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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33 二十五. 십회향품十廻向品 11
저자 여천 무비
분야 불교 경전
출판사 담앤북스
발행일 20151225
정가 14,000원
최초, 최고, 최대라는 세 가지 수식어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경전 『화엄경』『대방광불화엄경』(약칭 『화엄경』)은 불교의 수많은 경전(經典) 가운데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의 내용을 어떤 방편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보였기 때문에 그만큼 가장 어려운 경전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화엄경』은 불교 ‘최고’의 경전이기도 하지만 또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화엄경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4세기경부터 산스크리트에서 한역(漢譯)된 이래 『화엄경』은 동아시아 사상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6세기경에는 중국에 『화엄경』을 중심으로 한 종문(화엄종-현수종)이 성립해 중국불교사 전반을 주도하며 관통했고 이후 중국에 뿌리내린 선불교나 심지어 신유학에까지 『화엄경』의 영향이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한국 사상계에 화엄경이 미친 영향 역시 지대하다. 원효와 의상은 한국에 화엄철학의 기초를 다지고 화엄종의 문을 연 한국 사상계의 대표적인 두 거목이다. 이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승과(僧科)에서도 『화엄경』은 빠져 본 적이 없다.  특히 ‘종교’로서의 불교가 큰 위기에 처했던 조선 시대에도 매한가지였다. 승려는 물론 유학자들도 『화엄경』 읽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 선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화엄경』을 읽고 있는데 (『화엄경』의) 교차되어 나타나는 묘리가 (그렇게 된) 연유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초의 선사에게 『화엄경』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의중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교 안팎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라고 얘기하는 『화엄경』은 특히 근대 이후에는 그 유명세에 비해 더욱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이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너무 방대하고 너무 난해하였기 때문이다. 첫째, 화엄경은 너무 방대하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화엄경은 모두 4종이다. 각각 40권본, 60권본, 80권본이 있고 티베트어로 된 화엄경이 있다.(산스크리트로 된 것은 「십지품」과 「입법계품」 등 일부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되었다.) 이 중 40권본은 『화엄경』에서 「입법계품」만 따로 떼어 놓은 것이니 차치하고 60권본, 80권본, 그리고 티베트본이 있는데 그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누구나 선뜻 그 시작의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둘째는 난해함, 즉 단단한 언어와 이해의 벽이다. 산스크리트에서 한역된 『화엄경』은 근대 이후 모두 네 차례 한글화됐다. 용성, 운허, 탄허, 무비 스님이 역경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한글로 되어 있다고 누구나 『화엄경』을 볼 수는 없었다. 난해한 번역도 문제였지만 쉬운 한글이라도 한자 하나하나에 담겼던 뜻을 더 깊이 풀어내 주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한역 『화엄경』만큼 한글 『화엄경』 역시 접근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불교계 안팎에서는 스님이나 재가불자는 물론이고 동양사상 전반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화엄경』 ‘강설본’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오직 한 사람, 무비 스님만이 할 수 있었던 작업『화엄경』 강설본 출판의 요구는 오래되었지만 『화엄경』을 강설할 만한 실력 그리고 이걸 책으로 엮기 위해 원고를 쓸 막대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한 사람’이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화엄경』 강설은 중국불교에서도 당나라 시대 이후 청량 징관, 이통현 장자 등에 의해 오직 3~4차례만 시도되었던 대역사이고 근대 이후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을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만약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이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무비 스님이었다. 탄허 스님의 강맥을 이은 무비 스님은 우리나라에서는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현존하는 대강백이면서 경전을 이해하기 쉽게 풀 수 있는 대중성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진척이 늦었던 『화엄경』 강설은 몇 년 전부터 스님과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화엄경』 법회가 몇 년째 계속되면서 서서히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二十五. 십회향품十廻向品 11화엄경 7처 9회 39품 중에서 제5회 법문의 본론인 제25 십회향품 가운데 열한 번째 권이다. 십회향 법문은 제5회 법문의 본론으로, 십회향품은 80권 중에서 무려 10권 반이나 되는 매우 긴 품이다. 제25 십회향품 11은 길고 긴 십회향품의 마지막 권이며 제10 등법계무량회향(等法界無量廻向)의 중간 설법이다. 불법은 언제나 온갖 선근을 닦게 하고, 그 선근으로 모든 보살행의 궁극인 보현행원을 더욱 열심히 수행하게 한다. 그래서 하루빨리 부처님의 장자인 보현보살의 지위에 안주하게 하는 것이다. 일체 여래께서 다 알고 다 보시는 세상의 한량없는 많고 많은 중생이 하나도 남김없이 보현보살처럼 열 가지 행원을 모두 구족하여 부처님의 장자가 되어서 부처님의 칭찬 받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이것이 제10 회향의 결론이다.
