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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9 – 화장세계품 2
저자 여천 무비
분야 불교 경전
출판사 담앤북스
발행일 20140727
정가 14,000원
최초, 최고, 최대라는 세 가지 수식어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경전 『화엄경』『대방광불화엄경』(약칭 『화엄경』)은 불교의 수많은 경전(經典) 가운데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의 내용을 어떤 방편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보였기 때문에 그만큼 가장 어려운 경전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화엄경』은 불교 ‘최고’의 경전이기도 하지만 또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화엄경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4세기경부터 산스크리트에서 한역(漢譯)된 이래 『화엄경』은 동아시아 사상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6세기경에는 중국에 『화엄경』을 중심으로 한 종문(화엄종-현수종)이 성립해 중국불교사 전반을 주도하며 관통했고 이후 중국에 뿌리내린 선불교나 심지어 신유학에까지 『화엄경』의 영향이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한국 사상계에 화엄경이 미친 영향 역시 지대하다. 원효와 의상은 한국에 화엄철학의 기초를 다지고 화엄종의 문을 연 한국 사상계의 대표적인 두 거목이다. 이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승과(僧科)에서도 『화엄경』은 빠져 본 적이 없다.  특히 ‘종교’로서의 불교가 큰 위기에 처했던 조선 시대에도 매한가지였다. 승려는 물론 유학자들도 『화엄경』 읽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 선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화엄경』을 읽고 있는데 (『화엄경』의) 교차되어 나타나는 묘리가 (그렇게 된) 연유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초의 선사에게 『화엄경』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의중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교 안팎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라고 얘기하는 『화엄경』은 특히 근대 이후에는 그 유명세에 비해 더욱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이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너무 방대하고 너무 난해하였기 때문이다. 첫째, 화엄경은 너무 방대하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화엄경은 모두 4종이다. 각각 40권본, 60권본, 80권본이 있고 티베트어로 된 화엄경이 있다.(산스크리트로 된 것은 「십지품」과 「입법계품」 등 일부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되었다.) 이 중 40권본은 『화엄경』에서 「입법계품」만 따로 떼어 놓은 것이니 차치하고 60권본, 80권본, 그리고 티베트본이 있는데 그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누구나 선뜻 그 시작의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둘째는 난해함, 즉 단단한 언어와 이해의 벽이다. 산스크리트에서 한역된 『화엄경』은 근대 이후 모두 네 차례 한글화됐다. 용성, 운허, 탄허, 무비 스님이 역경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한글로 되어 있다고 누구나 『화엄경』을 볼 수는 없었다. 난해한 번역도 문제였지만 쉬운 한글이라도 한자 하나하나에 담겼던 뜻을 더 깊이 풀어내 주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한역 『화엄경』만큼 한글 『화엄경』 역시 접근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불교계 안팎에서는 스님이나 재가불자는 물론이고 동양사상 전반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화엄경』 ‘강설본’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오직 한 사람, 무비 스님만이 할 수 있었던 작업『화엄경』 강설본 출판의 요구는 오래되었지만 『화엄경』을 강설할 만한 실력 그리고 이걸 책으로 엮기 위해 원고를 쓸 막대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한 사람’이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화엄경』 강설은 중국불교에서도 당나라 시대 이후 청량 징관, 이통현 장자 등에 의해 오직 3~4차례만 시도되었던 대역사이고 근대 이후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을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만약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이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무비 스님이었다. 탄허 스님의 강맥을 이은 무비 스님은 우리나라에서는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현존하는 대강백이면서 경전을 이해하기 쉽게 풀 수 있는 대중성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진척이 늦었던 『화엄경』 강설은 몇 년 전부터 스님과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화엄경』 법회가 몇 년째 계속되면서 서서히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화장세계품 280권의 『화엄경』 중에 「화장세계품」은 모두 3권이다.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9권은 「화장세계품」 두 번째 권이다. 화장장엄세계는 처음에 풍륜이 있고, 그 풍륜 위에 향수해가 있고, 그 향수해에 큰 연꽃이 있고, 그 연꽃을 사방으로 돌아가면서 다이아몬드로 된 대윤위산이 있다.또 대윤위산 안에 큰 땅이 있고, 그 큰 땅에 다시 향수해가 있다. 큰 땅 사이사이에 무수한 향수하香水河가 있어서 향수해로 흘러든다. 한량없는 향수해 가운데 또 연꽃이 있고, 그 연꽃 위에 세계종世界種이 있고, 하나하나의 세계종마다 또 말할 수 없이 많은 세계가 있다. 세계종은 위로 각각 20층이 있고, 중앙의 향수해와 세계종을 중심으로 해서 동쪽에 20층짜리 세계종, 다시 남쪽에 20층짜리 세계종, 그곳에서 오른쪽, 오른쪽, 오른쪽으로 계속해서 돌아가면서 각각 20층짜리의 세계종이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화장세계품 제2권의 첫 제목이 동쪽의 이구염장향수해이다.
제목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8 – 화장세계품 1
저자 여천 무비
분야 불교 경전
출판사 담앤북스
발행일 20140615
정가 14,000원
최초, 최고, 최대라는 세 가지 수식어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경전 『화엄경』『대방광불화엄경』(약칭 『화엄경』)은 불교의 수많은 경전(經典) 가운데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의 내용을 어떤 방편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보였기 때문에 그만큼 가장 어려운 경전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화엄경』은 불교 ‘최고’의 경전이기도 하지만 또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화엄경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4세기경부터 산스크리트에서 한역(漢譯)된 이래 『화엄경』은 동아시아 사상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6세기경에는 중국에 『화엄경』을 중심으로 한 종문(화엄종-현수종)이 성립해 중국불교사 전반을 주도하며 관통했고 이후 중국에 뿌리내린 선불교나 심지어 신유학에까지 『화엄경』의 영향이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한국 사상계에 화엄경이 미친 영향 역시 지대하다. 원효와 의상은 한국에 화엄철학의 기초를 다지고 화엄종의 문을 연 한국 사상계의 대표적인 두 거목이다. 이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승과(僧科)에서도 『화엄경』은 빠져 본 적이 없다.  특히 ‘종교’로서의 불교가 큰 위기에 처했던 조선 시대에도 매한가지였다. 승려는 물론 유학자들도 『화엄경』 읽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 선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화엄경』을 읽고 있는데 (『화엄경』의) 교차되어 나타나는 묘리가 (그렇게 된) 연유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초의 선사에게 『화엄경』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의중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교 안팎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라고 얘기하는 『화엄경』은 특히 근대 이후에는 그 유명세에 비해 더욱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이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너무 방대하고 너무 난해하였기 때문이다. 첫째, 화엄경은 너무 방대하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화엄경은 모두 4종이다. 각각 40권본, 60권본, 80권본이 있고 티베트어로 된 화엄경이 있다.(산스크리트로 된 것은 「십지품」과 「입법계품」 등 일부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되었다.) 이 중 40권본은 『화엄경』에서 「입법계품」만 따로 떼어 놓은 것이니 차치하고 60권본, 80권본, 그리고 티베트본이 있는데 그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누구나 선뜻 그 시작의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둘째는 난해함, 즉 단단한 언어와 이해의 벽이다. 산스크리트에서 한역된 『화엄경』은 근대 이후 모두 네 차례 한글화됐다. 용성, 운허, 탄허, 무비 스님이 역경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한글로 되어 있다고 누구나 『화엄경』을 볼 수는 없었다. 난해한 번역도 문제였지만 쉬운 한글이라도 한자 하나하나에 담겼던 뜻을 더 깊이 풀어내 주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한역 『화엄경』만큼 한글 『화엄경』 역시 접근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불교계 안팎에서는 스님이나 재가불자는 물론이고 동양사상 전반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화엄경』 ‘강설본’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오직 한 사람, 무비 스님만이 할 수 있었던 작업『화엄경』 강설본 출판의 요구는 오래되었지만 『화엄경』을 강설할 만한 실력 그리고 이걸 책으로 엮기 위해 원고를 쓸 막대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한 사람’이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화엄경』 강설은 중국불교에서도 당나라 시대 이후 청량 징관, 이통현 장자 등에 의해 오직 3~4차례만 시도되었던 대역사이고 근대 이후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을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만약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이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무비 스님이었다. 탄허 스님의 강맥을 이은 무비 스님은 우리나라에서는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현존하는 대강백이면서 경전을 이해하기 쉽게 풀 수 있는 대중성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진척이 늦었던 『화엄경』 강설은 몇 년 전부터 스님과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화엄경』 법회가 몇 년째 계속되면서 서서히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화장세계품 1『대방광불화엄경 강설』 8권은 「화장세계품」 첫 번째 권이 포함되어 있다. 「화장세계품」은 모두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엄경』의 안목으로 보면 우리가 사는 세계는 아름다운 꽃을 가득 채워 여러 가지 모습으로 꾸미고 장엄한 세계다. 이 아름답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광대한 세계는 비로자나 부처님이 과거에 부처가 되기 위해 수행을 할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서원으로 청정하게 장엄한 것이다. 불교 경전에서는 극락세계, 용화세계 등 여러 가지 세계를 말하고 있으나 화장세계가 가장 이상적인 세계다.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8권에서는 이러한 화장세계를 묘사고 있다. 
