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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리뷰
순서에 상관없이 맘대로 골라 읽다 보면
현재 진행형인 불교사상과 역사 · 문화 두루 섭렵
‘불교에 대한 지적인 대화’에 자신있게 참여할 수 있다
불교에 관한 49가지 문답으로 구성된 이 책의 장점은 크게 세 가지다.
● 불교에 대한 일상적이고 사소한 궁금증을 속 시원히 풀어준다. 이 책은 교과서처럼 불교에 대해 시간 순이나 큰 사건(주제)별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불교에 관해 누구나 한번쯤 가졌을 법한 의문에 주목한다. ‘절은 왜 산속에 많지?’ 같은 난이도 하급 물음은 물론 ‘스님들이 애완동물을 키워도 되나?’ 하는 다소 엉뚱한 궁금증도 친절히 풀어준다. ‘무아(無我)라면서 어떻게 윤회가 가능한가?’ 같은 상급 의문도 다룬다. 불자이든 아니든, 절에 갔다가 혹은 책이나 TV를 보면서 느낀 불교에 관한 다양한 물음과 답을 비빔밥처럼 잘 버무렸다. 불자들에게는 자신의 종교를 보다 깊이 이해하는 기회를, 불자가 아닌 이들에게는 불교를 통해 전해진 우리 역사와 문화의 면면을 새로 알아가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 불교계 저명인사들의 생생한 육성을 전한다. 맛깔스러운 답변을 내놓기 위해 저자는 때로는 경전에 근거하고 때로는 불교 전문가들의 육성을 그대로 전한다. 현직 기자의 역량을 십분 발휘, ‘어떤 스님을 큰스님이라고 부르나?’라는 의문에 답하기 위해 ‘진짜 큰스님’께 묻는 식이다. 진짜 큰스님인 경주 불국사 회주 성타 스님은 다음과 같은 견해를 전했다.
“내가 입산할 즈음에도 큰스님이란 표현은 지금처럼 보편적으로 쓰였다. 아마도 1446년 훈민정음이 반포되고 많은 어휘의 한글화가 진행되면서 백성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정착됐을 것.” 스님의 설명에 저자가 참기름 한 방울을 톡 떨어뜨린다. ‘고승대덕(高僧大德)과 같은 딱딱한 한자어가 정다운 우리말로 거듭났으리란 이야기’라는.
공(空)이나 무아(無我), 중도(中道) 같은 불교사상에 대해 흔히 갖는 오해나 냉소(‘그래서 뭐 어쩌라고?’와 같은)도 쉬운 설명으로 불식한다.
“중도의 삶이란 사물의 이면을 볼 줄 아는 삶이며 균형을 유지할 줄 아는 삶이다.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의 원리에 충실한 삶이다. 모든 것은 변화함을 알기에, 과거를 못내 아쉬워하거나 미래를 지레 걱정하기보다는 주어진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일이다. 또한 독립된 내가 없음을 알기에, ‘나’를 고집하지 않는 일이다. (중략) 성철 스님의 제자인 조계종 원로의원 고우 스님은 중도를 통찰하면서 다음의 네 가지를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타인과 나를 비교하지 않게 됐고, 내가 하는 일의 가치에 확신을 갖게 됐고, 자주적인 사람이 됐고, 소통하는 사람이 됐다는 것이다. 내가 있는 그대로 부처인 만큼 남도 있는 그대로 부처라는 성찰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과 진정한 배려심이 생긴다는 교훈이다.”
● 짧지만 알차고 재미나 술술 읽힌다. 질문 하나당 짧게는 3~4페이지, 길어야 6페이지에 불과해 읽기 쉽다. 짧은 내용이지만 역사와 경전에 기반한 사실과 저자를 비롯한 불교계 저명인사들의 의견이 적절히 어우러져 읽는 재미가 있다.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니나킴의 밝고 경쾌한 그림도 고명처럼 중간중간 담겨 있어서 보는 즐거움도 있다.