제목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32 二十五. 십회향품十廻向品 10
저자 여천 무비
분야 불교 경전
출판사 담앤북스
발행일 20151215
정가 14,000원
최초, 최고, 최대라는 세 가지 수식어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경전 『화엄경』『대방광불화엄경』(약칭 『화엄경』)은 불교의 수많은 경전(經典) 가운데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의 내용을 어떤 방편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보였기 때문에 그만큼 가장 어려운 경전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화엄경』은 불교 ‘최고’의 경전이기도 하지만 또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화엄경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4세기경부터 산스크리트에서 한역(漢譯)된 이래 『화엄경』은 동아시아 사상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6세기경에는 중국에 『화엄경』을 중심으로 한 종문(화엄종-현수종)이 성립해 중국불교사 전반을 주도하며 관통했고 이후 중국에 뿌리내린 선불교나 심지어 신유학에까지 『화엄경』의 영향이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한국 사상계에 화엄경이 미친 영향 역시 지대하다. 원효와 의상은 한국에 화엄철학의 기초를 다지고 화엄종의 문을 연 한국 사상계의 대표적인 두 거목이다. 이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승과(僧科)에서도 『화엄경』은 빠져 본 적이 없다.  특히 ‘종교’로서의 불교가 큰 위기에 처했던 조선 시대에도 매한가지였다. 승려는 물론 유학자들도 『화엄경』 읽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 선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화엄경』을 읽고 있는데 (『화엄경』의) 교차되어 나타나는 묘리가 (그렇게 된) 연유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초의 선사에게 『화엄경』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의중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교 안팎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라고 얘기하는 『화엄경』은 특히 근대 이후에는 그 유명세에 비해 더욱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이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너무 방대하고 너무 난해하였기 때문이다. 첫째, 화엄경은 너무 방대하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화엄경은 모두 4종이다. 각각 40권본, 60권본, 80권본이 있고 티베트어로 된 화엄경이 있다.(산스크리트로 된 것은 「십지품」과 「입법계품」 등 일부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되었다.) 이 중 40권본은 『화엄경』에서 「입법계품」만 따로 떼어 놓은 것이니 차치하고 60권본, 80권본, 그리고 티베트본이 있는데 그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누구나 선뜻 그 시작의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둘째는 난해함, 즉 단단한 언어와 이해의 벽이다. 산스크리트에서 한역된 『화엄경』은 근대 이후 모두 네 차례 한글화됐다. 용성, 운허, 탄허, 무비 스님이 역경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한글로 되어 있다고 누구나 『화엄경』을 볼 수는 없었다. 난해한 번역도 문제였지만 쉬운 한글이라도 한자 하나하나에 담겼던 뜻을 더 깊이 풀어내 주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한역 『화엄경』만큼 한글 『화엄경』 역시 접근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불교계 안팎에서는 스님이나 재가불자는 물론이고 동양사상 전반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화엄경』 ‘강설본’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오직 한 사람, 무비 스님만이 할 수 있었던 작업『화엄경』 강설본 출판의 요구는 오래되었지만 『화엄경』을 강설할 만한 실력 그리고 이걸 책으로 엮기 위해 원고를 쓸 막대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한 사람’이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화엄경』 강설은 중국불교에서도 당나라 시대 이후 청량 징관, 이통현 장자 등에 의해 오직 3~4차례만 시도되었던 대역사이고 근대 이후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을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만약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이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무비 스님이었다. 탄허 스님의 강맥을 이은 무비 스님은 우리나라에서는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현존하는 대강백이면서 경전을 이해하기 쉽게 풀 수 있는 대중성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진척이 늦었던 『화엄경』 강설은 몇 년 전부터 스님과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화엄경』 법회가 몇 년째 계속되면서 서서히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二十五. 십회향품十廻向品 10화엄경 7처 9회 39품 중에서 제5회 법문의 본론인 제25 십회향품 가운데 열 번째 권이다. 십회향 법문은 제5회 법문의 본론으로, 십회향품은 80권 중에서 무려 10권 반이나 되는 매우 긴 품이다.제25 십회향품 10에서는 십회향 중 열 번째 회향에 대해 설한다. 그 이름은 등법계무량회향(等法界無量廻向)으로 법계와 같은 한량없는 회향이다. 법계와 같은 한량없는 회향을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부처님께서 출가하고 수행하여 정각을 이루시고 나서 세상의 중생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부처님께서 숱한 난행과 고행을 통해서 얻은 진리의 깨달음을 만 중생에게 널리 가르치는 일이다. 그것을 법보시라 하며 법공양이라 한다. 제10 회향의 지위에 오른 보살이 법사의 지위에 올라 중생을 위해 법을 설하는 내용을 두루 밝혔다. 일체 선근을 닦아 회향하는 것이 회향의 큰 뜻이지만 이 열 번째 회향에서는 법을 보시하여 회향함을 널리 밝혔다. 제10 등법계무량회향은 다음 권으로 이어진다.
