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움켜쥔 것들을 놓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 내느라 바쁜 우리에게 월암 스님이 묻는다.
“그대는 죽었는가, 살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이 바로 월암 스님의 『전등수필』 속에 있다.
『전등수필』은 우리 시대의 참된 수좌(首座)로 한국불교의 선맥(禪脈)을 잇고 있는 월암 스님이 『전등록』과 『선문염송』 등 여러 ‘전등사서(傳燈史書, 선사들의 법어와 선문답, 전법내력을 모아 놓은 책)’를 열람하며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 글귀를 엄선해 108편의 수필 형식으로 엮은 책이다. ‘전등사서’에서 가려 뽑은 이야기에 월암 스님 특유의 간결하고 담박한 해설과 법문이 더해진 이 책을 두고 스님은 ‘전등수필’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창안했다.
그동안 선 수행과 관련된 여러 저서를 꾸준히 선보여 왔지만, 월암 스님의 이번 신작은 그래서 조금 특별하다. 스님이 오랜 시간 동안 한국과 중국의 제방 선원에서 정진하며 참구(參究)한 바를 새로운 관점에서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곧 선(禪)은 관념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문제를 참구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한 편 한 편 쉽고 재미있게 읽히면서도 깨달음과 여운은 깊다.
『전등수필』은 부처님과 역대 조사들의 가르침에 얽힌 옛이야기를 바탕으로 써 내려간 책이지만, 결국 ‘지금, 여기’에 대한 삶의 진리를 말하고 있기에 오늘날 우리에게 전하는 바가 크다.
*선덕(禪德): 참선한 기간이 길고 지혜와 덕을 갖춘 선승에 대한 존칭
불이 월암 不二 月庵 스님은 1973년 경주 중생사에서 도문 화상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해인사에서 고암 화상을 전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한 후 중국과 한국의 제방 선원에서 수선 안거하였다.
전국선원수좌회 의장을 역임하였으며 벽송사와 기기암 선원장 소임을 지냈다. 지금은 문경 한산사 용성선원에서 정진하며 사부대중 수행공동체 ‘불이선회(不二禪會)’를 이끌고 있다.
저서로는 『간화정로』, 『돈오선』, 『친절한 간화선』, 『선원청규』(주편), 『좌선요결』, 『니 혼자 부처 되면 뭐하노』, 『생각 이전 자리에 앉아라』, 『선율겸행』 등이 있다.
한 생각에 걸림이 없으면
어디서나 해탈이다
얻음도 잃음도 없다 ❘ 사양하면 남는다 ❘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을 때 ❘ 오직 할 뿐 ❘ 두 번째 화살 ❘ 생사즉시 ❘ 봄빛에 꽃 피네 ❘ 경계를 대하여 ❘ 성품은 작용하는 데 있다 ❘ 앙상한 고목 ❘ 불꽃 속의 연꽃 ❘ 원한을 돌이켜 ❘ 살인도와 활인검
해가 뜨고 달이 져도
허공은 그대로이다
구름은 하늘에 있다 ❘ 본래 생사가 없다 ❘ 호떡 내기를 하다 ❘ 가을바람에 온몸이 드러나네 ❘ 손에 신 한 짝 들고 ❘ 광명이 홀로 빛나서 ❘ 가도 가도 그 자리 ❘ 간택이 허물이니 ❘ 흰 구름 걷히면 청산 ❘ 진정한 출세 ❘ 이목구비경 ❘ 부엌의 세 문 ❘ 우두백조
너무 가까이 있으면
보이지 않는다
물빛 암소 ❘ 말할 수 없다 ❘ 법연사계 ❘ 열반은 빚을 갚는 것이다 ❘ 부처를 만나면 ❘ 발아래를 살펴라 ❘ 죽어야 산다 ❘ 밤마다 부처를 안고 ❘ 나귀가 우물을 쳐다보면 ❘ 법식쌍운 ❘ 뿌리 없는 나무 ❘ 눈을 져다 우물을 메우되 ❘ 불착과 수순
꿈을 꾸는 사람이 바로
꿈 깨는 그 사람이다
깨어 있는가 ❘ 작년 가난은 가난이 아니다 ❘ 원융무애 ❘ 수류화개 ❘ 놓고 또 놓아라 ❘ 풀잎마다 조사의 뜻이 ❘ 무심이 도다 ❘ 참부처는 안에 있다 ❘ 자성견과 수연견 ❘ 즉색즉공 ❘ 지옥이 있습니까? ❘ 나귀 매는 말뚝
