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 대표 문사이자 청주 마야사 주지이신 현진 스님의 에세이. 직접 꽃나무와 농사를 돌보고 계절의 오감을 온몸으로 느끼며 청정하게 살고자 노력하는 승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청주 마야사에서 텃밭 농사를 짓고 사찰 정원을 가꾸며 살고 있는 스님에게 꽃과 나무를 돌보는 일은 일상이자 수행이다. 마야사의 꽃밭을 보기 위해 사찰을 찾는 이들이 있을 정도로, 스님은 생명을 돌보는 일에 정성을 다한다.
이 책은 4부 구성인데, 각기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을 맞이하는 풍경을 담고 있다. 이러한 스님의 사계를 따라 글을 읽다 보면, 마치 철마다 꽃과 나무가 피고 지는 광경을 보는 듯하다.
우리는 세상사에 치여 봄이 와도 봄이 오는지 모르고 지나갈 때가 많다. 스님은 “백 마디 말보다 자연의 풍광들이 말없이 우리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다”는 점을 역설하며, 우리를 자연의 자리로 초대한다. 그 외에도 《좋은 봄날에 울지 마라》는 비교하지 않는 삶에서 오는 행복, 타인을 미소로 대하는 태도 등 마음을 따스하게 하는 이야기들을 빼곡히 실었다.
생명으로 풍성한 스님의 정원
“모름지기 심는 것이 많아야 좋은 인생”이라는 것이 현진 스님의 생각이다. 절을 지을 때도 절보다 나무를 먼저 심었다. 건물은 빨리 지을 수 있지만 나무는 시간의 깊이를 지녀야 해서다. 봄이면 백일홍과 황금아카시나무 등을 심고, 텃밭에는 고구마와 땅콩 등을 기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도, 농약을 치거나 함부로 가지를 잘라 내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베어 낼 때도 톱질하기 하루 전에 막걸리를 부어 놓고 나무를 쓰다듬으며 미안함을 전한다. 생명을 아끼는 스님의 태도와 생명이 새움을 틔우고 자라나는 과정을 엿보는 것 또한 이 책의 재미다.
인생사 역시 자연과 다르지 않다. 비 오고 눈 오는 일처럼, 사람의 인생에도 고단한 날이 있다. 그럴 때엔 꽃에 기대 위로받기도 하고 눈물이 날 때면 울면서 그 시절을 견뎌 내자는 것이다.
내 곁의 사람들을 지금 사랑하자
“지금 사랑하라”는 것이 현진 스님의 가르침이다. 책을 읽다 보면, 여러 대목에서 인간관계에서 너그러워지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날씨도 비 오는 날과 맑은 날이 번갈아 오듯이 나와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 역시 그 사람의 삶이겠거니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141쪽). 사소한 문제로 다툴 수 있지만 크게 보면 백 년 뒤에는 모두 사라질 인생. 남을 용서하고 기다릴 줄 아는 것이 서로를 편안하게 하는 길이다(140쪽). 잡고, 붙들고, 복수하기 위해 살아가는 인생은 그 자체가 독을 품고 사는 삶이다. 살다 보면 내가 복수해 주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복수해 주는 경우가 있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인과의 율동이다(196쪽). 그러니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내 곁의 사람들을 지금 사랑하라.
현진 스님
월간 <해인> 편집위원과 <불교신문> 논설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로 절집의 소소한 일상과 불교의 지혜를 독자에게 꾸준히 전달해 왔다. 현재 충북 청주 근교에 마야사를 창건하여 꽃과 텃밭을 가꾸며 지내고 있다.
펴낸 책으로는 《산 아래 작은 암자에는 작은 스님이 산다》, 《삭발하는 날》, 《잼있는 스님 이야기》, 《산문, 치인리 십번지》, 《두 번째 출가》, 《오늘이 전부다》, 《삶은 어차피 불편한 것이다》, 《언젠가는 지나간다》, 《번뇌를 껴안아라》 등 총 15종이 있다.
1부 좋은 봄날에 울지 마라
좋은 봄날에 울지 마라 l 봄날 일기 l 흐린 날도 삶의 풍경이다 l 불행의 시작은 비교다 l 나무를 심으면서 l 남는 돌처럼 살고 싶다 l 지금 나는 행복합니다 l 흙을 가까이하라 l 연등 아래에서 더 가난해져야 한다 l 나는 대지의 끝에 가 보았습니다 l 찬란한 봄날 앞에서 l 불탄일 아침에 l 개나리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l 밭을 일구면서 l 여기 저기 꽃 피었다 l 잊히지 않는 얼굴
2부 함께 아래에 서겠습니다
구하는 것이 없어야 행복하다 l 꽃이 지는 것을 서러워 마라 l 깨달음은 따스한 시선이다 l 물고기는 물속에서 물을 찾는다 l 연못 이야기 l 정성과 간절함이 기도의 본질이다 l 그런 친구 있습니까 l 꽃들에게 위로받아라 l 함께 아래에 서겠습니다 l 금방 비 오다가 금방 맑아진다
3부 이만 하면 행복이다
이만 하면 행복이다 l 이 가을, 그대가 생각난다 l 능상장자 l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l 가을이 더 바쁘다 l 열반불사 l 가을 편지 l 술잔을 들고 달에게 묻는다 l 지금 사랑하라 l 안개 가득한 날에 l 나무 보살의 공덕 l 친절과 미소다
4부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노년의 그림 l 우수수 낙엽 지는 소리에 l 알 수 없어서 더 신비롭다 l 장작 부자가 진짜 부자다 l 세밑 에서 안부를 묻다 l 인생은 눈물 반, 세월 반이다 l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l 눈 내리는 날에 l 매화를 기다리다 l 친절하게 간절하게 애절하게 l 모두 연결되어 있다 l 고맙다 수고했다 잘했다 l 어제의 가난은 가난이 아니다 l 꽃은 비에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저녁나절에 깨알같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풀을 매는 작업을 하다가 그 속에 여린 백일홍이 여러 개 자라고 있어서 반가웠다. 옆집에서 씨앗이 날아 왔을까…. 모종삽으로 떠 와서 화단 주변에 심었다.
이 꽃을 어디서 옮겨 왔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 이것이 오늘,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진 행복이다.
- 80~81쪽
이웃들에게 자주 전하는 말이지만, 사람이 사는 일이 명예를 높이고 돈 버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꽃을 보고 구름을 만나고 흙을 만지는 일도 중요한 가치 가운데 하나다. 인생의 관심 전부가 오직 돈 모으는 일에만 집중되어 있다면 그 사람은 자신이 지닌 아름다움을 닫고 사는 삶일 것이다. 이 봄날, 꽃들이 전하는 법문에 귀 기울이면서 삶을 위로받기를.
- 90쪽
겨울 숲은 이런 자세로 이 추위를 견디고 있으므로 우리들도 약간의 고난이나 시련쯤은 견뎌야 할 것이다. 인간이 괴로운 것은 기회주의자들처럼 욕심을 부리니까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저 나무들처럼 제자리를 의연히 지키면 그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숲 속의 새와 나무들도 꽁꽁 얼어붙은 이 겨울을 이렇게 견디고 있다. 여기에서 이 힘든 세월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고 역경을 받아들이는 아량을 지녀야 한다. 이렇게 자연에게서 위로받는 일이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