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소개
- 저자
- 목차
- 편집자 리뷰
불교TV에서 ‘수행의 올바른 길, 수심결’을 강의하고 있는 일선 스님의 수행 에세이로, 끊임없이 괴로움으로 얼룩져 흐트러지는 마음을 다스리는 생활의 지혜를 일러주는 색다른 힐링서.
오래도록 전남 고흥 거금도 금천선원에서 간화선 실참을 바탕으로 참선ㆍ명상을 지도하였으며, 일찍이 《소리》《행복한 간화선》으로 생활 속에서의 수행 실천을 강조하신 일선 스님이 이번엔 산창에서 느끼는 자연 정취와 일상적 사색에다 간화선 수행을 엮은 책을 냈다.
세밑 보림의 숲은 하얀 눈으로 온통 차별 없는 하나의 법계를 이루었습니다.
비록 사물마다 이름이 다르고 모양이 다르지만
저마다 환희로움으로 춤을 추고 노래 부르며 서로 손을 잡고
참으로 당신이 있어 내가 있는 화엄의 세상이 열림을 찬탄합니다.
사람마다 차별 없이 가지고 있는 보배는 비록 모양과 이름이 없지만
눈앞에 나타나면 온갖 이름과 모양을 나툽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임을 믿고 깨달으면 일체 밖으로 구하는 것을 멈추고
비로소 나의 안심입명처가 되어 서로 다르다고 싸우거나 차별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보림이라고 합니다.
저자가 말하는 ‘보림의 숲’이다. ‘보림의 숲’이란 그야말로 저자가 거처하는 구산선문 보림사의 숲을 말하기도 하거니와 한량없는 자비심으로 여러 이웃들을 숲처럼 평화롭게 감싸주고 길러주어 모두가 행복한 공덕림을 말하기도 한다.
≪보림의 숲≫은 어떤 책?
《보림의 숲》은 신문에 칼럼으로 실은 저자의 글과 거금도 섬에서 생활하며 느낀 잔잔한 소회, 구산선문 보림사 주지를 지내면서 산창을 통해 바라본 사계절의 풍광에 간화선 수행을 엮어, 일상생활 속에서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가능함을 일러주고 있다.
책은, 그날그날의 일기처럼 내용이 잔잔하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바라보는 풍경 한 점, 비 갠 다음날의 깨끗한 풍경 한 점이 나를 일깨우는 ‘수심(修心)’이 되는데, 그렇게 마음을 다스려 나가면 이 책은 또 다른 힐링서 혹은 치유서가 될 것이다.
작은 골짜기로부터 큰 시내에 모인 물은
아직 바다에 이르지 못해 다툼이 있어 요란하다.
하지만 산의 움직이지 않는 선정과 물의 머물지 않는 지혜가
자기 성품의 본래 덕인 줄 깨달으면 곧 일미의 바다에 이를 것이다.
참으로 한 마음 청정하면 모든 것은 꽃이 된다.
산창을 통해 바라보는 자연은 계절의 변화에 어김없다.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온전한 불성(佛性)인 내 마음 역시 그 자체로 완전하여 희로애락에 물들지 않는다는 것. 단단한 숲처럼 어떤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어디에도 물들지 않는 삶의 자세를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저자의 목소리는 차분하고도 울림이 강하다.
탐진치 삼독의 불꽃이 사라지니
산꼭대기에서는 청량한 바람이 내려오고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나나니
바로 이곳이 극락세계로다.
일선(一善) 스님
일찍이 의문을 품고 조계산 송광사에서 법흥 화상을 은사로 득도하였다.
중앙승가대학을 졸업하고 봉암사를 비롯한 제방선원에서 정진하였다.
송광사에서 10여 년간 수련회를 이끌었으며
오래도록 전남 고흥 거금도 금천선원에서
간화선 실참을 바탕으로 참선ㆍ명상을 지도하였다.
현재 구산선문 보림사에서 주지 소임을 맡고 있다.
저서로 《소리》 《행복한 간화선》이 있다.