제목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31 二十五. 십회향품十廻向品 9
저자 여천 무비
분야 불교 경전
출판사 담앤북스
발행일 20151112
정가 14,000원
최초, 최고, 최대라는 세 가지 수식어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경전 『화엄경』『대방광불화엄경』(약칭 『화엄경』)은 불교의 수많은 경전(經典) 가운데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의 내용을 어떤 방편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보였기 때문에 그만큼 가장 어려운 경전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화엄경』은 불교 ‘최고’의 경전이기도 하지만 또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화엄경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4세기경부터 산스크리트에서 한역(漢譯)된 이래 『화엄경』은 동아시아 사상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6세기경에는 중국에 『화엄경』을 중심으로 한 종문(화엄종-현수종)이 성립해 중국불교사 전반을 주도하며 관통했고 이후 중국에 뿌리내린 선불교나 심지어 신유학에까지 『화엄경』의 영향이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한국 사상계에 화엄경이 미친 영향 역시 지대하다. 원효와 의상은 한국에 화엄철학의 기초를 다지고 화엄종의 문을 연 한국 사상계의 대표적인 두 거목이다. 이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승과(僧科)에서도 『화엄경』은 빠져 본 적이 없다.  특히 ‘종교’로서의 불교가 큰 위기에 처했던 조선 시대에도 매한가지였다. 승려는 물론 유학자들도 『화엄경』 읽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 선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화엄경』을 읽고 있는데 (『화엄경』의) 교차되어 나타나는 묘리가 (그렇게 된) 연유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초의 선사에게 『화엄경』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의중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교 안팎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라고 얘기하는 『화엄경』은 특히 근대 이후에는 그 유명세에 비해 더욱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이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너무 방대하고 너무 난해하였기 때문이다. 첫째, 화엄경은 너무 방대하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화엄경은 모두 4종이다. 각각 40권본, 60권본, 80권본이 있고 티베트어로 된 화엄경이 있다.(산스크리트로 된 것은 「십지품」과 「입법계품」 등 일부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되었다.) 이 중 40권본은 『화엄경』에서 「입법계품」만 따로 떼어 놓은 것이니 차치하고 60권본, 80권본, 그리고 티베트본이 있는데 그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누구나 선뜻 그 시작의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둘째는 난해함, 즉 단단한 언어와 이해의 벽이다. 산스크리트에서 한역된 『화엄경』은 근대 이후 모두 네 차례 한글화됐다. 용성, 운허, 탄허, 무비 스님이 역경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한글로 되어 있다고 누구나 『화엄경』을 볼 수는 없었다. 난해한 번역도 문제였지만 쉬운 한글이라도 한자 하나하나에 담겼던 뜻을 더 깊이 풀어내 주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한역 『화엄경』만큼 한글 『화엄경』 역시 접근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불교계 안팎에서는 스님이나 재가불자는 물론이고 동양사상 전반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화엄경』 ‘강설본’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오직 한 사람, 무비 스님만이 할 수 있었던 작업『화엄경』 강설본 출판의 요구는 오래되었지만 『화엄경』을 강설할 만한 실력 그리고 이걸 책으로 엮기 위해 원고를 쓸 막대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한 사람’이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화엄경』 강설은 중국불교에서도 당나라 시대 이후 청량 징관, 이통현 장자 등에 의해 오직 3~4차례만 시도되었던 대역사이고 근대 이후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을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만약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이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무비 스님이었다. 탄허 스님의 강맥을 이은 무비 스님은 우리나라에서는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현존하는 대강백이면서 경전을 이해하기 쉽게 풀 수 있는 대중성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진척이 늦었던 『화엄경』 강설은 몇 년 전부터 스님과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화엄경』 법회가 몇 년째 계속되면서 서서히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二十五. 십회향품十廻向品 9화엄경 7처 9회 39품 중에서 제5회 법문의 본론인 제25 십회향품 가운데 아홉 번째 권이다. 십회향 법문은 제5회 법문의 본론으로, 십회향품은 80권 중에서 무려 10권 반이나 되는 매우 긴 품이다. 제25 십회향품 9에서는 제9 무착무박해탈회향(無着無縛解脫廻向, 집착도 없고 속박도 없는 해탈의 회향)에 대해 설하고 있다. 집착 없음이 곧 해탈이며 속박 없음이 곧 해탈이다. 집착도 없고 속박도 없다는 것은 해탈을 다시 설명한 말이다. 불교를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의 목적이 이 해탈을 얻기 위함이다. 욕심에서 벗어나고, 분노에서 벗어나고,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고, 생사에서 벗어나고, 팔만사천 번뇌에서 벗어나는 것이 곧 해탈이다. 이와 같은 해탈은 일체 선근을 높이 받들어 귀중하게 여기는 마음, 즉 일체 선근을 존중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다. 존중함으로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게 되기 때문이다. 집착이 없고 속박이 없이 해탈한 마음으로 선근을 닦아 회향하면 부처님의 지극한 자비의 몸과 말과 생각과 광대한 정진이 원만하게 됨을 밝혔다.