※ 이 책을 선물받으면 참말 좋아할 분들
*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인문학과 철학으로서 불교에 관심이 있는 분
* 이제 막 불교에 마음을 열고 절집 문을 두드리는 분
* 절에서 기도와 봉사는 많이 했지만 불교공부는 제대로 해보지 못한 분
* #역사 #사찰 문화 #불교 #인문교양 같은 해시태그에 끌리는 분
장웅연 (張熊硯)
생긴 것만 보면 달마의 재림. 1975년생.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2002년부터 [불교신문]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 본명은 ‘장영섭.’ 회사원이기도 하고 작가이기도 하고 가수이기도 하고 철학자이기도 하다. 《불행하라 오로지 달마처럼》,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문답》, 《불교에 관한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물음 49》, 《불교는 왜 그래?》, 《길 위의 절》, 《죽을 만큼 힘들 때 읽는 책》 등 10권의 책을 냈다. 문화체육관광부 세종도서에 몇 번 선정됐다. 글 써서 먹고 산다.
01 불교에서는 신神을 믿지 않는다고?
02 ‘공空하다’는 건 결국 다 허무하다는 뜻 아닌가?
03 스님들은 왜 삭발을 하나?
04 절에서는 왜 새벽 3시에 기상하나?
05 스님들도 결혼할 수 있나?
06 스님들은 언제부터 채식을 했나?
07 목사는 목사이고, 신부는 신부인데, 왜 스님만 ‘님’ 자를 붙일까?
08 부처님은 원래부터 곱슬머리였나?
09 중도中道는 중간을 뜻하는 말인가?
10 사리는 왜 생기나?
11 절에서는 왜 여성을 ‘보살님’이라고 부를까?
12 무소유, 정말 아무것도 갖지 말아야 하나?
13 관세음보살은 여성인가, 남성인가?
14 ‘달마’가 무섭게 생긴 까닭은?
15 ‘절’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16 ‘야단법석’이 불교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17 스님들에게는 왜 삼배를 하나?
18 『서유기』에 등장하는 ‘삼장 법사’가 실존 인물이었다고?
19 ‘부처님오신날’은 왜 나라마다 다른가?
20 ‘본래 부처’라면서 왜 수행을 계속하나?
21 탑의 층수는 왜 다 홀수일까?
22 마조 도일, 임제 의현… 어떤 스님들은 법명이 왜 네 글자인가?
23 스님들이 애완동물을 키워도 되나?
24 선종禪宗에는 왜 6조까지만 있을까?
25 장애인은 스님이 될 수 없다는데, 그 이유는?
26 불립문자不立文字, 말을 하지 말라는 뜻인가?
27 혜명화, 무량심, 진여성… 여성 신도의 법명은 왜 세 글자일까?
28 어떤 스님을 ‘큰스님’이라고 부르나?
29 절은 왜 산속에 많은가?
30 먼지 안에 우주가 들어 있다고?
31 ‘수리수리마수리’는 무슨 뜻일까?
32 비슷하게 생긴 나치 문양과 만(卍) 자, 히틀러는 불교를 믿었나?
33 법당에 밥을 하루에 한 번만 올리는 까닭은?
34 49재는 정말 49일간 지내나?
35 부처님은 언제부터 ‘부처님’으로 불렸나?
36 ‘무아’를 이야기하는데, 어떻게 윤회가 가능한가?
37 극락이 ‘미아리’에 있다고?
38 어떤 절은 왜 ‘○○사’라 하고, 어떤 절은 왜 ‘○○암’이라고 하나?
39 스님들이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는 이유는?
40 군인 신분의 비구니 스님이 있다고?
41 팔만대장경 경판 수는 정말 8만 개인가?
42 사찰 대중 전원이 동의하면 소도 잡아먹을 수 있다?
43 스님들이 담배를 피워도 되나?
44 일반 신도가 승복을 입어도 되나?
45 ‘입적’이란 표현은 스님에게만 쓸 수 있나?