제목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7 – 보현삼매품 / 세계성취품
저자 여천 무비
분야 불교 경전
출판사 담앤북스
발행일 20140615
정가 14,000원
최초, 최고, 최대라는 세 가지 수식어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경전 『화엄경』『대방광불화엄경』(약칭 『화엄경』)은 불교의 수많은 경전(經典) 가운데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의 내용을 어떤 방편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보였기 때문에 그만큼 가장 어려운 경전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화엄경』은 불교 ‘최고’의 경전이기도 하지만 또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화엄경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4세기경부터 산스크리트에서 한역(漢譯)된 이래 『화엄경』은 동아시아 사상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6세기경에는 중국에 『화엄경』을 중심으로 한 종문(화엄종-현수종)이 성립해 중국불교사 전반을 주도하며 관통했고 이후 중국에 뿌리내린 선불교나 심지어 신유학에까지 『화엄경』의 영향이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한국 사상계에 화엄경이 미친 영향 역시 지대하다. 원효와 의상은 한국에 화엄철학의 기초를 다지고 화엄종의 문을 연 한국 사상계의 대표적인 두 거목이다. 이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승과(僧科)에서도 『화엄경』은 빠져 본 적이 없다.  특히 ‘종교’로서의 불교가 큰 위기에 처했던 조선 시대에도 매한가지였다. 승려는 물론 유학자들도 『화엄경』 읽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 선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화엄경』을 읽고 있는데 (『화엄경』의) 교차되어 나타나는 묘리가 (그렇게 된) 연유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초의 선사에게 『화엄경』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의중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교 안팎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라고 얘기하는 『화엄경』은 특히 근대 이후에는 그 유명세에 비해 더욱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이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너무 방대하고 너무 난해하였기 때문이다. 첫째, 화엄경은 너무 방대하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화엄경은 모두 4종이다. 각각 40권본, 60권본, 80권본이 있고 티베트어로 된 화엄경이 있다.(산스크리트로 된 것은 「십지품」과 「입법계품」 등 일부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되었다.) 이 중 40권본은 『화엄경』에서 「입법계품」만 따로 떼어 놓은 것이니 차치하고 60권본, 80권본, 그리고 티베트본이 있는데 그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누구나 선뜻 그 시작의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둘째는 난해함, 즉 단단한 언어와 이해의 벽이다. 산스크리트에서 한역된 『화엄경』은 근대 이후 모두 네 차례 한글화됐다. 용성, 운허, 탄허, 무비 스님이 역경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한글로 되어 있다고 누구나 『화엄경』을 볼 수는 없었다. 난해한 번역도 문제였지만 쉬운 한글이라도 한자 하나하나에 담겼던 뜻을 더 깊이 풀어내 주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한역 『화엄경』만큼 한글 『화엄경』 역시 접근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불교계 안팎에서는 스님이나 재가불자는 물론이고 동양사상 전반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화엄경』 ‘강설본’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오직 한 사람, 무비 스님만이 할 수 있었던 작업『화엄경』 강설본 출판의 요구는 오래되었지만 『화엄경』을 강설할 만한 실력 그리고 이걸 책으로 엮기 위해 원고를 쓸 막대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한 사람’이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화엄경』 강설은 중국불교에서도 당나라 시대 이후 청량 징관, 이통현 장자 등에 의해 오직 3~4차례만 시도되었던 대역사이고 근대 이후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을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만약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이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무비 스님이었다. 탄허 스님의 강맥을 이은 무비 스님은 우리나라에서는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현존하는 대강백이면서 경전을 이해하기 쉽게 풀 수 있는 대중성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진척이 늦었던 『화엄경』 강설은 몇 년 전부터 스님과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화엄경』 법회가 몇 년째 계속되면서 서서히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보현삼매품 / 세계성취품『대방광불화엄경 강설』 7권에는 「보현삼매품普賢三昧品」과 「세계성취품世界成就品」이 포함되어 있다. 화엄경 전 80권 중 서론을 넘어 본론에 입구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보현삼매품普賢三昧品」에서는 보현보살이 여래의 가피를 얻어 여러 보살들의 마음을 짐작하고 불가사의한 미묘 법문을 연설하려고 비로자나여래장신삼매에 들어가서 안으로 사실과 이치를 관찰하고 밖으로 대중들의 근기를 살펴서 설법할 자세를 완전하게 갖춘다.이어지는 「세계성취품世界成就品」은 법계가 이와 같이 펼쳐져 있음[法界安立海]에 대한 물음에 답한 것으로 세계가 존재하게 된 여러 가지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세계는 곧 부처님과 보살들과 모든 중생과 일체 생명이 의지하여 살아가는 생활환경이다. 그것을 의지하는 과보, 즉 의보依報라 한다. 예컨대 거미는 평생 거미줄을 의지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거미줄은 나무를 의지하고, 나무는 땅을 의지하고, 땅은 또 온 우주를 의지하여 그렇게 존재한다. 부처님의 세계는 어떠하겠는가. 세계성취품에서는 부처님 세계의 이름들과 세계가 성취된 인연과 세계가 의지하여 머무는 일과 그 형상과 체성體性과 장엄과 방편과 부처님의출현과 머무는 겁劫과 겁의 변천과 무차별 등등을 낱낱이 설명하고 있다.
제목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6 – 여래현상품
저자 여천 무비
분야 불교 경전
출판사 담앤북스
발행일 20140407
정가 14,000원
최초, 최고, 최대라는 세 가지 수식어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경전 『화엄경』『대방광불화엄경』(약칭 『화엄경』)은 불교의 수많은 경전(經典) 가운데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의 내용을 어떤 방편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보였기 때문에 그만큼 가장 어려운 경전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화엄경』은 불교 ‘최고’의 경전이기도 하지만 또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화엄경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4세기경부터 산스크리트에서 한역(漢譯)된 이래 『화엄경』은 동아시아 사상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6세기경에는 중국에 『화엄경』을 중심으로 한 종문(화엄종-현수종)이 성립해 중국불교사 전반을 주도하며 관통했고 이후 중국에 뿌리내린 선불교나 심지어 신유학에까지 『화엄경』의 영향이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한국 사상계에 화엄경이 미친 영향 역시 지대하다. 원효와 의상은 한국에 화엄철학의 기초를 다지고 화엄종의 문을 연 한국 사상계의 대표적인 두 거목이다. 이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승과(僧科)에서도 『화엄경』은 빠져 본 적이 없다.  특히 ‘종교’로서의 불교가 큰 위기에 처했던 조선 시대에도 매한가지였다. 승려는 물론 유학자들도 『화엄경』 읽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 선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화엄경』을 읽고 있는데 (『화엄경』의) 교차되어 나타나는 묘리가 (그렇게 된) 연유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초의 선사에게 『화엄경』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의중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교 안팎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라고 얘기하는 『화엄경』은 특히 근대 이후에는 그 유명세에 비해 더욱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이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너무 방대하고 너무 난해하였기 때문이다. 첫째, 화엄경은 너무 방대하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화엄경은 모두 4종이다. 각각 40권본, 60권본, 80권본이 있고 티베트어로 된 화엄경이 있다.(산스크리트로 된 것은 「십지품」과 「입법계품」 등 일부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되었다.) 이 중 40권본은 『화엄경』에서 「입법계품」만 따로 떼어 놓은 것이니 차치하고 60권본, 80권본, 그리고 티베트본이 있는데 그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누구나 선뜻 그 시작의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둘째는 난해함, 즉 단단한 언어와 이해의 벽이다. 산스크리트에서 한역된 『화엄경』은 근대 이후 모두 네 차례 한글화됐다. 용성, 운허, 탄허, 무비 스님이 역경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한글로 되어 있다고 누구나 『화엄경』을 볼 수는 없었다. 난해한 번역도 문제였지만 쉬운 한글이라도 한자 하나하나에 담겼던 뜻을 더 깊이 풀어내 주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한역 『화엄경』만큼 한글 『화엄경』 역시 접근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불교계 안팎에서는 스님이나 재가불자는 물론이고 동양사상 전반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화엄경』 ‘강설본’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오직 한 사람, 무비 스님만이 할 수 있었던 작업『화엄경』 강설본 출판의 요구는 오래되었지만 『화엄경』을 강설할 만한 실력 그리고 이걸 책으로 엮기 위해 원고를 쓸 막대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한 사람’이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화엄경』 강설은 중국불교에서도 당나라 시대 이후 청량 징관, 이통현 장자 등에 의해 오직 3~4차례만 시도되었던 대역사이고 근대 이후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을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만약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이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무비 스님이었다. 탄허 스님의 강맥을 이은 무비 스님은 우리나라에서는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현존하는 대강백이면서 경전을 이해하기 쉽게 풀 수 있는 대중성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진척이 늦었던 『화엄경』 강설은 몇 년 전부터 스님과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화엄경』 법회가 몇 년째 계속되면서 서서히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여래현상품「여래현상품如來現相品」은 여래가 그 모습을 나타내 보이는 품이다. 『대방광불화엄경』은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이라는 길고 긴 서분序分이 5권으로 끝나고 「여래현상품」부터는 본론인 정종분正宗分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서분인 「세주묘엄품」이 『화엄경』이라는 가르침이 탄생하게 된 인연을 밝힌 내용이라면, 설법하는 의식을 설한 내용으로는 『여래현상품』과 『보현삼매품』이 있고, 설법의 내용을 바로 진술한 것으로는 「세계성취품」과 「화장세계품」과 「비로자나품」이 있다. 이렇게 여섯 품이 제1회에 보리도량에서 설한 6품 경이다. 달리 표현하면, 불과佛果의 내용을 들어 보이고 그 불과가 인간이 이르러 갈 수 있는 궁극의 세계임을 권장하여 신심을 내게 하는 내용이다. 그것을 전통적으로는 신信· 해解· 행行· 증證중에서 신信에 해당하는 거과권락생신분擧果勸樂生信分이라 한다. 