제목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30 二十五. 십회향품十廻向品 8
저자 여천 무비
분야 불교 경전
출판사 담앤북스
발행일 20151020
정가 14,000원
최초, 최고, 최대라는 세 가지 수식어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경전 『화엄경』『대방광불화엄경』(약칭 『화엄경』)은 불교의 수많은 경전(經典) 가운데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의 내용을 어떤 방편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보였기 때문에 그만큼 가장 어려운 경전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화엄경』은 불교 ‘최고’의 경전이기도 하지만 또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화엄경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4세기경부터 산스크리트에서 한역(漢譯)된 이래 『화엄경』은 동아시아 사상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6세기경에는 중국에 『화엄경』을 중심으로 한 종문(화엄종-현수종)이 성립해 중국불교사 전반을 주도하며 관통했고 이후 중국에 뿌리내린 선불교나 심지어 신유학에까지 『화엄경』의 영향이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한국 사상계에 화엄경이 미친 영향 역시 지대하다. 원효와 의상은 한국에 화엄철학의 기초를 다지고 화엄종의 문을 연 한국 사상계의 대표적인 두 거목이다. 이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승과(僧科)에서도 『화엄경』은 빠져 본 적이 없다.  특히 ‘종교’로서의 불교가 큰 위기에 처했던 조선 시대에도 매한가지였다. 승려는 물론 유학자들도 『화엄경』 읽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 선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화엄경』을 읽고 있는데 (『화엄경』의) 교차되어 나타나는 묘리가 (그렇게 된) 연유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초의 선사에게 『화엄경』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의중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교 안팎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라고 얘기하는 『화엄경』은 특히 근대 이후에는 그 유명세에 비해 더욱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이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너무 방대하고 너무 난해하였기 때문이다. 첫째, 화엄경은 너무 방대하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화엄경은 모두 4종이다. 각각 40권본, 60권본, 80권본이 있고 티베트어로 된 화엄경이 있다.(산스크리트로 된 것은 「십지품」과 「입법계품」 등 일부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되었다.) 이 중 40권본은 『화엄경』에서 「입법계품」만 따로 떼어 놓은 것이니 차치하고 60권본, 80권본, 그리고 티베트본이 있는데 그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누구나 선뜻 그 시작의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둘째는 난해함, 즉 단단한 언어와 이해의 벽이다. 산스크리트에서 한역된 『화엄경』은 근대 이후 모두 네 차례 한글화됐다. 용성, 운허, 탄허, 무비 스님이 역경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한글로 되어 있다고 누구나 『화엄경』을 볼 수는 없었다. 난해한 번역도 문제였지만 쉬운 한글이라도 한자 하나하나에 담겼던 뜻을 더 깊이 풀어내 주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한역 『화엄경』만큼 한글 『화엄경』 역시 접근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불교계 안팎에서는 스님이나 재가불자는 물론이고 동양사상 전반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화엄경』 ‘강설본’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오직 한 사람, 무비 스님만이 할 수 있었던 작업『화엄경』 강설본 출판의 요구는 오래되었지만 『화엄경』을 강설할 만한 실력 그리고 이걸 책으로 엮기 위해 원고를 쓸 막대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한 사람’이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화엄경』 강설은 중국불교에서도 당나라 시대 이후 청량 징관, 이통현 장자 등에 의해 오직 3~4차례만 시도되었던 대역사이고 근대 이후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을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만약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이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무비 스님이었다. 탄허 스님의 강맥을 이은 무비 스님은 우리나라에서는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현존하는 대강백이면서 경전을 이해하기 쉽게 풀 수 있는 대중성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진척이 늦었던 『화엄경』 강설은 몇 년 전부터 스님과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화엄경』 법회가 몇 년째 계속되면서 서서히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二十五. 십회향품十廻向品 8화엄경 7처 9회 39품 중에서 제5회 법문의 본론인 제25 십회향품 가운데 여덟 번째 권이다. 십회향 법문은 제5회 법문의 본론으로, 십회향품은 80권 중에서 무려 10권 반이나 되는 매우 긴 품이다. 제25 십회향품 8에서는 제8 진여상회향(眞如相廻向, 진여의 모양인 회향)에 대해 설하고 있다. 진여란 무엇인가. 만유의 근본 성품이며 생명의 본체다. 달리 말하면 참마음[眞心]이며, 참사람[眞人]이며, 참나[眞我]며, 참생명[眞命]이며, 법성(法性)이며, 불성(佛性)이며, 자성(自性)이다. 이 진여에는 본래로 육바라밀과 십바라밀과 십선(十善)과 사섭법(四攝法)과 사무량심(四無量心)과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다 갖춰져 있다. 이러한 진여의 양상과 꼭 같은 회향이 진여상회향이다. 이 진여상회향에서는 참사람에게 본래로 갖춰진 육바라밀과 십바라밀과 십선과 사섭법과 사무량심과 인의예지로 선근을 쌓아 나가는 것을 밝혔다. 
제목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29 二十五. 십회향품十廻向品 7
저자 여천 무비
분야 불교 경전
출판사 담앤북스
발행일 20150930
정가 14,000원