46 ‘천상천하유아독존’은 나만 존귀하다는 뜻인가?
47 부처님의 고향 인도에는 왜 불교 신자가 없을까?
48 ‘천도제’인가, ‘천도재’인가?
49 108번뇌라는데, 번뇌가 정말 108가지나 되나?
공관空觀은 이러한 ‘흐름’에 대한 사유다. ‘이것’에 매몰되면 ‘저것’에 몽매해지는 법이다. ‘돌고 돌고 돈다’는 순환의 원리를 내면화하면, 얽매이지 않을 수 있고 오판을 줄일 수 있다. 단순하고 질박하게 사는 자에게 극락은 멀지 않고 심지어 실재한다. 마음에 걸림과 쓰라림이 없을 때다. 전화위복도 새옹지마도 사실상 부처님의 법문이다. 그리하여 공의 적절한 실천은 ‘내려놓음’일 것이다. 모든 것은 사라진다. 그러므로 눈부시다.
---「‘공空하다’는 건 결국 다 허무하다는 뜻 아닌가?」중에서
1995년 인하대학교 연구팀이 사리의 성분을 조사했고 그 결과가 언론에 보도됐다. 전체적으로 뼈와 유사하지만 프로트악티늄과 리튬, 티타늄 등의 광물질이 섞여 있었다. 아울러 사리의 위상을 애써 폄하하려는 쪽에서 주장하는 ‘담석’이나 ‘결석’과는 형질이 다르다는 점도 밝혀졌다. 무엇보다 경도가 압권이었다. 사리는 1만5,000파운드의 압력에서 부서졌다. 1만2,000파운드에서 부서지는 강철보다 단단하다는 게 입증된 것이다. 오랜 금욕 생활로 정액이 축적된 것이라는 키득거림은 사실무근이다.---「사리는 왜 생기나?」중에서
한편 당초에는 청정하고 고결했던 어의語義가 왜곡되고 훼손된 경우도 나타난다. 조선 시대 숭유억불의 흔적일 수 있다. 해방 이후 국가권력의 비호로 급성장한 개신교에 밀려 숨죽여야 했던 세월의 응달이란 목소리도 보인다. 예컨대 오늘날 난리법석 또는 난장판과 동의어로 취급받는 ‘야단법석野壇法席’은 야외에서 열리는 대규모의 법회를 의미했다. ‘싸움의 끝장을 보자’는 의미로 사용하는 이판사판理判事判도 수행에 전념하는 스님인 이판과 절의 행정을 맡는 스님인 사판의 총칭이 뒤틀린 말이다. 강사講師 스님을 가리키는 ‘아사리阿?梨’가 ‘개판’과 유사한 아사리판으로 변질된 것도 안타깝다. “야, 이 화상아!” 함량 미달의 인간을 골릴 때 쓰는 화상和尙이란 폄칭은 본래 지혜와 덕망이 높은 큰스님을 향한 존칭이었다. 부처님의 친절하고 유려한 설법을 뜻하던 장광설長廣舌은 이즈막 쓸데없이 길기만 한 중언부언을 손가락질할 목적으로 애용된다.
---「‘야단법석’이 불교에서 유래한 말이라고?」중에서
부처님은 『범망경梵網經』에서 “중생에게 손해를 끼치면 안 된다”며 “고양이, 살쾡이, 돼지, 개 따위를 기르지 말라”고 명시했다. 키우면 안 되는 동물을 명확하게 못 박은 점이 눈에 띈다. 이는 48경계輕戒 가운데 하나로 가벼운 죄이지만 어쨌든 죄다. 운문사 승가대학장 일진 스님은 “살쾡이는 물론이거니와 쥐를 잡아먹는 고양이를 당시만 해도 마뜩치 않게 여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다른 생명을 잡아먹는 짐승뿐만 아니라 잡아먹기 위한 짐승도 기르지 않음으로써 보살로서의 윤리를 준수하라는 가르침”이라고 덧붙였다.
---「스님들이 애완동물을 키워도 되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