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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 대표 ‘문사(文士)’ 현진 스님
출가 30년 글쓰기 20년의 지혜가 오롯이 담긴 산문집
불교계에서 손꼽히는 ‘베스트셀러 작가’ 현진 스님이 올해로 출가 인생 삼십 년, 글쓰기 인생 이십 년을 맞았다. <스님의 일기장>은 스님이 자신의 수행과 글쓰기 인생을 정리하며 펴낸 산문집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책에는 스님이 일기에서 뽑아 처음으로 공개하는 글도 있고, 그간 발표한 글들 중 “먼지 속에 놓아두기엔 아쉬운 내용”을 짧은 문장으로 다듬은 것도 있다.
책에 실린 143편의 글에는 현진 스님이 수행과 일상에서 발견한 ‘깨달음’의 순간을 비롯해 사랑·돈·종교 등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담겨 있다. 또 불교경전과 선사들의 말씀, 동서양의 경구(警句)에서 길어 올린 지혜가 가득하다.
“봄꽃들은 겨울을 이겨 내고 봄을 맞이한다. 인고의 과정을 무시하고 성급하게 피지 않는다. 무엇이든 단박에 되는 것은 없다. 노력과 반복이 삶의 질서를 완성해 준다.”, “현재 살고 있는 삶의 조건과 형태가 화두여야 한다. 그래서 차 마실 땐 차만 마시고, 밥 먹을 땐 밥만 먹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삶을 들여다보면 가위바위보 대결과 같다. 한번 질 때도 있고 이길 때도 있다.” 등 짧고도 강렬한 문장이 긴 울림을 남긴다.
책장을 덮고 나면 분명 ‘지금 여기’가 다르게 보일 것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영화 <매트릭스>에서 ‘빨간약’을 먹은 주인공 네오처럼 말이다. 현실을 바로 보게 된 네오가 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간 것처럼, 현진 스님의 글을 읽은 이들 역시 이전과는 다른 일상을 살아갈 것이다. 비록 우리네 삶에 크고 작은 고난과 번뇌가 끊이지 않을지라도, ‘지금 여기에서’ 행복을 발견하고 느끼면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온전히 살아가는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월간 '해인'으로 글쓰기와 인연
다양한 글과 문화 포교 활동으로 사람들과 소통
스님이 글쓰기와 인연을 맺은 건 해인사 학인 시절. 월간 ????해인????의 필진으로 참여하면서부터다. 월간 '해인'은 현진 스님을 비롯해 성전 스님, 원철 스님 등 불교계에서 내로라하는 문사들을 배출한 사보(寺報)로 유명하다. 1982년 해인사 강원의 학승들이 대중 포교를 위해 창간한 이 잡지는 스님들과 세상 사람들을 잇는 가교이자 불법을 전하는 창구로, 지금도 불교신자는 물론 일반인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현진 스님은 1990년대 초반부터 월간 '해인'을 비롯해 「불교신문」,「동아일보」 등 여러 매체에 “수행길에서의 다양한 사연과 서투른 수상(隨想)이 행간마다 배어 있는” 글을 써 왔다. 누구나 쉽게 글을 쓰고 발표하는 시대, 스님은 자신의 글에 대해 “출가 여정의 흔적과 기록이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지나치게 겸손한 생각이다.
스님이 1993년에 펴낸 첫 산문집 <스님의 일기장>은 당시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절집의 일상과 수행 생활을 솔직 담백하게 그려 큰 화제를 모았다. 이후에도 스님은 '두 번째 출가','오늘이 전부다' 등 십 여 권의 책을 통해 소소하면서도 치열한 선방(禪房)의 속살을 보여 주고,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지혜를 일깨워 주었다. 「세계일보」 정성수 기자는 현진 스님의 책을 두고 “무엇이든 보고 들으면 이를 깨달음으로 녹여내는 솜씨가 돋보인다.”고 평한 바 있다.