제목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5 : 세주묘엄품 (5)
저자 여천 무비
분야 불교 경전
출판사 담앤북스
발행일 20140407
정가 14,000원
최초, 최고, 최대라는 세 가지 수식어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경전 『화엄경』『대방광불화엄경』(약칭 『화엄경』)은 불교의 수많은 경전(經典)가운데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의 내용을 어떤 방편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보였기 때문에 그만큼 가장 어려운 경전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화엄경』은 불교 ‘최고’의 경전이기도 하지만 또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하지만 화엄경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4세기경부터 산스크리트에서 한역(漢譯)된 이래 『화엄경』은 동아시아 사상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6세기경에는 중국에 『화엄경』을 중심으로 한 종문(화엄종-현수종)이 성립해 중국불교사 전반을 주도하며 관통했고 이후 중국에 뿌리내린 선불교나 심지어 신유학에까지 『화엄경』의 영향이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한국 사상계에 화엄경이 미친 영향 역시 지대하다. 원효와 의상은 한국에 화엄철학의 기초를 다지고 화엄종의 문을 연 한국 사상계의 대표적인 두 거목이다. 이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승과(僧科)에서도 『화엄경』은 빠져본 적이 없다. 특히 ‘종교’로서의 불교가 큰 위기에 처했던 조선 시대에도 매한가지였다. 승려는 물론 유학자들도 『화엄경』 읽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 선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화엄경』을 읽고 있는데 (『화엄경』의) 교차되어 나타나는 묘리가 (그렇게 된) 연유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초의 선사에게 『화엄경』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의중을 전달하기도 했다.하지만 불교 안팎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라고 얘기하는 『화엄경』은 특히 근대 이후에는 그 유명세에 비해 더욱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이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너무 방대하고 너무 난해하였기 때문이다.첫째, 화엄경은 너무 방대하다.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화엄경은 모두 4종이다. 각각 40권본, 60권본, 80권본이 있고 티베트어로 된 화엄경이 있다.(산스크리트로 된 것은 「십지품」과 「입법계품」 등 일부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되었다.) 이중 40권본은 『화엄경』에서 「입법계품」만 따로 떼어 놓은 것이니 차치하고 60권본, 80권본, 그리고 티베트본이 있는데 그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누구나 선뜻 그 시작의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둘째는 난해함, 즉 단단한 언어와 이해의 벽이다.산스크리트에서 한역된 『화엄경』은 근대 이후 모두 세 차례 한글화 됐다. 탄허, 월운, 무비 스님이 역경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한글로 되어 있다고 누구나 『화엄경』을 볼 수는 없었다. 난해한 번역도 문제였지만 쉬운 한글이라도 한자 하나하나에 담겼던 뜻을 더 깊이 풀어내주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한역 『화엄경』만큼 한글 『화엄경』 역시 접근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그래서 오랫동안 불교계 안팎에서는 스님이나 재가불자는 물론이고 동양사상 전반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화엄경』 ‘강설본’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오직 한 사람, 무비 스님만이 할 수 있었던 작업『화엄경』 강설본 출판의 요구는 오래되었지만 『화엄경』을 강설할 만한 실력 그리고 이걸 책으로 엮기 위해 원고를 쓸 막대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한 사람’이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었다. 사실 『화엄경』 강설은 중국불교에서도 당나라 시대 이후 청량 징관, 이통현 장자 등에 의해 오직 3~4차례만 시도되었던 대역사이고 근대 이후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을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만약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이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무비 스님이었다. 탄허 스님의 강맥을 이은 무비 스님은 우리나라에서는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현존하는 대강백이면서 경전을 이해하기 쉽게 풀 수 있는 대중성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진척이 늦었던 『화엄경』 강설은 몇 년 전부터 스님과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화엄경』 법회가 몇 년째 계속되면서 서서히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2013년부터 80권 완간을 목표로 준비했던 화엄경 강설은 2014년 4월부터 매년 8~10권씩 모두 10년에 걸쳐 완성된다.『화엄경』은 어떤 경전인가화엄경(華嚴經)의 원제는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다. 원래 산스크리트로 된 경전이었으며 4세기경 『60화엄』이 그리고 7세기경 『80화엄』이 한역되었다. 총 4종의 『화엄경』이 유통되고 있다. 『40권본』, 『60권본』, 『80권본』 그리고 티베트어로 된 『장역화엄(藏譯華嚴)』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 중 『40권본』은 『60권본』과 『80권본』 속에 있는 마지막 장인 「입법계품」에 해당되기 때문에 한역된 『화엄경』은 총 2종 그리고 티베트어로 된 『화엄경』이 1종이다. (산스크리트에서 한역된 경전 중 꽤 많은 부분이 그렇지만 『화엄경』 역시 산스크리트본은 「십지품」과 「입법계품」만 남아 있고 모두 소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중 60화엄과 80화엄을 위주로 알아보자.첫째 『60화엄』은 3본 화엄경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불타발타라가 동진(東晋)의 수도 건강(健康)에 있는 도량사라는 절에서 2년 3개월에 걸쳐 번역해 낸 경이며, 418년 3월에 번역을 시작해서 420년 6월에 마치고 그 다음 해인 421년 12월에 교정을 마쳐 완성해 냈다. 이 경은 60권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60화엄』이라 하고 동진 때 번역되었기 때문에 진역(晋譯)이라고도 하며, 신역(新譯)에 대한 대칭의 뜻으로 구역(舊譯)이라고도 한다.다음 『80화엄』은 실차난타가 695년부터 699년까지 4년에 걸쳐 번역해 낸 경이다. 이 번역 작업에는 보리유지와 의정 그리고 중국 화엄의 대성자 현수 법장(法藏)도 참여했다. 이 경은 80권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80화엄』이라 하고 당대(唐代)에 번역되었기 때문에 『당경(唐經)』이라고도 한다.현재 일본에서는 주로 60권본 『화엄경』을 한국에서는 주로 80권본 『화엄경』을 교재로 채택하고 있다. 특히 80화엄은 문장이 아름답고 그 내용 또한 이해하기 쉽게 되어 있다는 평가다.화엄경 80권 본은 7처(설법장소), 9회(설법 모임 수) 39품으로 구성돼 있다.(60권본은 34품으로 구성) 이 중 제1회와 2회는 지상에서, 제3회부터 제6회까지는 천상에서, 제7회부터 제9회까지는 다시 지상에서 설법이 행해지고 있는 것을 표현했다.널리 알려진 선재동자의 구법이야기는 제9회에 설해진 「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 나오는 내용이다. 이 품에서 선재(善財, Sudhana) 동자는 53인의 다양한 선지식을 만나 구도하는 대승정신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세주묘엄품 1-5이번에 시리즈의 첫 번째로 발간된 분량은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 1권~5권이다. 세주묘엄(世主妙嚴)이란 눈앞에 펼쳐진 두두물물이 모두가 하나같이 세상의 주인으로서 아름답게 장엄한 모습이라는 뜻이다.이 품에서는 법회에 모인 청중은 보살 대중이 20명, 그 외의 대중이 390명으로 모두 410명이다. 이들이 부처님의 지혜와 공덕과 자비와 원력과 신통과 교화 등등을 찬탄하는 노래를 끝없이 부른다.서문에서 무비 스님은 이 대목에 대해 이렇게 밝히고 있다.“선게(禪偈)에 ‘구류동거일법계 자라장리살진주(九類同居一法界紫羅帳裏撒珍珠)’라는 말이 있다. “갖가지 종류의 사람들과 생명들과 온갖 천지만물과 삼라만상이 모두가 같은 법계에 살고 있는 모습이 마치 영롱하게 빛나는 진주들을 아름다운 비단 위에 뿌려 놓은 듯하다.”라는 뜻이다. 이 세상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도 모두가 더없이 아름답고 더없이 존귀하고 더없이 소중한 것이라는 뜻이다. 거기에 무슨 차별이 있겠는가. 무슨 분별이 있겠는가. 그래서 세상은 지금 이대로 모두가 주인으로서 당당하게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고 그 모습은 지극히 아름답게 장엄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품에 등장하는 세상의 주인들은 우주만유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존재들을 다 열거하여 세상의 주인이라고 표현하였다.이처럼 「세주묘엄품」에는 모든 존재의 다른 이름인 수많은 불보살 신중의 이름이 나열되면서 부처님을 찬탄하는 내용이다.
