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기록을 바탕으로 불교가 인도에서 직접 가야로 전해졌음을 추적하였다. 서기 48년 고대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의 가락국 도래와 파사석탑에 대한 기록은 해양을 통해 불교가 직접 전래되었다는 남방불교설의 시작점이 된다.
또한 국내 허황옥 루트인 ‘허황옥 신혼길’ 3일간의 여정을 최초로 밝혔다. 이는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의 실체를 규명하는 작업임과 동시에 역사에서 사라져 묻혀버린 초기 가야사 복원의 실마리가 된다.
저자 도명 스님의 가야불교 찾기는 가야사 전반으로 확장되어 가야사 정립과 가야불교 복원이라는 명제 아래 우리 역사 바로 세우기로 이어지고 있다.
도명道明 스님
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 김해·밀양 여여정사 주지.
가야문화진흥원 발족 후 가야불교 복원 및
가야 문화 선양에 앞장서고 있으며,
직접 사료 원전을 해석하고 발로 뛰어 밝혀 낸
가야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 성과들은
가야사의 변천 과정과 현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현재 유튜브에 <아는스님TV> 채널을 개설해
역사적 사실들을 공유하며 가야불교 찾기의 불씨를 피우고 있다.
들어가며
추천사 1. 가야불교와 한국불교에 대한 새로운 이정표
추천사 2. 가야불교의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
서문
잃어버린 역사, ‘가야’ ‘가야불교’ 되찾기
가야불교의 사실성
1. 가야불교의 시작
가야불교가 자란 토양, 가야
『삼국유사』, 가야불교 찾기의 시작
일연 스님의 본래면목
2. 가야불교의 얼개
기록으로 읽는 가야불교
가야불교의 인물
3. 가야불교의 전래 경로
허황옥 루트의 국외 경로
국내 ‘허황옥 신혼길’의 새로운 발견
허황옥 신혼길을 완성한 망산도의 재발견
4. 가야불교의 증거
가야불교의 흔적
연기사찰
5. 가야불교의 가치와 연구
통불교로서의 가야불교
선명해진 가야사 - 가야불교의 가치와 전망
가야불교 연구
에필로그
나와 가야불교 활동
새로운 인연들과 도약의 토대를 다지다
선각자들을 만나다
가야불교를 넘어 가야사로 지평을 넓히다
탐색의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다
가야불교, 그 끝나지 않은 여정의 시작
맺음말
가야불교에 관한 최초의 종합 기록
; 한국불교는 가야불교부터 시작이다
우리 고대사에서 520년의 역사를 가진 가야에 대해, 그 서술은 짧다. 최초 가락국이 세워진 이후의 유적과 유물 등 사료 발굴이 많지 않아 연구가 부족한 이유도 있지만,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과 수로왕비 허황옥에 관해 신화나 설화로 간주해서 그 실체를 의심하고 가야의 초기 기록들을 온전히 인정하지 않는 역사학계의 인식도 이유가 된다.
경남 김해 여여정사 주지이자 가야불교연구원 2대 이사장을 맡고 있는 도명 스님은 가야불교를 부정하는 일부의 현실을 접한 것이 계기가 되어 수년 동안 문헌사료를 바탕으로 원전 분석과 현장 답사 등 가야불교와 가야사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해 왔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한반도의 고대 역사, 특히 가야사가 상당한 부분에서 왜곡된 상태임을 확인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첫 시작으로 고대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의 가락국 도래에 관한 실체를 규명하는 작업에 진력해 왔다. 그 결과 『삼국유사』와 여러 금석문 등의 원문 연구를 통해 2천 년 전 서기 42년에 가락국이 세워졌고, 서기 48년 허황옥이 인도에서 가야로 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자 도명 스님은 『삼국유사』의 기록을 바탕으로 불교가 인도에서 직접 가야로 전해졌음을 추적하였다. 이는 서기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2년 때 전진의 승려 순도가 불상과 경전을 고구려에 전한 것이 그 시초라고 알려진 공인 불교 전래보다 324년이나 앞선 것이다. 한국불교가 가야불교에서 시작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또한 ‘허황옥 신혼길’ 3일간의 여정을 최초로 밝혔다. 일부에서 설화로 간주하는 고대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의 가락국 도래가 『삼국유사』에 정확히 기록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기록에 맞추어 국내 허황옥 루트 3일간의 동선을 최초로 밝혀냈다. 원문에 변형을 가하지 않고 기록 그대로를 따라가다 보면 <기출변 → 망산도, 승재 → 유주지 → 주포(별포진 입구) → 능현 → 만전 → 본궐>로 이어지는 국내 허황옥 루트가 완성된다.
국내 허황옥 루트를 완성한 ‘망산도’의 재발견. ‘허황옥 신혼길’의 최초는 허황옥이 탄 배가 ‘기출변’으로 들어오는 것을 ‘망산도’에서 관측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말무섬, 욕망산 등 기존 연구가들 사이에 다양한 지점 의견이 있었던 ‘망산도’에 대해, 현재의 견마도가 『삼국유사』에 기록된 망산도임을 확인했다. 지금보다 해수면이 훨씬 높은 기원전후 고(故) 김해만 지도에서 『삼국유사』의 기록과 일치하는 유일한 섬이다.
김해를 중심으로 바닷가에 위치한 연기사찰들이 가야불교의 증거. 가야불교 연기사찰은 6가야뿐 아니라 수로왕과 허황옥, 장유화상 등 가야의 인물과 관련된 사찰을 말한다. 현존하는 가야불교 연기사찰에는 요니와 링가, 쌍어(雙魚), 사왕석(蛇王石) 등 인도와의 교류 흔적이 보이고 세 인물과 관련한 창건설화가 금석문 등으로 전해 내려온다.
개봉 앞둔 영화 <허황옥 3일-잃어버린 2천 년의 기억> 제작에 단초 제공. KNN방송국의 진재운 대기자가 연출을 맡아, 2천 년 전 인도 공주 허황옥의 가락국 도래를 과학적으로 추적하여 그 실체를 규명한 영화 제작에 도명 스님의 가야불교 연구가 단초가 되었다.
『가야불교, 빗장을 열다』는 2천 년 전 실재했던 가야불교에 관한 최초의 종합 기록이다. 공인 불교보다 324년 앞선 가야불교의 존재를 확인함으로써 한국불교는 가야불교부터 시작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또한 『삼국유사』 기록을 바탕으로 ‘허황옥 신혼길’을 추적하여 규명함으로써 허황옥의 실체에 접근하였다. 일찍이 철기문화 발달로 문명국을 이루었으나 역사에서 사라진 초기 가야사 복원에 단초가 됨과 동시에 또한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의 뿌리를 세우는 일이 된다.
가야사는 가야에만 국한되지 않고, 가야불교는 종교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야와 가야불교가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은 가야불교를 통해 가야 초기를 재구(再構)할 수 있으며 이는 가야사의 정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가야사가 바로 서는 순간 임나일본부를 비롯한 일본의 역사 왜곡은 사라지고 그 기세가 북쪽으로 올라가 반도사관을 몰아내고 중국의 동북공정과 역사 침탈을 막는 든든한 수문장이 될 것이다. 그 시작을 도명 스님이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