알지 못함은 금과 같고
알아 얻음은 똥과 같다
백척간두에서 나아가라 ❘ 어디서나 주인 ❘ 말에 떨어지다 ❘ 오직 모를 뿐 ❘ 허공의 눈짓 ❘ 자가보장을 찾아라 ❘ 앎이라는 한 글자 ❘ 점심을 먹다 ❘ 눈 가득 푸른 산 ❘ 불락인가, 불매인가 ❘ 제불통계 ❘ 큰일과 작은 지조 ❘ 말과 침묵 ❘ 선도 악도 생각하지 말라
부처와 조사는 오직
그대만을 위해 법을 설한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 마라 ❘ 조주고불 ❘ 스승 사師 ❘ 오온 본래 공 ❘ 온몸이 밥 ❘ 은혜 갚는 법 ❘ 생사 바다 넓으니 ❘ 빈손에 호미 들고 ❘ 도둑질도 사람이 한다 ❘ 선분별과 수분별 ❘ 고금에 변치 않는 도 ❘ 삼생성불 ❘ 사자상승 ❘ 무정이 설법한다
그림자를
따라가지 마라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곳 ❘ 천 개의 눈 ❘ 깨달음과 실천행 ❘ 듣는 성품을 들어라 ❘ 동산삼로 ❘ 소가 창살을 빠져나가다 ❘ 주인 있는 사미 ❘ 탄생왕자 ❘ 천하를 훔치다 ❘ 수행의 다섯 가지 조건 ❘ 죽비를 들고 ❘ 참된 출가란 ❘ 이 몸 이전의 몸 ❘ 청정본연하거늘 ❘ 내생으로 이어지는 이유
거울에 비친 모습은
돌아서서는 볼 수 없다
조계의 한 방울 물 ❘ 부처와 중생이 없는 세계 ❘ 망념불기 ❘ 마음 닦는 일
병 속의 병아리 ❘ 아미타불은 어디 있는가 ❘ 누가 선사인가 ❘ 가장 급한 일 ❘ 참구를 종지로 삼다 ❘ 모두가 보리이다 ❘ 일대사인연 ❘ 온몸이 입이 되어 ❘ 무위정법의 향 ❘ 업보는 있으나 짓는 자가 없다
‘삶이 곧 수행’이라는 가르침을 몸소 실천해 온 월암 스님(문경 한산사 선덕)의 법문은 간결하고 담박하다. 때로 투박하게 빚은 옹기가 질박한 아름다움을 주듯, 월암 스님의 법문은 유려하지는 않지만 다정하고 깊은 울림을 준다. 이 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선 수행자의 예리한 직관과 일침은 서슬 퍼런 죽비 소리보다 명쾌하게 들린다. 그래서 월암 스님의 문장은 친절하지 않은 듯 친절하다.
제자와 호떡 내기를 하는 조주 선사의 이야기부터, 땔나무가 없다며 법당에 있던 목불(木佛)로 불을 지핀 단하 선사의 일화, 『금강경』에 달통한 덕산 선사가 노파의 질문 한마디에 말문이 막혀 버린 사연, “마주치는 모든 것을 죽여야 한다.”라고 일갈하는 임제 선사의 다소 과격한 법문까지….
『전등수필』은 부처와 여러 조사의 깨달음과 가르침을 얻을 수 있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전등사서’로 전해지고 있지만 옛 조사들에 관한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일화들은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한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무분별한 수용만이 난무하다. 타인과의 소통은 물론 자기 자신과의 대화, 즉 사유마저 부족한 시대이다. 『전등수필』은 사유와 소통이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이른바 ‘틈’을 주는 책이다. 저자는 깨어 있고 열려 있는 삶을 통해 공감 · 공명 · 공존의 불이(不二) 세상을 만들어 가는 선(禪)적 해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저자의 바람처럼 『전등수필』을 통해 출가 수행자들은 핵심 종지(宗旨)에 대한 정견(正見)을 갖출 수 있고, 재가 수행자들은 귀감이 될 만한 언구(言句)를 삶의 지침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전등수필』을 읽는 모든 이들이 곁에 두고 오래 되새기기 좋은 108편의 이야기를 통해, 108배를 하며 번뇌를 씻어내듯 흐트러진 마음을 한곳에 모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