제목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4 : 세주묘엄품 (4)
저자 여천 무비
분야 불교 경전
출판사 담앤북스
발행일 20140407
정가 14,000원
최초, 최고, 최대라는 세 가지 수식어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경전 『화엄경』『대방광불화엄경』(약칭 『화엄경』)은 불교의 수많은 경전(經典) 가운데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의 내용을 어떤 방편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보였기 때문에 그만큼 가장 어려운 경전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화엄경』은 불교 ‘최고’의 경전이기도 하지만 또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화엄경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4세기경부터 산스크리트에서 한역(漢譯)된 이래 『화엄경』은 동아시아 사상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6세기경에는 중국에 『화엄경』을 중심으로 한 종문(화엄종-현수종)이 성립해 중국불교사 전반을 주도하며 관통했고 이후 중국에 뿌리내린 선불교나 심지어 신유학에까지 『화엄경』의 영향이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한국 사상계에 화엄경이 미친 영향 역시 지대하다. 원효와 의상은 한국에 화엄철학의 기초를 다지고 화엄종의 문을 연 한국 사상계의 대표적인 두 거목이다. 이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승과(僧科)에서도 『화엄경』은 빠져본 적이 없다.  특히 ‘종교’로서의 불교가 큰 위기에 처했던 조선 시대에도 매한가지였다. 승려는 물론 유학자들도 『화엄경』 읽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 선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화엄경』을 읽고 있는데 (『화엄경』의) 교차되어 나타나는 묘리가 (그렇게 된) 연유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초의 선사에게 『화엄경』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의중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교 안팎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라고 얘기하는 『화엄경』은 특히 근대 이후에는 그 유명세에 비해 더욱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이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너무 방대하고 너무 난해하였기 때문이다. 첫째, 화엄경은 너무 방대하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화엄경은 모두 4종이다. 각각 40권본, 60권본, 80권본이 있고 티베트어로 된 화엄경이 있다.(산스크리트로 된 것은 「십지품」과 「입법계품」 등 일부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되었다.) 이중 40권본은 『화엄경』에서 「입법계품」만 따로 떼어 놓은 것이니 차치하고 60권본, 80권본, 그리고 티베트본이 있는데 그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누구나 선뜻 그 시작의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둘째는 난해함, 즉 단단한 언어와 이해의 벽이다. 산스크리트에서 한역된 『화엄경』은 근대 이후 모두 세 차례 한글화 됐다. 탄허, 월운, 무비 스님이 역경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한글로 되어 있다고 누구나 『화엄경』을 볼 수는 없었다. 난해한 번역도 문제였지만 쉬운 한글이라도 한자 하나하나에 담겼던 뜻을 더 깊이 풀어내주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한역 『화엄경』만큼 한글 『화엄경』 역시 접근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불교계 안팎에서는 스님이나 재가불자는 물론이고 동양사상 전반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화엄경』 ‘강설본’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오직 한 사람, 무비 스님만이 할 수 있었던 작업『화엄경』 강설본 출판의 요구는 오래되었지만 『화엄경』을 강설할 만한 실력 그리고 이걸 책으로 엮기 위해 원고를 쓸 막대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한 사람’이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었다. 사실 『화엄경』 강설은 중국불교에서도 당나라 시대 이후 청량 징관, 이통현 장자 등에 의해 오직 3~4차례만 시도되었던 대역사이고 근대 이후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을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만약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이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무비 스님이었다. 탄허 스님의 강맥을 이은 무비 스님은 우리나라에서는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현존하는 대강백이면서 경전을 이해하기 쉽게 풀 수 있는 대중성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진척이 늦었던 『화엄경』 강설은 몇 년 전부터 스님과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화엄경』 법회가 몇 년째 계속되면서 서서히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화엄경』은 어떤 경전인가화엄경(華嚴經)의 원제는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다. 원래 산스크리트로 된 경전이었으며 4세기경 『60화엄』이 그리고 7세기경 『80화엄』이 한역되었다. 총 4종의 『화엄경』이 유통되고 있다. 『40권본』, 『60권본』, 『80권본』 그리고 티베트어로 된 『장역화엄(藏譯華嚴)』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 중 『40권본』은 『60권본』과 『80권본』 속에 있는 마지막 장인 「입법계품」에 해당되기 때문에 한역된 『화엄경』은 총 2종 그리고 티베트어로 된 『화엄경』이 1종이다. (산스크리트에서 한역된 경전 중 꽤 많은 부분이 그렇지만 『화엄경』 역시 산스크리트본은 「십지품」과 「입법계품」만 남아 있고 모두 소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중 60화엄과 80화엄을 위주로 알아보자. 첫째 『60화엄』은 3본 화엄경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불타발타라가 동진(東晋)의 수도 건강(健康)에 있는 도량사라는 절에서 2년 3개월에 걸쳐 번역해 낸 경이며, 418년 3월에 번역을 시작해서 420년 6월에 마치고 그 다음 해인 421년 12월에 교정을 마쳐 완성해 냈다. 이 경은 60권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60화엄』이라 하고 동진 때 번역되었기 때문에 진역(晋譯)이라고도 하며, 신역(新譯)에 대한 대칭의 뜻으로 구역(舊譯)이라고도 한다. 다음 『80화엄』은 실차난타가 695년부터 699년까지 4년에 걸쳐 번역해 낸 경이다. 이 번역 작업에는 보리유지와 의정 그리고 중국 화엄의 대성자 현수 법장(法藏)도 참여했다. 이 경은 80권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80화엄』이라 하고 당대(唐代)에 번역되었기 때문에 『당경(唐經)』이라고도 한다. 현재 일본에서는 주로 60권본 『화엄경』을 한국에서는 주로 80권본 『화엄경』을 교재로 채택하고 있다. 특히 80화엄은 문장이 아름답고 그 내용 또한 이해하기 쉽게 되어 있다는 평가다. 화엄경 80권 본은 7처(설법장소), 9회(설법 모임 수) 39품으로 구성돼 있다.(60권본은 34품으로 구성) 이 중 제1회와 2회는 지상에서, 제3회부터 제6회까지는 천상에서, 제7회부터 제9회까지는 다시 지상에서 설법이 행해지고 있는 것을 표현했다. 널리 알려진 선재동자의 구법이야기는 제9회에 설해진 「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 나오는 내용이다. 이 품에서 선재(善財, Sudhana) 동자는 53인의 다양한 선지식을 만나 구도하는 대승정신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세주묘엄품 1-5이번에 시리즈의 첫 번째로 발간된 분량은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 1권~5권이다. 세주묘엄(世主妙嚴)이란 눈앞에 펼쳐진 두두물물이 모두가 하나같이 세상의 주인으로서 아름답게 장엄한 모습이라는 뜻이다. 이 품에서는 법회에 모인 청중은 보살 대중이 20명, 그 외의 대중이 390명으로 모두 410명이다. 이들이 부처님의 지혜와 공덕과 자비와 원력과 신통과 교화 등등을 찬탄하는 노래를 끝없이 부른다. 서문에서 무비 스님은 이 대목에 대해 이렇게 밝히고 있다. “선게(禪偈)에 ‘구류동거일법계 자라장리살진주(九類同居一法界紫羅帳裏撒珍珠)’라는 말이 있다. “갖가지 종류의 사람들과 생명들과 온갖 천지만물과 삼라만상이 모두가 같은 법계에 살고 있는 모습이 마치 영롱하게 빛나는 진주들을 아름다운 비단 위에 뿌려 놓은 듯하다.”라는 뜻이다. 이 세상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도 모두가 더없이 아름답고 더없이 존귀하고 더없이 소중한 것이라는 뜻이다. 거기에 무슨 차별이 있겠는가. 무슨 분별이 있겠는가. 그래서 세상은 지금 이대로 모두가 주인으로서 당당하게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고 그 모습은 지극히 아름답게 장엄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품에 등장하는 세상의 주인들은 우주만유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존재들을 다 열거하여 세상의 주인이라고 표현하였다.