물이 흐르고 꽃이 피네
여여부동한 참마음ㆍ12 / 수능기도ㆍ15 / 청태전ㆍ18 / 효심이 불심ㆍ21 / 보림사ㆍ24
선정과 지혜ㆍ27 / 보림의 숲ㆍ31 / 참선 수행ㆍ33 / 내외명철의 전기ㆍ37
보살행의 실천, 이입사행ㆍ40 / 가족들을 부처님처럼ㆍ43 / 물이 흐르고 꽃이 피네ㆍ46
만년의 봄ㆍ50 / 자비방생ㆍ53 / 본래 고향ㆍ54 / 동지ㆍ58 / 선 정신ㆍ61
몸 아닌 몸ㆍ64 / 코리안 루트ㆍ68
바람을 만나서 솔바람으로
간화선의 대중화ㆍ74 / 한가위 보름달ㆍ78 / 소리의 향연ㆍ80 / 참다운 수행처ㆍ82
태풍ㆍ85 / 태풍 전야ㆍ88 / 그대와 나는 하나ㆍ90 / 새벽안개ㆍ92 / 목우가풍ㆍ94
물의 인연ㆍ98 / 구산선문 가지산 보림사ㆍ101 / 등불 하나ㆍ103
서산 대사와 호국호법ㆍ105 / 선지식을 찾아서ㆍ108 / 무등의 등불ㆍ110 / 붉고 검다ㆍ112 화쟁의 길ㆍ114 / 33천ㆍ118 / 동백꽃ㆍ121 / 자타불이ㆍ123 / 꽃보다 사람ㆍ125
수행의 리더십ㆍ128 / 매화 향기ㆍ131 / 봄비ㆍ134 / 해제일ㆍ136 / 청설모ㆍ138
당신과 나는 하나입니다
구름처럼ㆍ142 / 모유ㆍ144 / 토끼와 거북이ㆍ146 / 기본자세ㆍ149 / 첫눈ㆍ154
길상사 관음상ㆍ156 / 구산 선
사 기일ㆍ158 / 회광반조ㆍ160 / 보배의 성ㆍ162
구지 손가락ㆍ164 / 만목청산ㆍ168 / 탄트라ㆍ171 / 보조 국사ㆍ176 / 이 뭣고ㆍ179
수행의 향기ㆍ181 / 개운한 날ㆍ183 / 텃밭에서ㆍ185 / 상선약수ㆍ186 / 반딧불이ㆍ191
상사화ㆍ194 / 감사의 공양ㆍ196 / 셋은 하나ㆍ197 / 주인공ㆍ200 / 해바라기ㆍ203
화두는 융합ㆍ204 / 참말로ㆍ207 / 일지암ㆍ210 / 붕어빵집ㆍ212
P.27~28
얼마 전에 서울 조계사 앞을 지나는데 어떤 사람이 “스님, 나는 거지입니다. 라면 한 봉지만 사 주세요”라고 소리치며 따라온 적이 있었다. 나는 “큰 지혜를 가지고 쓰는 사람이 거지인데 스스로 거지라고 자랑하는 걸 보니 그대는 거지가 아닙니다” 하고는 길을 건너갔는데, 그 사람은 내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끝까지 따라왔다. 나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어 눈을 마주보며 합장하고 따라서 하라고 했다. “나는 부처입니다. 본래부터 부처입니다. 순간순간 부처입니다.”
젊은 거지의 얼굴에 어느새 화색이 돌고 눈빛이 빛나기 시작하는데, 그 모습을 보니 환희심이 일었다.
P.52
바닷가 몽돌은 몸을 낮추고 자신을 깎아
한량없는 세월을 구르면서 둥글어졌습니다.
P.57
억수같은 비가 내렸다. 떠내려간 길을 보수하고 나니 하늘이 모처럼 찬란한 햇살을 뿜고 있다. 범부가 해탈의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길에서 끝없이 헤매는 것은 중생과 부처, 선과 악, 남녀, 시비 등 일체의 양변에 집착하는 계급을 벗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오대산 노파의 말처럼 길을 따라서 곧장 가면 되는 것을. 부처라는 생각과 깨달았다는 지견을 두지 말고 다만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는 사람이 되라.
P.59
태풍에 바다가 뒤집어지면 크고 작은 파도가 끝없이 일어나지만 대양의 깊은 바닷속은 움직임이 없을 뿐더러 더없이 평온하다. 그래서 참으로 성품을 요달하면, 고요함 속에서도 끝없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양면의 바다를 보는 것처럼 어느 한쪽에 머물지 않게 된다. 물과 파도는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P.88
온종일 가마솥처럼 달구어진 지붕은 이제 서서히 열기를 식히고 있다. 앞산에 걸친 찬란한 노을을 바라보며 태풍 무이파의 이름처럼 두 가지 양변의 차별 견해가 무너지면 세상은 아름답고 평화로울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너와 나, 남녀 등 일체 차별 견해 때문에 범부의 고통은 끝이 없다. 더욱 하심하여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배려하면 서로 소통이 이루어지고 뜨거운 기운이 바로 뒤집어져서 청량한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P.103
빛은 물을 비추지만 젖지 않고 불을 대어도 타지 않으며 바람을 일으켜도 흩어지지 않는다. 장마철에 꺼지지 않는 마음의 등불 잘 간수하여 습기에 물들지 않고 우울한 생각이 일어나면 얼른 비춰서 빛으로 화합시키기를 발원해 본다.
P.119
바윗돌은 끝없이 부딪치면 불이 일어나지만 사람은 탐ㆍ진ㆍ치 삼독의 불이 꺼져야 진짜 불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탐내고 어리석으며 성내는 마음 때문에 불이 꺼져서 어둡게 살고 있다. 지나간 허물을 참회하고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힘내세요’라는 말을 따뜻하게 해 주면 꺼진 불이 다시 살아나듯 마음의 등불이 켜진다.
P.141
풀밭의 주인공인 돌미나리
온종일 불을 뿜었던 태양 아래서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여러 풀들이 서로 의지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저마다
홀로 존재할 수 없다.
P.172~173
사실은 일어나고 사라지는 번뇌는 좋고 나쁜 것이 아니지만 붙들리어 집착함으로써 고통이 일어나게 된다. 이때를 당해서 있는 그대로만 알아차려 상관하지 말고 한 걸음 물러남으로써 순간 우리 마음의 본성인 본래 밝고 맑은 빛을 경험하게 된다.
다만 몹시 거친 번뇌가 일어나거나 미세한 번뇌가 일어나더라도 이 속에는 우리의 본래 밝고 맑은 빛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간화선에서 마음이 본래 부처라는 사실을 믿어야만 수행이 시작된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