꾸준한 글쓰기와 더불어 현진 스님은 다양한 문화 포교 활동으로 세상 사람들과 소통해 왔다. 2000년대 초반, 해인사 포교국장 소임을 맡았을 때는 수련회와 템플스테이 등을 기획해 대중이 산사 생활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했다. ‘청주의 조계사’로 불리는 관음사 주지 소임을 맡았을 때는 ‘트로트 산사음악회’를 열어 신도는 물론 불교에 관심이 적던 지역 주민까지 절 마당으로 끌어안았다. 또 어린이 불교대학과 대학생 불자 모임을 운영하는 등 젊은이들이 불법을 접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도 했다. 주지 소임을 맡은 8년간 관음사를 청주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 사찰로 일군 현진 스님은 3년 전 청원 성모산 자락의 작은 사찰 ‘마야사’를 창건했다. 지난해에는 마야사에서 반농반선(半農半禪)의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책 '산 아래 작은 암자에는 작은 스님이 산다'를 펴냈다. 스님이 ‘단순하고 소소하게 하지만 간절하게’ 살아가는 일상은 담은 이 책은 ‘2014년 세종도서 문학나눔(구 문광부 우수도서)’으로 선정됐다.
쉽고 짧은 글 그러나 긴 울림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사는 지혜’ 깨우쳐
현진 스님의 글은 쉽다. 누구나 재미난 소설을 보듯 술술 읽는다. 문체 역시 간결하다. 설명이 필요한 경우에는 구구절절한 수사보다 정확하고 날카로운 비유로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쉽고 간결하며 담백한 현진 스님의 필치는 ‘좋은 문장’에 대한 스님의 남다른 소신에서 비롯한 것이다.
“글쓰기 이십 년을 정리하면서 문장을 잘 쓴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어려운 구절을 나열하고 현학적인 내용을 중복하는 것만이 좋은 글이 아닐 것이다. 평이한 문장이지만 남녀노소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게 명문(名文)이라는 소신에는 변함없다.”
책의 머리말에서 밝혔듯이, 현진 스님이 지난 이십 년간 평이한 문장으로 우리에게 전한 메시지 역시 쉽고 단순한 것이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라.’는 것.
이 같은 메시지를 잘 전달하기 위해 스님은 날마다 자신이 보고, 읽고, 느끼고, 사유하는 모든 것을 글감으로 활용해 왔다. 스님이 글감을 일구는 밭, 아니 발견하는 밭은 크게 세 개다. 굳이 분류하자면 말이다.
첫 번째 밭은 스님의 일상과 수행 생활. 선방에서 하는 치열한 수행뿐만 아니라 도반과의 즐거운 추억, 절을 찾은 신도와의 대화, 심지어 손빨래 같은 사소한 일상도 글의 소재로 활용한다.
빨랫감이 적어서 그렇겠지만 아직까지 나는 손빨래를 즐겨 한다. 비눗방울이 일 때마다 시꺼먼 때가 씻겨 나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마음까지 맑아진다. … (중략) …빨래를 할 때마다 ‘깨어 있다’는 의미를 떠올린다. 깨어 있다는 것은 순간순간의 마음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_ 「손빨래의 즐거움」 중에서
두 번째 밭은 스님이 읽은 불교경전과 선사들의 말씀, 세계의 고전 그리고 동서양의 경구들이다. 스님은 ????법구경????이나 ????사십이장경???? 등 불교경전을 비롯해 여러 선사들의 말씀을 통해 현대인에게 살아가는 지혜를 전한다. '주역' 같은 고전은 물론 필요하다면(!) 성경 말씀도 인용한다.