제목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3: 세주묘엄품 (3)
저자 여천 무비
분야 불교 경전
출판사 담앤북스
발행일 20140420
정가 14,000원
최초, 최고, 최대라는 세 가지 수식어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경전 『화엄경』『대방광불화엄경』(약칭 『화엄경』)은 불교의 수많은 경전(經典)가운데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의 내용을 어떤 방편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보였기 때문에 그만큼 가장 어려운 경전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화엄경』은 불교 ‘최고’의 경전이기도 하지만 또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하지만 화엄경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4세기경부터 산스크리트에서 한역(漢譯)된 이래 『화엄경』은 동아시아 사상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6세기경에는 중국에 『화엄경』을 중심으로 한 종문(화엄종-현수종)이 성립해 중국불교사 전반을 주도하며 관통했고 이후 중국에 뿌리내린 선불교나 심지어 신유학에까지 『화엄경』의 영향이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한국 사상계에 화엄경이 미친 영향 역시 지대하다. 원효와 의상은 한국에 화엄철학의 기초를 다지고 화엄종의 문을 연 한국 사상계의 대표적인 두 거목이다. 이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승과(僧科)에서도 『화엄경』은 빠져본 적이 없다. 특히 ‘종교’로서의 불교가 큰 위기에 처했던 조선 시대에도 매한가지였다. 승려는 물론 유학자들도 『화엄경』 읽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 선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화엄경』을 읽고 있는데 (『화엄경』의) 교차되어 나타나는 묘리가 (그렇게 된) 연유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초의 선사에게 『화엄경』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의중을 전달하기도 했다.하지만 불교 안팎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라고 얘기하는 『화엄경』은 특히 근대 이후에는 그 유명세에 비해 더욱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이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너무 방대하고 너무 난해하였기 때문이다.첫째, 화엄경은 너무 방대하다.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화엄경은 모두 4종이다. 각각 40권본, 60권본, 80권본이 있고 티베트어로 된 화엄경이 있다.(산스크리트로 된 것은 「십지품」과 「입법계품」 등 일부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되었다.) 이중 40권본은 『화엄경』에서 「입법계품」만 따로 떼어 놓은 것이니 차치하고 60권본, 80권본, 그리고 티베트본이 있는데 그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누구나 선뜻 그 시작의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둘째는 난해함, 즉 단단한 언어와 이해의 벽이다.산스크리트에서 한역된 『화엄경』은 근대 이후 모두 세 차례 한글화 됐다. 탄허, 월운, 무비 스님이 역경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한글로 되어 있다고 누구나 『화엄경』을 볼 수는 없었다. 난해한 번역도 문제였지만 쉬운 한글이라도 한자 하나하나에 담겼던 뜻을 더 깊이 풀어내주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한역 『화엄경』만큼 한글 『화엄경』 역시 접근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그래서 오랫동안 불교계 안팎에서는 스님이나 재가불자는 물론이고 동양사상 전반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화엄경』 ‘강설본’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오직 한 사람, 무비 스님만이 할 수 있었던 작업『화엄경』 강설본 출판의 요구는 오래되었지만 『화엄경』을 강설할 만한 실력 그리고 이걸 책으로 엮기 위해 원고를 쓸 막대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한 사람’이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었다. 사실 『화엄경』 강설은 중국불교에서도 당나라 시대 이후 청량 징관, 이통현 장자 등에 의해 오직 3~4차례만 시도되었던 대역사이고 근대 이후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을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만약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이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무비 스님이었다. 탄허 스님의 강맥을 이은 무비 스님은 우리나라에서는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현존하는 대강백이면서 경전을 이해하기 쉽게 풀 수 있는 대중성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진척이 늦었던 『화엄경』 강설은 몇 년 전부터 스님과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화엄경』 법회가 몇 년째 계속되면서 서서히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2013년부터 80권 완간을 목표로 준비했던 화엄경 강설은 2014년 4월부터 매년 8~10권씩 모두 10년에 걸쳐 완성된다.『화엄경』은 어떤 경전인가화엄경(華嚴經)의 원제는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다. 원래 산스크리트로 된 경전이었으며 4세기경 『60화엄』이 그리고 7세기경 『80화엄』이 한역되었다. 총 4종의 『화엄경』이 유통되고 있다. 『40권본』, 『60권본』, 『80권본』 그리고 티베트어로 된 『장역화엄(藏譯華嚴)』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 중 『40권본』은 『60권본』과 『80권본』 속에 있는 마지막 장인 「입법계품」에 해당되기 때문에 한역된 『화엄경』은 총 2종 그리고 티베트어로 된 『화엄경』이 1종이다. (산스크리트에서 한역된 경전 중 꽤 많은 부분이 그렇지만 『화엄경』 역시 산스크리트본은 「십지품」과 「입법계품」만 남아 있고 모두 소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중 60화엄과 80화엄을 위주로 알아보자.첫째 『60화엄』은 3본 화엄경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불타발타라가 동진(東晋)의 수도 건강(健康)에 있는 도량사라는 절에서 2년 3개월에 걸쳐 번역해 낸 경이며, 418년 3월에 번역을 시작해서 420년 6월에 마치고 그 다음 해인 421년 12월에 교정을 마쳐 완성해 냈다. 이 경은 60권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60화엄』이라 하고 동진 때 번역되었기 때문에 진역(晋譯)이라고도 하며, 신역(新譯)에 대한 대칭의 뜻으로 구역(舊譯)이라고도 한다.다음 『80화엄』은 실차난타가 695년부터 699년까지 4년에 걸쳐 번역해 낸 경이다. 이 번역 작업에는 보리유지와 의정 그리고 중국 화엄의 대성자 현수 법장(法藏)도 참여했다. 이 경은 80권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80화엄』이라 하고 당대(唐代)에 번역되었기 때문에 『당경(唐經)』이라고도 한다.현재 일본에서는 주로 60권본 『화엄경』을 한국에서는 주로 80권본 『화엄경』을 교재로 채택하고 있다. 특히 80화엄은 문장이 아름답고 그 내용 또한 이해하기 쉽게 되어 있다는 평가다.화엄경 80권 본은 7처(설법장소), 9회(설법 모임 수) 39품으로 구성돼 있다.(60권본은 34품으로 구성) 이 중 제1회와 2회는 지상에서, 제3회부터 제6회까지는 천상에서, 제7회부터 제9회까지는 다시 지상에서 설법이 행해지고 있는 것을 표현했다.널리 알려진 선재동자의 구법이야기는 제9회에 설해진 「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 나오는 내용이다. 이 품에서 선재(善財, Sudhana) 동자는 53인의 다양한 선지식을 만나 구도하는 대승정신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세주묘엄품 1-5이번에 시리즈의 첫 번째로 발간된 분량은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 1권~5권이다. 세주묘엄(世主妙嚴)이란 눈앞에 펼쳐진 두두물물이 모두가 하나같이 세상의 주인으로서 아름답게 장엄한 모습이라는 뜻이다.이 품에서는 법회에 모인 청중은 보살 대중이 20명, 그 외의 대중이 390명으로 모두 410명이다. 이들이 부처님의 지혜와 공덕과 자비와 원력과 신통과 교화 등등을 찬탄하는 노래를 끝없이 부른다.서문에서 무비 스님은 이 대목에 대해 이렇게 밝히고 있다.“선게(禪偈)에 ‘구류동거일법계 자라장리살진주(九類同居一法界紫羅帳裏撒珍珠)’라는 말이 있다. “갖가지 종류의 사람들과 생명들과 온갖 천지만물과 삼라만상이 모두가 같은 법계에 살고 있는 모습이 마치 영롱하게 빛나는 진주들을 아름다운 비단 위에 뿌려 놓은 듯하다.”라는 뜻이다. 이 세상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도 모두가 더없이 아름답고 더없이 존귀하고 더없이 소중한 것이라는 뜻이다. 거기에 무슨 차별이 있겠는가. 무슨 분별이 있겠는가. 그래서 세상은 지금 이대로 모두가 주인으로서 당당하게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고 그 모습은 지극히 아름답게 장엄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품에 등장하는 세상의 주인들은 우주만유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존재들을 다 열거하여 세상의 주인이라고 표현하였다.이처럼 「세주묘엄품」에는 모든 존재의 다른 이름인 수많은 불보살 신중의 이름이 나열되면서 부처님을 찬탄하는 내용이다.