최초, 최고, 최대라는 세 가지 수식어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경전 『화엄경』『대방광불화엄경』(약칭 『화엄경』)은 불교의 수많은 경전(經典) 가운데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의 내용을 어떤 방편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보였기 때문에 그만큼 가장 어려운 경전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화엄경』은 불교 ‘최고’의 경전이기도 하지만 또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화엄경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4세기경부터 산스크리트에서 한역(漢譯)된 이래 『화엄경』은 동아시아 사상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6세기경에는 중국에 『화엄경』을 중심으로 한 종문(화엄종-현수종)이 성립해 중국불교사 전반을 주도하며 관통했고 이후 중국에 뿌리내린 선불교나 심지어 신유학에까지 『화엄경』의 영향이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한국 사상계에 화엄경이 미친 영향 역시 지대하다. 원효와 의상은 한국에 화엄철학의 기초를 다지고 화엄종의 문을 연 한국 사상계의 대표적인 두 거목이다. 이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승과(僧科)에서도 『화엄경』은 빠져 본 적이 없다.  특히 ‘종교’로서의 불교가 큰 위기에 처했던 조선 시대에도 매한가지였다. 승려는 물론 유학자들도 『화엄경』 읽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 선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화엄경』을 읽고 있는데 (『화엄경』의) 교차되어 나타나는 묘리가 (그렇게 된) 연유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초의 선사에게 『화엄경』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의중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교 안팎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라고 얘기하는 『화엄경』은 특히 근대 이후에는 그 유명세에 비해 더욱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이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너무 방대하고 너무 난해하였기 때문이다. 첫째, 화엄경은 너무 방대하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화엄경은 모두 4종이다. 각각 40권본, 60권본, 80권본이 있고 티베트어로 된 화엄경이 있다.(산스크리트로 된 것은 「십지품」과 「입법계품」 등 일부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되었다.) 이 중 40권본은 『화엄경』에서 「입법계품」만 따로 떼어 놓은 것이니 차치하고 60권본, 80권본, 그리고 티베트본이 있는데 그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누구나 선뜻 그 시작의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둘째는 난해함, 즉 단단한 언어와 이해의 벽이다. 산스크리트에서 한역된 『화엄경』은 근대 이후 모두 네 차례 한글화됐다. 용성, 운허, 탄허, 무비 스님이 역경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한글로 되어 있다고 누구나 『화엄경』을 볼 수는 없었다. 난해한 번역도 문제였지만 쉬운 한글이라도 한자 하나하나에 담겼던 뜻을 더 깊이 풀어내 주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한역 『화엄경』만큼 한글 『화엄경』 역시 접근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불교계 안팎에서는 스님이나 재가불자는 물론이고 동양사상 전반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화엄경』 ‘강설본’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오직 한 사람, 무비 스님만이 할 수 있었던 작업『화엄경』 강설본 출판의 요구는 오래되었지만 『화엄경』을 강설할 만한 실력 그리고 이걸 책으로 엮기 위해 원고를 쓸 막대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한 사람’이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화엄경』 강설은 중국불교에서도 당나라 시대 이후 청량 징관, 이통현 장자 등에 의해 오직 3~4차례만 시도되었던 대역사이고 근대 이후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을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만약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이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무비 스님이었다. 탄허 스님의 강맥을 이은 무비 스님은 우리나라에서는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현존하는 대강백이면서 경전을 이해하기 쉽게 풀 수 있는 대중성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진척이 늦었던 『화엄경』 강설은 몇 년 전부터 스님과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화엄경』 법회가 몇 년째 계속되면서 서서히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二十五. 십회향품十廻向品 7화엄경 7처 9회 39품 중에서 제5회 법문의 본론인 제25 십회향품 가운데 일곱 번째 권이다. 십회향 법문은 제5회 법문의 본론으로, 십회향품은 80권 중에서 무려 10권 반이나 되는 매우 긴 품이다. 제25 십회향품 7에서는 제7 등수순일체중생회향(等隨順一切衆生廻向, 일체 중생을 평등하게 수순하는 회향)에 대해 설하고 있다. 31종의 선근을 모아서 닦아 행하고, 선근에 편안히 머물고, 선근에 나아가 들어가고, 선근을 거두어 가지고, 선근을 쌓아 모으는 내용들이다. 보살이 선근을 닦아 회향하면 모든 사람과 모든 생명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게 되고, 일체 보살을 공양하게 되고, 선이란 선은 모두 닦게 되고, 우주의 모든 생명을 아름답게 가꾸고자 하는 큰 서원을 만족하게 되며, 일체 중생의 모든 업을 환하게 알게 되어 그 업게 알맞게 조복하게 되며, 끝내는 일체 선한 법을 성취하게 된다. 선근을 닦아 회향하는 일이 불교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한다.
제목 대방광불화엄경 28 二十五. 십회향품十廻向品 6
저자 여천 무비
분야 불교 경전
출판사 담앤북스
발행일 20150906
정가 14,000원
최초, 최고, 최대라는 세 가지 수식어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경전 『화엄경』『대방광불화엄경』(약칭 『화엄경』)은 불교의 수많은 경전(經典) 가운데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의 내용을 어떤 방편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보였기 때문에 그만큼 가장 어려운 경전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화엄경』은 불교 ‘최고’의 경전이기도 하지만 또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화엄경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4세기경부터 산스크리트에서 한역(漢譯)된 이래 『화엄경』은 동아시아 사상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6세기경에는 중국에 『화엄경』을 중심으로 한 종문(화엄종-현수종)이 성립해 중국불교사 전반을 주도하며 관통했고 이후 중국에 뿌리내린 선불교나 심지어 신유학에까지 『화엄경』의 영향이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한국 사상계에 화엄경이 미친 영향 역시 지대하다. 원효와 의상은 한국에 화엄철학의 기초를 다지고 화엄종의 문을 연 한국 사상계의 대표적인 두 거목이다. 이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승과(僧科)에서도 『화엄경』은 빠져 본 적이 없다.  특히 ‘종교’로서의 불교가 큰 위기에 처했던 조선 시대에도 매한가지였다. 