의 인연도 흥미롭다. 인물 없고, 기운 없고, 군살이 없어 ‘삼무(三無) 수행자’라 자처하는 원철 스님은 사실 학식 있고, 필력 있고, 감성 풍부한 ‘삼유(三有) 수행자’라며 “청량한 지성과 온화한 가슴을 동시에 지닌 우리 교단의 대표적 학승.”으로 소개한다. 20년 가까이 지방과 서울을 오가며 방송 포교에 매진하고 있는 성전 스님은 “언어의 향기를 미소로 전하는 수행자.”라며 “법문을 글 쓰듯 전달하는 그의 재능에 은근 감탄한다.”고 부러움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리운 이들을 그리워하다
이제는 더이상 볼 수 없는 이들에 대한 그리움도 진득하다. 시서화에 뛰어나 ‘삼절(三絶) 화상’으로 불렸던 설곡 스님에 대해선 “사대(四大)는 비록 자연으로 돌아갔으나 스님이 남긴 보장금언(寶欌金言)은 후인들에게 큰 그늘이 되어 오래오래 삶의 지표가 될 것.”이라는 조사를 바친다. 해인사 고려대장경 책임자로 재직했던 성안 스님은 “지란지교 같았던 수행자.”로 추억한다. 현진 스님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대장경에 대한 그의 열정은 금생의 인연이기보다는 전생부터 해 왔던 일이 아니었나 싶다.”며 “그가 보여 준 왕성한 탐구정신은 고려대장경 보존과 전승에 소중한 업적이 되었다.”고 성안 스님의 생을 기렸다.
문득 돌아보니, 지기지우들은 그곳에서 늘 현진 스님의 삶을 응원하고 있었다.
현진 스님은 말한다.
“40년 출가 생활에 도반들과 수도자들이 있었기에 중심을 잡고 이 길을 걸어올 수 있었다. 결국 그분들이 나의 큰 스승이자 나를 공부시켜준 교육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