제목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2 : 세주묘엄품 (2)
저자 여천 무비
분야 불교 경전
출판사 담앤북스
발행일 20140407
정가 14,000원
최초, 최고, 최대라는 세 가지 수식어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경전 『화엄경』『대방광불화엄경』(약칭 『화엄경』)은 불교의 수많은 경전(經典)가운데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의 내용을 어떤 방편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보였기 때문에 그만큼 가장 어려운 경전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화엄경』은 불교 ‘최고’의 경전이기도 하지만 또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하지만 화엄경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4세기경부터 산스크리트에서 한역(漢譯)된 이래 『화엄경』은 동아시아 사상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6세기경에는 중국에 『화엄경』을 중심으로 한 종문(화엄종-현수종)이 성립해 중국불교사 전반을 주도하며 관통했고 이후 중국에 뿌리내린 선불교나 심지어 신유학에까지 『화엄경』의 영향이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한국 사상계에 화엄경이 미친 영향 역시 지대하다. 원효와 의상은 한국에 화엄철학의 기초를 다지고 화엄종의 문을 연 한국 사상계의 대표적인 두 거목이다. 이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승과(僧科)에서도 『화엄경』은 빠져본 적이 없다. 특히 ‘종교’로서의 불교가 큰 위기에 처했던 조선 시대에도 매한가지였다. 승려는 물론 유학자들도 『화엄경』 읽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 선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화엄경』을 읽고 있는데 (『화엄경』의) 교차되어 나타나는 묘리가 (그렇게 된) 연유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초의 선사에게 『화엄경』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의중을 전달하기도 했다.하지만 불교 안팎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라고 얘기하는 『화엄경』은 특히 근대 이후에는 그 유명세에 비해 더욱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이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너무 방대하고 너무 난해하였기 때문이다.첫째, 화엄경은 너무 방대하다.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화엄경은 모두 4종이다. 각각 40권본, 60권본, 80권본이 있고 티베트어로 된 화엄경이 있다.(산스크리트로 된 것은 「십지품」과 「입법계품」 등 일부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되었다.) 이중 40권본은 『화엄경』에서 「입법계품」만 따로 떼어 놓은 것이니 차치하고 60권본, 80권본, 그리고 티베트본이 있는데 그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누구나 선뜻 그 시작의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둘째는 난해함, 즉 단단한 언어와 이해의 벽이다.산스크리트에서 한역된 『화엄경』은 근대 이후 모두 세 차례 한글화 됐다. 탄허, 월운, 무비 스님이 역경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한글로 되어 있다고 누구나 『화엄경』을 볼 수는 없었다. 난해한 번역도 문제였지만 쉬운 한글이라도 한자 하나하나에 담겼던 뜻을 더 깊이 풀어내주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한역 『화엄경』만큼 한글 『화엄경』 역시 접근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그래서 오랫동안 불교계 안팎에서는 스님이나 재가불자는 물론이고 동양사상 전반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화엄경』 ‘강설본’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오직 한 사람, 무비 스님만이 할 수 있었던 작업『화엄경』 강설본 출판의 요구는 오래되었지만 『화엄경』을 강설할 만한 실력 그리고 이걸 책으로 엮기 위해 원고를 쓸 막대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한 사람’이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었다. 사실 『화엄경』 강설은 중국불교에서도 당나라 시대 이후 청량 징관, 이통현 장자 등에 의해 오직 3~4차례만 시도되었던 대역사이고 근대 이후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을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만약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이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무비 스님이었다. 탄허 스님의 강맥을 이은 무비 스님은 우리나라에서는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현존하는 대강백이면서 경전을 이해하기 쉽게 풀 수 있는 대중성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진척이 늦었던 『화엄경』 강설은 몇 년 전부터 스님과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화엄경』 법회가 몇 년째 계속되면서 서서히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2013년부터 80권 완간을 목표로 준비했던 화엄경 강설은 2014년 4월부터 매년 8~10권씩 모두 10년에 걸쳐 완성된다.『화엄경』은 어떤 경전인가화엄경(華嚴經)의 원제는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다. 원래 산스크리트로 된 경전이었으며 4세기경 『60화엄』이 그리고 7세기경 『80화엄』이 한역되었다. 총 4종의 『화엄경』이 유통되고 있다. 『40권본』, 『60권본』, 『80권본』 그리고 티베트어로 된 『장역화엄(藏譯華嚴)』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 중 『40권본』은 『60권본』과 『80권본』 속에 있는 마지막 장인 「입법계품」에 해당되기 때문에 한역된 『화엄경』은 총 2종 그리고 티베트어로 된 『화엄경』이 1종이다. (산스크리트에서 한역된 경전 중 꽤 많은 부분이 그렇지만 『화엄경』 역시 산스크리트본은 「십지품」과 「입법계품」만 남아 있고 모두 소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중 60화엄과 80화엄을 위주로 알아보자.첫째 『60화엄』은 3본 화엄경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불타발타라가 동진(東晋)의 수도 건강(健康)에 있는 도량사라는 절에서 2년 3개월에 걸쳐 번역해 낸 경이며, 418년 3월에 번역을 시작해서 420년 6월에 마치고 그 다음 해인 421년 12월에 교정을 마쳐 완성해 냈다. 이 경은 60권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60화엄』이라 하고 동진 때 번역되었기 때문에 진역(晋譯)이라고도 하며, 신역(新譯)에 대한 대칭의 뜻으로 구역(舊譯)이라고도 한다.다음 『80화엄』은 실차난타가 695년부터 699년까지 4년에 걸쳐 번역해 낸 경이다. 이 번역 작업에는 보리유지와 의정 그리고 중국 화엄의 대성자 현수 법장(法藏)도 참여했다. 이 경은 80권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80화엄』이라 하고 당대(唐代)에 번역되었기 때문에 『당경(唐經)』이라고도 한다.현재 일본에서는 주로 60권본 『화엄경』을 한국에서는 주로 80권본 『화엄경』을 교재로 채택하고 있다. 특히 80화엄은 문장이 아름답고 그 내용 또한 이해하기 쉽게 되어 있다는 평가다.화엄경 80권 본은 7처(설법장소), 9회(설법 모임 수) 39품으로 구성돼 있다.(60권본은 34품으로 구성) 이 중 제1회와 2회는 지상에서, 제3회부터 제6회까지는 천상에서, 제7회부터 제9회까지는 다시 지상에서 설법이 행해지고 있는 것을 표현했다.널리 알려진 선재동자의 구법이야기는 제9회에 설해진 「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 나오는 내용이다. 이 품에서 선재(善財, Sudhana) 동자는 53인의 다양한 선지식을 만나 구도하는 대승정신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세주묘엄품 1-5이번에 시리즈의 첫 번째로 발간된 분량은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 1권~5권이다. 세주묘엄(世主妙嚴)이란 눈앞에 펼쳐진 두두물물이 모두가 하나같이 세상의 주인으로서 아름답게 장엄한 모습이라는 뜻이다.이 품에서는 법회에 모인 청중은 보살 대중이 20명, 그 외의 대중이 390명으로 모두 410명이다. 이들이 부처님의 지혜와 공덕과 자비와 원력과 신통과 교화 등등을 찬탄하는 노래를 끝없이 부른다.서문에서 무비 스님은 이 대목에 대해 이렇게 밝히고 있다.“선게(禪偈)에 ‘구류동거일법계 자라장리살진주(九類同居一法界紫羅帳裏撒珍珠)’라는 말이 있다. “갖가지 종류의 사람들과 생명들과 온갖 천지만물과 삼라만상이 모두가 같은 법계에 살고 있는 모습이 마치 영롱하게 빛나는 진주들을 아름다운 비단 위에 뿌려 놓은 듯하다.”라는 뜻이다. 이 세상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도 모두가 더없이 아름답고 더없이 존귀하고 더없이 소중한 것이라는 뜻이다. 거기에 무슨 차별이 있겠는가. 무슨 분별이 있겠는가. 그래서 세상은 지금 이대로 모두가 주인으로서 당당하게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고 그 모습은 지극히 아름답게 장엄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품에 등장하는 세상의 주인들은 우주만유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존재들을 다 열거하여 세상의 주인이라고 표현하였다.이처럼 「세주묘엄품」에는 모든 존재의 다른 이름인 수많은 불보살 신중의 이름이 나열되면서 부처님을 찬탄하는 내용이다.