우리 생애의 최후의 때가 다가오더라도 당당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 이것을 수행이라고 정의한다. 기독교의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무엇이나 다 정한 때가 있다. 하늘 아래에서 벌어지는 무슨 일이든 다 때가 있다.’ 그렇지만 이 시기와 때는 어떤 절대자나 전지전능한 신이 정해 주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신의 섭리이기 이전에 우주의 질서이며 조화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인과율因果律인 것이다._「언젠가는 지나간다」 중에서
마지막 밭은 자연이다. 3년 전부터 산 아래 작은 암자에서 생활하는 스님은 “한여름 마당의 풀과 씨름하는 것이 수행”이라며 그 앞에 서면 한없이 작고 겸손해지는 꽃과 나무 그리고 계절에 대해 이야기한다. 스님에게는 매화와 느티나무 그리고 안개마저도 삶과 수행을 반추하게 해 주는 좋은 소재들이다.
요즘 같이 늦가을 무렵에는 아침 안개가 자주 내린다. … (중략) … 우리 인생길이 안개 속에 서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지나온 시간은 추억으로 사라졌고, 앞으로의 시간은 예측할 수 없다. 다만 현재 숨 쉬고 있는 이 순간만 존재하는 것이 마치 안개 속 보행과 유사하다. _ 「안개」 중에서
<스님의 일기장>은 현진 스님이 그간 발표한 글 가운데 정수만을 모으고 또 일기 내용을 새로 더한 것으로, 스님이 여러 글감밭에서 일군 다양한 글을 두루 만날 수 있다. 출가 삼십 년 글쓰기 이십 년의 내공이 오롯이 담긴 책을 만나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일 터. 참된 깨달음은 세월이 흘러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 법이다. 현진 스님이 들려주는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사는 지혜’. 머리맡에 놓아두고 날마다 펼쳐 보면 분명 어제와는 다른 ‘오늘’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현진 스님
월간 『해인』 편집위원과 「불교신문」 논설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그동안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로 절집의 소소한 일상과 더불어 불교의 지혜와 교훈을 독자들에게 꾸준히 전달해 왔다. 그의 글은 마치 사람을 앞에 두고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진솔하며, 또한 짧은 호흡의 군더더기 없는 문장으로 삶의 철학과 진리를 쉽고 명쾌하게 풀어내고 있어서 더욱 흡인력이 있다.
최근까지 서원대학교 강사와 법주사 수련원장을 맡기도 했으며, 충북 경실련 공동 대표로도 활동해 오고 있다. 3년 전 청주 근교에 작은 사찰 ‘마야사’를 창건하여 반농반선(半農半禪)의 삶을 살고 있다.
펴낸 책으로는 『삭발하는 날』, 『잼있는 스님이야기』, 『산문, 치인리 십번지』, 『두 번째 출가』, 『오늘이 전부다』(2009 올해의 불서 선정 도서), 『삶은 어차피 불편한 것이다』(2010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언젠가는 지나간다』, 『번뇌를 껴안아라』, 『산 아래 작은 암자에는 작은 스님이 산다』(2014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 도서), 법문집『오늘은 선물이다』등이 있다.