승려는 물론 유학자들도 『화엄경』 읽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 선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화엄경』을 읽고 있는데 (『화엄경』의) 교차되어 나타나는 묘리가 (그렇게 된) 연유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초의 선사에게 『화엄경』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의중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교 안팎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라고 얘기하는 『화엄경』은 특히 근대 이후에는 그 유명세에 비해 더욱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이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너무 방대하고 너무 난해하였기 때문이다. 첫째, 화엄경은 너무 방대하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화엄경은 모두 4종이다. 각각 40권본, 60권본, 80권본이 있고 티베트어로 된 화엄경이 있다.(산스크리트로 된 것은 「십지품」과 「입법계품」 등 일부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되었다.) 이 중 40권본은 『화엄경』에서 「입법계품」만 따로 떼어 놓은 것이니 차치하고 60권본, 80권본, 그리고 티베트본이 있는데 그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누구나 선뜻 그 시작의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둘째는 난해함, 즉 단단한 언어와 이해의 벽이다. 산스크리트에서 한역된 『화엄경』은 근대 이후 모두 네 차례 한글화됐다. 용성, 운허, 탄허, 무비 스님이 역경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한글로 되어 있다고 누구나 『화엄경』을 볼 수는 없었다. 난해한 번역도 문제였지만 쉬운 한글이라도 한자 하나하나에 담겼던 뜻을 더 깊이 풀어내 주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한역 『화엄경』만큼 한글 『화엄경』 역시 접근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불교계 안팎에서는 스님이나 재가불자는 물론이고 동양사상 전반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화엄경』 ‘강설본’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오직 한 사람, 무비 스님만이 할 수 있었던 작업『화엄경』 강설본 출판의 요구는 오래되었지만 『화엄경』을 강설할 만한 실력 그리고 이걸 책으로 엮기 위해 원고를 쓸 막대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한 사람’이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화엄경』 강설은 중국불교에서도 당나라 시대 이후 청량 징관, 이통현 장자 등에 의해 오직 3~4차례만 시도되었던 대역사이고 근대 이후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을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만약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이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무비 스님이었다. 탄허 스님의 강맥을 이은 무비 스님은 우리나라에서는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현존하는 대강백이면서 경전을 이해하기 쉽게 풀 수 있는 대중성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진척이 늦었던 『화엄경』 강설은 몇 년 전부터 스님과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화엄경』 법회가 몇 년째 계속되면서 서서히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二十五. 십회향품十廻向品 6화엄경 7처 9회 39품 중에서 제5회 법문의 본론인 제25 십회향품 가운데 여섯 번째 권이다. 십회향 법문은 제5회 법문의 본론으로, 십회향품은 80권 중에서 무려 10권 반이나 되는 매우 긴 품이다. 제25 십회향품 6에서는 지금까지 계속되던 제6 수순견고일체선근회향(隨順堅固一切善根廻向, 견고한 일체 선근을 수순하는 회향)의 60종 보시가 드디어 끝이 난다. 10권 반이나 되는 십회향품에서 세 권 반이나 되는 제6 수순견고일체선근회향이 끝이 난 것이다. 방대한 60종의 보시에는 눈에 보이는 물품 보시와 신체 보시도 많지만 ‘여래 출현을 찬탄하는 보시’, ‘법을 듣고 기뻐하는 보시’도 있고 ‘광대한 보시의 모임을 만들어 보시’하는 것도 있다. 불교에서는 보살의 제일 덕목을 보시라고 한다. 베풀고 나누라는 가르침을 얼마나 많이 이야기하는가. 수행은 반복하는 것이기 때문에 60종의 보시를 열거하면서 끊임없이 반복해서 듣고 생각하여 수행하는 법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베풀고 나누는 일은 씨앗이 됨과 동시에 결과가 된다. 
제목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27 二十五. 십회향품十廻向品 5
저자 여천 무비
분야 불교 경전
출판사 담앤북스
발행일 20150801
정가 14,000원
최초, 최고, 최대라는 세 가지 수식어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경전 『화엄경』『대방광불화엄경』(약칭 『화엄경』)은 불교의 수많은 경전(經典) 가운데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의 내용을 어떤 방편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보였기 때문에 그만큼 가장 어려운 경전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화엄경』은 불교 ‘최고’의 경전이기도 하지만 또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화엄경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4세기경부터 산스크리트에서 한역(漢譯)된 이래 『화엄경』은 동아시아 사상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6세기경에는 중국에 『화엄경』을 중심으로 한 종문(화엄종-현수종)이 성립해 중국불교사 전반을 주도하며 관통했고 이후 중국에 뿌리내린 선불교나 심지어 신유학에까지 『화엄경』의 영향이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한국 사상계에 화엄경이 미친 영향 역시 지대하다. 원효와 의상은 한국에 화엄철학의 기초를 다지고 화엄종의 문을 연 한국 사상계의 대표적인 두 거목이다. 이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승과(僧科)에서도 『화엄경』은 빠져 본 적이 없다.  특히 ‘종교’로서의 불교가 큰 위기에 처했던 조선 시대에도 매한가지였다. 승려는 물론 유학자들도 『화엄경』 읽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 선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화엄경』을 읽고 있는데 (『화엄경』의) 교차되어 나타나는 묘리가 (그렇게 된) 연유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초의 선사에게 『화엄경』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의중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교 안팎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라고 얘기하는 『화엄경』은 특히 근대 이후에는 그 유명세에 비해 더욱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이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너무 방대하고 너무 난해하였기 때문이다. 