제목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1 : 세주묘엄품 (1)
저자 여천 무비
분야 불교 경전
출판사 담앤북스
발행일 20140407
정가 14,000원
최초, 최고, 최대라는 세 가지 수식어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경전 『화엄경』『대방광불화엄경』(약칭 『화엄경』)은 불교의 수많은 경전(經典)가운데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의 내용을 어떤 방편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보였기 때문에 그만큼 가장 어려운 경전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화엄경』은 불교 ‘최고’의 경전이기도 하지만 또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하지만 화엄경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4세기경부터 산스크리트에서 한역(漢譯)된 이래 『화엄경』은 동아시아 사상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6세기경에는 중국에 『화엄경』을 중심으로 한 종문(화엄종-현수종)이 성립해 중국불교사 전반을 주도하며 관통했고 이후 중국에 뿌리내린 선불교나 심지어 신유학에까지 『화엄경』의 영향이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한국 사상계에 화엄경이 미친 영향 역시 지대하다. 원효와 의상은 한국에 화엄철학의 기초를 다지고 화엄종의 문을 연 한국 사상계의 대표적인 두 거목이다. 이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승과(僧科)에서도 『화엄경』은 빠져본 적이 없다. 특히 ‘종교’로서의 불교가 큰 위기에 처했던 조선 시대에도 매한가지였다. 승려는 물론 유학자들도 『화엄경』 읽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 선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화엄경』을 읽고 있는데 (『화엄경』의) 교차되어 나타나는 묘리가 (그렇게 된) 연유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초의 선사에게 『화엄경』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의중을 전달하기도 했다.하지만 불교 안팎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라고 얘기하는 『화엄경』은 특히 근대 이후에는 그 유명세에 비해 더욱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이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너무 방대하고 너무 난해하였기 때문이다.첫째, 화엄경은 너무 방대하다.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화엄경은 모두 4종이다. 각각 40권본, 60권본, 80권본이 있고 티베트어로 된 화엄경이 있다.(산스크리트로 된 것은 「십지품」과 「입법계품」 등 일부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되었다.) 이중 40권본은 『화엄경』에서 「입법계품」만 따로 떼어 놓은 것이니 차치하고 60권본, 80권본, 그리고 티베트본이 있는데 그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누구나 선뜻 그 시작의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둘째는 난해함, 즉 단단한 언어와 이해의 벽이다.산스크리트에서 한역된 『화엄경』은 근대 이후 모두 세 차례 한글화 됐다. 탄허, 월운, 무비 스님이 역경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한글로 되어 있다고 누구나 『화엄경』을 볼 수는 없었다. 난해한 번역도 문제였지만 쉬운 한글이라도 한자 하나하나에 담겼던 뜻을 더 깊이 풀어내주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한역 『화엄경』만큼 한글 『화엄경』 역시 접근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그래서 오랫동안 불교계 안팎에서는 스님이나 재가불자는 물론이고 동양사상 전반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화엄경』 ‘강설본’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오직 한 사람, 무비 스님만이 할 수 있었던 작업『화엄경』 강설본 출판의 요구는 오래되었지만 『화엄경』을 강설할 만한 실력 그리고 이걸 책으로 엮기 위해 원고를 쓸 막대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한 사람’이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었다. 사실 『화엄경』 강설은 중국불교에서도 당나라 시대 이후 청량 징관, 이통현 장자 등에 의해 오직 3~4차례만 시도되었던 대역사이고 근대 이후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을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만약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이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무비 스님이었다. 탄허 스님의 강맥을 이은 무비 스님은 우리나라에서는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현존하는 대강백이면서 경전을 이해하기 쉽게 풀 수 있는 대중성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진척이 늦었던 『화엄경』 강설은 몇 년 전부터 스님과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화엄경』 법회가 몇 년째 계속되면서 서서히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2013년부터 80권 완간을 목표로 준비했던 화엄경 강설은 2014년 4월부터 매년 8~10권씩 모두 10년에 걸쳐 완성된다.『화엄경』은 어떤 경전인가화엄경(華嚴經)의 원제는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다. 원래 산스크리트로 된 경전이었으며 4세기경 『60화엄』이 그리고 7세기경 『80화엄』이 한역되었다. 총 4종의 『화엄경』이 유통되고 있다. 『40권본』, 『60권본』, 『80권본』 그리고 티베트어로 된 『장역화엄(藏譯華嚴)』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 중 『40권본』은 『60권본』과 『80권본』 속에 있는 마지막 장인 「입법계품」에 해당되기 때문에 한역된 『화엄경』은 총 2종 그리고 티베트어로 된 『화엄경』이 1종이다. (산스크리트에서 한역된 경전 중 꽤 많은 부분이 그렇지만 『화엄경』 역시 산스크리트본은 「십지품」과 「입법계품」만 남아 있고 모두 소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중 60화엄과 80화엄을 위주로 알아보자.첫째 『60화엄』은 3본 화엄경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불타발타라가 동진(東晋)의 수도 건강(健康)에 있는 도량사라는 절에서 2년 3개월에 걸쳐 번역해 낸 경이며, 418년 3월에 번역을 시작해서 420년 6월에 마치고 그 다음 해인 421년 12월에 교정을 마쳐 완성해 냈다. 이 경은 60권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60화엄』이라 하고 동진 때 번역되었기 때문에 진역(晋譯)이라고도 하며, 신역(新譯)에 대한 대칭의 뜻으로 구역(舊譯)이라고도 한다.다음 『80화엄』은 실차난타가 695년부터 699년까지 4년에 걸쳐 번역해 낸 경이다. 이 번역 작업에는 보리유지와 의정 그리고 중국 화엄의 대성자 현수 법장(法藏)도 참여했다. 이 경은 80권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80화엄』이라 하고 당대(唐代)에 번역되었기 때문에 『당경(唐經)』이라고도 한다.현재 일본에서는 주로 60권본 『화엄경』을 한국에서는 주로 80권본 『화엄경』을 교재로 채택하고 있다. 특히 80화엄은 문장이 아름답고 그 내용 또한 이해하기 쉽게 되어 있다는 평가다.화엄경 80권 본은 7처(설법장소), 9회(설법 모임 수) 39품으로 구성돼 있다.(60권본은 34품으로 구성) 이 중 제1회와 2회는 지상에서, 제3회부터 제6회까지는 천상에서, 제7회부터 제9회까지는 다시 지상에서 설법이 행해지고 있는 것을 표현했다.널리 알려진 선재동자의 구법이야기는 제9회에 설해진 「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 나오는 내용이다. 이 품에서 선재(善財, Sudhana) 동자는 53인의 다양한 선지식을 만나 구도하는 대승정신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세주묘엄품 1-5이번에 시리즈의 첫 번째로 발간된 분량은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 1권~5권이다. 세주묘엄(世主妙嚴)이란 눈앞에 펼쳐진 두두물물이 모두가 하나같이 세상의 주인으로서 아름답게 장엄한 모습이라는 뜻이다.이 품에서는 법회에 모인 청중은 보살 대중이 20명, 그 외의 대중이 390명으로 모두 410명이다. 이들이 부처님의 지혜와 공덕과 자비와 원력과 신통과 교화 등등을 찬탄하는 노래를 끝없이 부른다.서문에서 무비 스님은 이 대목에 대해 이렇게 밝히고 있다.“선게(禪偈)에 ‘구류동거일법계 자라장리살진주(九類同居一法界紫羅帳裏撒珍珠)’라는 말이 있다. “갖가지 종류의 사람들과 생명들과 온갖 천지만물과 삼라만상이 모두가 같은 법계에 살고 있는 모습이 마치 영롱하게 빛나는 진주들을 아름다운 비단 위에 뿌려 놓은 듯하다.”라는 뜻이다. 이 세상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도 모두가 더없이 아름답고 더없이 존귀하고 더없이 소중한 것이라는 뜻이다. 거기에 무슨 차별이 있겠는가. 무슨 분별이 있겠는가. 그래서 세상은 지금 이대로 모두가 주인으로서 당당하게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고 그 모습은 지극히 아름답게 장엄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품에 등장하는 세상의 주인들은 우주만유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존재들을 다 열거하여 세상의 주인이라고 표현하였다.이처럼 「세주묘엄품」에는 모든 존재의 다른 이름인 수많은 불보살 신중의 이름이 나열되면서 부처님을 찬탄하는 내용이다.