1장 지금 이 순간
• 오늘이 언제나 마지막 12 • 단순하다는 것 13 • 내복은 늦게 입고 늦게 벗어라 14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으면 16 • 완벽한 봄날은 없다 18 • 보답 릴레이 19 •꿩 수좌의 날갯짓 20 • 이승의 곳간과 저승의 곳간 22 • 봄은 여기 매화가지 위에 24 • 산수유 개나리 벚꽃 26 • 인간 세상 호시절이 바로 이것 27 • 긍정 주파수 28 • 꽃이 피어서 봄이다 30 • 지금 그리고 여기 31 • 출가는 삶의 쿠데타 32 • 만족의 반대말은 스트레스 33 • 말의 화살 34 • 모과나무 아래에서 36 • 삶은 가위바위보 대결 38 • 아내 있는 이 땅의 남자들에게 39 • 삶이 지치고 힘들 때는 화장장을 가 보라 40 • 오늘이 가장 소중한 날 42 • 소는 윗니가 없고 호랑이는 뿔이 없다 43 • 어느 집안이든 화장실이 있다 44 • 세상에서 가장 강한 독 45 • 손빨래의 즐거움 46 • 우리 삶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 50 • 복권에는 ‘복’이 없다 52 • 흔들리며 피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 54 • 동물들의 무덤 55 • 흰 구름도 먹구름도 다 같은 구름 56 •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 58 • 정상에 서 있을 때가 가장 위험하다 60 • 꽃을 심고 흙을 만지는 일 62 • 행복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1 63
2장 여기에서
• 잃어버린 고무신 66 • 사월 초파일 67 • 내가 세상에 온 이유 70 • 화장실을 부르는 여섯 가지 말 72 • 오솔길 등산 73 • 죽음과 위기의 공통점 74 • 내 삶의 주인공 되기 75 • 빗소리가 떠나간 자리처럼 76 • 백 년 후에는 아무도 없다 78 • 저마다 앉을 자리는 따로 있다 80 • 우리나라 부자들의 공통점 82 • 자귀나무 꽃 필 무렵 83 • 너무 가까이 있어서 몰라보는 것들 84 • 잘나갈 때는 발밑을 살펴라 85 • 예고 없는 만남 86
•모기에 물리는 건 축복 87 • 후회도 미련도 없는 나팔꽃 인생 88 • 누구도 영원히 살지 않는다 90 • 우윳빛 치자 꽃의 은밀한 향기 92 • 인생의 전환점 94 • 부자도 세끼, 가난뱅이도 세끼 95 • 더위와 하나가 돼라 96 • 이름 없는 부도를 보며 98 • 뜰 앞의 상사화 1 100 • 뜰 앞의 상사화 2 101 • 삶은 어차피 불편한 것 102 • 미움의 역리성 103 • 풀 뽑기 104 • 위대한 평범 105 • ‘무상’에 담긴 두 가지 뜻 106 • 별이 빛나는 이유 108 • 백로와 바닷게 110 •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112 • 예정된 우연을 찾아서 114 • 행복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2 115
3장 온전히
• 인연의 무게 118 • 연꽃의 지혜 120 • 연꽃을 피우는 방법 122 • 네 잎 클로버 vs. 세 잎 클로버 124 • 당신의 샹그릴라는 어디인가 126 • 복은 구하는 게 아니라 짓는 것 128 • 인과의 율동 129 • 받아들임 130 • 긍정적인 말 한마디 132 • 여행에 대한 생각 1 134 • 여행에 대한 생각 2 135 • 삶은 문제의 연속 136 • 부자 라인 만들기 137 •이성을 대하는 법 138 • 라다크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욕 139 • 시간의 눈금 140 •참다운 진리는 보편적인 진리 142 • 언젠가는 지나간다 144 • 부부에게 1 146 • 부부에게 2 147 • 가을 소식 148 •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 149 • 바퀴는 늘 굴러가야 바람이 새지 않는 법 150 •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사람 154 • 죽음, 틀림없는 매듭 156 • 사랑의 힘 157 • 분노와 못생긴 얼굴 158 • 삶의 정답 160 • 홈런 칠 기회 161 • 평생 감사해야 할 대상 세 가지 162 • 철부지가 되지 않으려면 164 • 인연의 부피를 줄여야 할 때 165 • 모든 이에게 통하는 만병통치약 166 • 인생사 엎치락뒤치락 167 • 알렉산더의 유언 168 • 행복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3 169
4장 살아가는 즐거움
• 그대 지금 간절한가 172 • 세월 173 • 풍요로운 가을 174 • 인과의 법칙 175 • 도토리 줍는 재미 176 • 분수를 지킬 줄 아는 살구나무처럼 178 • 너무 가깝지도 않게 너무 멀지도 않게 180 • 집집마다 읽기 힘든 경전이 있다 181 • 외떨어져 사니 문 두드리는 사람 없고 182 •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 183 •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 184 • 화 잡는 웃음 186 • 숲이 말을 걸어오는 그 순간 188 • 도토리가 묵이 되기까지 190 • 달빛 소풍 191 • 화는 뿌리가 없다 192 •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 194 • 간절하고 절박하던 순간 196 • 나무도 주인이다 200 • 집중하는 삶 201 • 안개 202 • 세월에 의지해야 할 때 204 • 쉰 살이 되면 205 • 결젯날 아침 206 • 겨울 바다 207 • 내일은 너의 차례 208 • 새벽 삭발 209 • 세상 모든 자녀는 ‘라훌라’ 210 • 대나무를 닮아야 중노릇 한다 212 • 올해 더 가난해야 하는 이유 214 • 결정적인 순간 215 • 한 해의 마지막 날 216 • 기다리지 마라 218 • 사라나무 사이로 지는 해 219 • 날마다 새롭게 220 •흐름대로 살라 221 • 행복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4 222
만약 모과가 다른 과일처럼 달콤하고 예쁘기만 했다면 향이 그토록 진할 수 있었을까? 다시 말해 맛없고 볼품없는 것은 단점이지만 상큼한 향은 오히려 장점인 것이다.