첫째, 화엄경은 너무 방대하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화엄경은 모두 4종이다. 각각 40권본, 60권본, 80권본이 있고 티베트어로 된 화엄경이 있다.(산스크리트로 된 것은 「십지품」과 「입법계품」 등 일부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되었다.) 이 중 40권본은 『화엄경』에서 「입법계품」만 따로 떼어 놓은 것이니 차치하고 60권본, 80권본, 그리고 티베트본이 있는데 그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누구나 선뜻 그 시작의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둘째는 난해함, 즉 단단한 언어와 이해의 벽이다. 산스크리트에서 한역된 『화엄경』은 근대 이후 모두 네 차례 한글화됐다. 용성, 운허, 탄허, 무비 스님이 역경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한글로 되어 있다고 누구나 『화엄경』을 볼 수는 없었다. 난해한 번역도 문제였지만 쉬운 한글이라도 한자 하나하나에 담겼던 뜻을 더 깊이 풀어내 주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한역 『화엄경』만큼 한글 『화엄경』 역시 접근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불교계 안팎에서는 스님이나 재가불자는 물론이고 동양사상 전반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화엄경』 ‘강설본’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오직 한 사람, 무비 스님만이 할 수 있었던 작업『화엄경』 강설본 출판의 요구는 오래되었지만 『화엄경』을 강설할 만한 실력 그리고 이걸 책으로 엮기 위해 원고를 쓸 막대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한 사람’이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화엄경』 강설은 중국불교에서도 당나라 시대 이후 청량 징관, 이통현 장자 등에 의해 오직 3~4차례만 시도되었던 대역사이고 근대 이후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을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만약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이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무비 스님이었다. 탄허 스님의 강맥을 이은 무비 스님은 우리나라에서는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현존하는 대강백이면서 경전을 이해하기 쉽게 풀 수 있는 대중성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진척이 늦었던 『화엄경』 강설은 몇 년 전부터 스님과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화엄경』 법회가 몇 년째 계속되면서 서서히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二十五. 십회향품十廻向品 5화엄경 7처 9회 39품 중에서 제5회 법문의 본론인 제25 십회향품 가운데 다섯 번째 권이다. 십회향 법문은 제5회 법문의 본론으로, 십회향품은 80권 중에서 무려 10권 반이나 되는 매우 긴 품이다. 제25 십회향품 5에서는 제6 수순견고일체선근회향(隨順堅固一切善根廻向)-견고한 일체 선근을 수순하는 회향이 계속된다. 불교의 가르침 중에서 제일가는 덕목인 보시행을 구체적으로 광범위하게 설하는데 그 종류가 60종이나 되며,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생사의 고통을 여의고 여래의 가장 묘한 낙을 얻게 하려는 보살의 철저한 대자대비의 마음이 대지를 다 적시고도 남도록 표현되었다. 예를 들면, 눈을 보시하면서 “보살이 눈을 보시할 적에 보시하는 눈을 청정히 하려는 마음을 일으키며, 지혜의 눈을 청정히 하려는 마음을 일으키며, 법의 광명을 의지하려는 마음을 일으키며, 위없는 부처님의 도를 환하게 보려는 마음을 일으키며, 광대한 지혜에 회향하는 마음을 일으키며, (중략) 구걸하는 이에게 환희하게 섭수하는 마음을 일으키느니라.”라고 하였다. 자신에게 구걸하러 오는 사람을 환희하는 마음으로 섭수하는 것이 보살의 마음이다. 보시하러 오는 사람을 대하는 마음으로 구걸하러 오는 사람을 대하는 것이 보살의 마음이다. 십회향품을 읽다 보면 불교는 오로지 보시이며 다시 그 보시를 더 높은 뜻으로 회향하는 것임을 명백하게 알 수 있다. 
제목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26 二十五. 십회향품十廻向品 4
저자 여천 무비
분야 불교 경전
출판사 담앤북스
발행일 20150723
정가 14,000원
최초, 최고, 최대라는 세 가지 수식어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경전 『화엄경』『대방광불화엄경』(약칭 『화엄경』)은 불교의 수많은 경전(經典) 가운데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의 내용을 어떤 방편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보였기 때문에 그만큼 가장 어려운 경전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화엄경』은 불교 ‘최고’의 경전이기도 하지만 또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화엄경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4세기경부터 산스크리트에서 한역(漢譯)된 이래 『화엄경』은 동아시아 사상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6세기경에는 중국에 『화엄경』을 중심으로 한 종문(화엄종-현수종)이 성립해 중국불교사 전반을 주도하며 관통했고 이후 중국에 뿌리내린 선불교나 심지어 신유학에까지 『화엄경』의 영향이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한국 사상계에 화엄경이 미친 영향 역시 지대하다. 원효와 의상은 한국에 화엄철학의 기초를 다지고 화엄종의 문을 연 한국 사상계의 대표적인 두 거목이다. 이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승과(僧科)에서도 『화엄경』은 빠져 본 적이 없다.  특히 ‘종교’로서의 불교가 큰 위기에 처했던 조선 시대에도 매한가지였다. 승려는 물론 유학자들도 『화엄경』 읽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 선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화엄경』을 읽고 있는데 (『화엄경』의) 교차되어 나타나는 묘리가 (그렇게 된) 연유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초의 선사에게 『화엄경』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의중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교 안팎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라고 얘기하는 『화엄경』은 특히 근대 이후에는 그 유명세에 비해 더욱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이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너무 방대하고 너무 난해하였기 때문이다. 첫째, 화엄경은 너무 방대하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화엄경은 모두 4종이다. 각각 40권본, 60권본, 80권본이 있고 티베트어로 된 화엄경이 있다.(산스크리트로 된 것은 「십지품」과 「입법계품」 등 일부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되었다.) 