제목 지금 이 순간 자비롭게 살아가기
저자 아남 툽텐 지음, 임희근 옮김
분야 티베트 명상
출판사 담앤북스
발행일 20191207
정가 15,000원
“나는 당신입니다.”_자애와 연민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티베트 린포체의 고찰  _연민을 택하는 삶이 우리에게 주는 자유와 행복모든 존재들이 고통과 고통의 원인에서 벗어나기를. 티베트에서 나고 자라 닝마빠(티베트불교 4대 종파 중 하나)의 깨달은 여러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은 아남 툽텐 린포체. 1990년대 초반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현재 세계 곳곳에서 불교의 가르침과 명상 수행법을 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2014년부터 매년 찾아와 가르침을 펼치고 있다. 그의 설법(강연)은 쉽고 유머러스하다. 언제나 쉬운 설명과 풍부한 사례로 삶의 진리, 진실을 전한다. 이번 책의 중심 키워드는 연민, 자애, 이타심이다. 우리는 이타적인 삶을 사는 것, 타인에게 연민과 자애를 품는 일을 불가능한 일로 여긴다. 그것은 위대한 몇몇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며 우리 자신만 생각하고 살기에도 벅차다고 느낀다. 그래서 인생은 혼자라 여기며 자기 이익에만 몰두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남 툽텐은 구체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가진 문제의 대부분은 결국 자신에게만 너무 집중하는 데서 온다.”, “고독과 고립과 소외의 병을 치료하는 데에는 연민이 최고의 약”이라고. 연민을 품으면 우리는 ‘나’라는 좁은 세상에서 벗어나 더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 자신을 향해 연민을 발휘하면 자기혐오에서 벗어나고, 잘못된 자아상으로 더 이상 고통받지 않을 수 있다. 바깥을 향해 연민을 키우면 환경오염으로 죽어가는 지구를 위해, 고통받는 전 세계 사람을 위해 그리고 온 생명을 향해 자애의 고리를 넓혀 갈 수 있다.  우리는 왜 서로에게 연민을 품어야 할까? 불교적 관점에서 인류는 공통적으로 ‘업’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업의 관점에서 보면 세상의 일들은 더 이상 남의 업이 아니다. 우리는 같은 운명을 공유하고 있다.   연민 선택하기... 알아차림으로 온 생명을 대하는 매 순간의 다짐 전작 <모든 순간 껴안기>, <알아차림의 기적>에서 아남 툽텐은 알아차림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알아차림이란 무엇인가? 바로 마음을 알고 투사와 심리적 패턴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믿기를 멈춘다는 뜻이다. 우리는 남들과 자신의 고통을 알아차리지 않기 위해 많은 전략을 쓴다. 그래서 마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이런 형태의 알아차리지 못함이 팽배하다. 그러나 우리 각자가 알아차림의 길을 걷겠다고 서원하면 우리는 차츰 두려움과 미움, 수치심과 죄의식의 성향을 없앨 수 있다. 이처럼 <지금 이 순간 자비롭게 살아가기>는 일상에서 더 자유롭고 열린 가슴으로, 자신과 타인과 뭇 생명에게 자애를 선물하는 용기를 북돋는 에세이다
제목 곰처럼 숨 쉬어봐
저자 키라 윌리 글 | 애니 베츠 그림 | 김선희 옮김
분야 외국 그림책
출판사 담앤북스
발행일 20191126
정가 14,000원
언제 어디서든 마음챙김하는 습관을 만들어 주는 책《곰처럼 숨 쉬어 봐》는 아이에게 감정을 다스리기 위한 호흡과 간단한 요가, 마음챙김 방법 30가지를 알려주고 있어요. 집, 놀이터, 정원, 유치원, 교실 등 언제 어디서든 마음챙김이 가능해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스릴 줄 몰라 고민하는 아이 그리고 아이를 지켜보는 부모님도 함께 따라 할 수 있습니다. 책에 나와 있는 30가지 방법 중에서 마음에 드는 곳을 펼쳐 보세요. 그리고 함께해 보는 거예요. 쉽고 다양하고 재미있는 어린이 마음챙김 30 어린이 마음챙김 전문가 ‘키라 윌리’의 국내 첫 작품아이가 너무 산만해서 걱정인가요? 그렇다면 〈차분해지기〉 페이지를 펼쳐보세요. 들뜬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방법이 나와 있어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다섯까지 세기’를 해본다든지 뜨거운 ‘핫초코’를 들고 있다고 상상해 보는 거예요. 또 아이가 긴장을 많이 한다거나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긴장 풀기〉를 펼쳐보세요. 몸을 둥글게 말아 ‘아기 고양이처럼 기지개 켜리’를 해볼 수도 있고, 빙글빙글 ‘어깨 돌리기’를 할 수도 있답니다. 아니면 ‘아무것도 안 하는 순간’을 가져 봐도 좋아요. 쉬우면서도 재미있는 마음챙김 방법 30가지는 아이와 부모, 선생님까지 모두 즐겁게 따라 해 볼 수 있답니다.  어린이 음악 분야 아티스트이자 어린이 마음챙김 전문가인 ‘키라 윌리’가 전해 주는 마음챙김 방법은 어렵지 않아요. 명상 쿠션이나 종도 필요 없습니다. 단지 곰처럼 숨을 쉬면서 시작해 보세요. 아이의 몸과 마음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거랍니다. 
제목 나에게 친절히 대하는 기술
저자 글 · 신시아 케인 / 번역 · 김미옥
분야 심리치유
출판사 담앤북스
발행일 20190731
정가 13,000원
훈련교관을 해고하고 치어리더를 고용하라 우리 사회는 자기계발을 위해 늘 자신을 단속하고, 자신에게 후한 사람이기보다 엄격한 사람이 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듯하다. 심지어 우리는 남의 말은 기꺼이 경청하면서도 자기 자신에게는 쉽게 비난을 퍼부어 댄다. 어쩌다 자기 마음을 들여다본다 해도, 상처를 위로하지는 못하고 되레 후벼 파는 데 그친다. 이처럼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친절히 말하는 연습을 충분히 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을 다그치는 훈련교관이 되기보다 자신을 격려해 주는 치어리더가 되는 편이 현실을 바꾸는 데 있어 훨씬 더 효과가 좋다. 우리의 마음은 긍정을 통해 다시 일어설 자양분을 얻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무작정 긍정적인 말을 하면 되는 걸까? 어떻게 하면 나 자신에게 하는 무의식적인 부정적인 말을 캐치하고, 친절하고 자애로운 말을 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까? <나에게 친절히 대하는 기술>은 자기 자신과의 소통에 있어 중요하고도 올바른 판단의 기준(리트머스 시험지)을 제시한다. 그것은 다음의 세 가지 질문이다.•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 진실한가?•그 말이 유익한가?•그 말이 친절한가?그간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스스로에게 한 말을 살펴보자. 아마 친절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유익하지도 않고 자세히 뜯어보면 사실도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에게 ‘아름답지 않고 뚱뚱하다’고 말해 왔다면 아래의 말을 되새겨 보라. “부정적인 자기 대화는 우리의 판단과 의견에 근거하고 있으며 본래 그 자체로는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아름다움과 추함은 아주 주관적이며, ‘뚱뚱하다’는 것도 완전히 상대적이다. 특정한 성과 나이, 키를 가진 어떤 사람에게 과체중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체중 미달이 될 수도 있다. 이런 판단의 근거가 될 엄격한 기준이 없다. 말 그대로 판단이 사실이 아니라 판단인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43쪽)” 부정적인 자기 대화를 놓고 이러한 청문회를 거치면, 내가 나에게 주는 고통을 멈출 수 있고 좀 더 객관적인 거리를 두고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 그리하여 더 최종적으로는 “친구를 대하듯이 자신에게 말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잊고 지냈던 새삼스러운 사실을 되새겨 준다.“사실 우리는 자기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다. 우리의 정신적 행복에 자기 자신만큼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다.(68쪽)”자신에게 쓰는 말투가 세계관과 인생을 결정한다  최근, ‘말투’를 바꾸면 자신을 둘러싼 대인관계가 변한다고 말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남에게 쓰는 말투로 인생이 변한다면, 나 자신에게 쓰는 말투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깨달은 놀라운 것은 바로 이것이다. 즉 우리가 자기 자신에게 말을 하는 방식이 우리의 세계관을 규정하며, 우리는 언제든지 이것을 변화시킬 힘을 가지고 있다. 삶을 즐기려면, 세상이 부담보다는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실제로 보려면 부정적인 자기 대화를 내려놓고 자기 판단과 편견이 생기는 것을 알아차리고 진실하고 유익하고 친절한 말로 대신하면서 연민을 가지고 자기 자신에게 말할 필요가 있다(183~184쪽).”저자가 말했듯이 우리는 스스로에게 말하는 방식을 지금 당장이라도 바꿀 수 있다. 여전히 나에게 친절히 대하는 것이 쑥스럽다면 나 자신을 “가장 친한 친구”, 즉 친밀한 타인이라고 여기고 지금부터라도 자애로운 말을 건네는 연습을 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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