진한 모과 향은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인고의 시간을 견뎌 온 값진 결과다. 저 길고 여린 가지로 여름날의 폭풍우에도 열매를 지키지 않았던가. 비록 그 모양 때문에 사람들의 눈길을 단번에 끌지는 못하지만 모과는 그 단점을 향기를 통해 장점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세상의 꽃들과 나무들이 서로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은 우열이 아니라 조화의 이치다. 이는 사람도 마찬가지. 서로의 능력과 재주가 모두 다르다는 것을 우열의 잣대로 보아서는 안 된다.
_「모과나무 아래에서」中
내가 알고 있는 어느 신도의 할머니가 평소에 “어느 집안이든 화장실이 있다.”면서 자신의 어깨들 다독여 주었다고 했다. 저택이든 오두막이든 화장실은 다 있다. 따라서 그 어떤 집안이든 냄새나고 골치 아픈 일 하나씩은 있다는 뜻이다.
누구나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즐거운 일만 가득 차 있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이 가진 고민만 크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 이웃들 모두는 그들만의 근심 걱정을 가지고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웃집의 행복만 부러워하지 말고 내 집에 이미 구족되어 있는 행복의 조건을 찾는 것이 훨씬 이성적인 행동이다.
_「어느 집안이든 화장실이 있다」中
일찍이 조주 선사는 가르침을 묻는 이들에게 “차나 마시게!”라는 법어를 남겼다. 수행이 일상을 떠나면 생명력을 잃고 만다. 이는 고기가 물을 떠나지 않는 것과 같다. 현재 살고 있는 삶의 조건과 형태가 화두여야 한다. 그래서 차 마실 땐 차만 마시고, 밥 먹을 땐 밥만 먹어야 하는 것이다. 밥을 얼른 먹고 그 다음 일을 해야겠다고 하면 현재의 행동은 무의미하다. 그 다음 시간은 기다리지 않아도 다가온다. 괴로운 시간은 빨리 지나가길 바라지만 그 시간 또한 지나가는 때가 반드시 오게 되어 있다.
따라서 현재를 살면서 그 시점이 과거에 머물거나 미래에 가 있으면, 지금의 가치는 없어지고 만다. 즉, 시점과 행위가 일치해야 비로소 행복한 것이다.
_「물고기가 물을 떠나면」中
사람이 살아가는 일에는 뜻하지 않는 사고나 질병이 생기기 마련이다. 누구나 자신의 신앙을 통해 액운이나 병고를 피하게 해 달라고 염원하지만 그 뜻이 이루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왜냐하면 사람이 살아가는 일에는 어차피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설령 그 어떤 전지전능한 신神의 보호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생로병사의 고통을 피하기 어렵다.
그래서 신앙을 믿는 목적은 삼재와 팔난을 피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런 고통이 왔을 때 어떻게 수용하느냐 하는 자세를 배우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다 성숙하게 지니는 일이 신앙이다.
_「성숙한 신앙인의 자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