이 중 40권본은 『화엄경』에서 「입법계품」만 따로 떼어 놓은 것이니 차치하고 60권본, 80권본, 그리고 티베트본이 있는데 그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누구나 선뜻 그 시작의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둘째는 난해함, 즉 단단한 언어와 이해의 벽이다. 산스크리트에서 한역된 『화엄경』은 근대 이후 모두 네 차례 한글화됐다. 용성, 운허, 탄허, 무비 스님이 역경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한글로 되어 있다고 누구나 『화엄경』을 볼 수는 없었다. 난해한 번역도 문제였지만 쉬운 한글이라도 한자 하나하나에 담겼던 뜻을 더 깊이 풀어내 주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한역 『화엄경』만큼 한글 『화엄경』 역시 접근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불교계 안팎에서는 스님이나 재가불자는 물론이고 동양사상 전반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화엄경』 ‘강설본’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오직 한 사람, 무비 스님만이 할 수 있었던 작업『화엄경』 강설본 출판의 요구는 오래되었지만 『화엄경』을 강설할 만한 실력 그리고 이걸 책으로 엮기 위해 원고를 쓸 막대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한 사람’이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화엄경』 강설은 중국불교에서도 당나라 시대 이후 청량 징관, 이통현 장자 등에 의해 오직 3~4차례만 시도되었던 대역사이고 근대 이후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을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만약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이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무비 스님이었다. 탄허 스님의 강맥을 이은 무비 스님은 우리나라에서는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현존하는 대강백이면서 경전을 이해하기 쉽게 풀 수 있는 대중성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진척이 늦었던 『화엄경』 강설은 몇 년 전부터 스님과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화엄경』 법회가 몇 년째 계속되면서 서서히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二十五. 십회향품十廻向品 4화엄경 7처 9회 39품 중에서 제5회 법문의 본론인 제25 십회향품 가운데 네 번째 권이다.십회향 법문은 제5회 법문의 본론으로, 십회향품은 80권 중에서 무려 10권 반이나 되는 매우 긴 품이다. 제25 십회향품 4에서는 제6 수순견고일체선근회향(隨順堅固一切善根廻向)-견고한 일체 선근을 수순하는 회향이 계속된다. 불교의 가르침 중에서 제일가는 덕목인 보시행을 구체적으로 광범위하게 설하는데 그 종류가 60종이나 되며,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생사의 고통을 여의고 여래의 가장 묘한 낙을 얻게 하려는 보살의 철저한 대자대비의 마음이 대지를 다 적시고도 남도록 표현되었다. 예를 들면, 수레를 보시하면서 “원컨대 일체 중생이 청정한 인(因)으로 큰 법의 지혜 수레를 타고 미래의 겁이 다하도록 보살행을 닦으면서 길이 퇴전치 말아지이다.” “원컨대 일체 중생의 일체 지혜의 가장 높은 보배 수레를 타고 보현보살의 행(行)과 원(願)을 만족하여 게으르지 말아지이다.”라고 회향하는 것이다. 십회향품을 읽다 보면 불교는 오로지 보시이며 다시 그 보시를 더 높은 뜻으로 회향하는 것임을 명백하게 알 수 있다. 
제목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25 二十五. 십회향품十廻向品 3
저자 여천 무비
분야 불교 경전
출판사 담앤북스
발행일 20150709
정가 14,000
최초, 최고, 최대라는 세 가지 수식어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경전 『화엄경』『대방광불화엄경』(약칭 『화엄경』)은 불교의 수많은 경전(經典) 가운데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의 내용을 어떤 방편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보였기 때문에 그만큼 가장 어려운 경전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화엄경』은 불교 ‘최고’의 경전이기도 하지만 또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화엄경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4세기경부터 산스크리트에서 한역(漢譯)된 이래 『화엄경』은 동아시아 사상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6세기경에는 중국에 『화엄경』을 중심으로 한 종문(화엄종-현수종)이 성립해 중국불교사 전반을 주도하며 관통했고 이후 중국에 뿌리내린 선불교나 심지어 신유학에까지 『화엄경』의 영향이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한국 사상계에 화엄경이 미친 영향 역시 지대하다. 원효와 의상은 한국에 화엄철학의 기초를 다지고 화엄종의 문을 연 한국 사상계의 대표적인 두 거목이다. 이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승과(僧科)에서도 『화엄경』은 빠져 본 적이 없다.  특히 ‘종교’로서의 불교가 큰 위기에 처했던 조선 시대에도 매한가지였다. 승려는 물론 유학자들도 『화엄경』 읽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 선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화엄경』을 읽고 있는데 (『화엄경』의) 교차되어 나타나는 묘리가 (그렇게 된) 연유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초의 선사에게 『화엄경』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의중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교 안팎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라고 얘기하는 『화엄경』은 특히 근대 이후에는 그 유명세에 비해 더욱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이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너무 방대하고 너무 난해하였기 때문이다. 첫째, 화엄경은 너무 방대하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화엄경은 모두 4종이다. 각각 40권본, 60권본, 80권본이 있고 티베트어로 된 화엄경이 있다.(산스크리트로 된 것은 「십지품」과 「입법계품」 등 일부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되었다.) 이 중 40권본은 『화엄경』에서 「입법계품」만 따로 떼어 놓은 것이니 차치하고 60권본, 80권본, 그리고 티베트본이 있는데 그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누구나 선뜻 그 시작의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둘째는 난해함, 즉 단단한 언어와 이해의 벽이다. 산스크리트에서 한역된 『화엄경』은 근대 이후 모두 네 차례 한글화됐다. 용성, 운허, 탄허, 무비 스님이 역경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한글로 되어 있다고 누구나 『화엄경』을 볼 수는 없었다. 난해한 번역도 문제였지만 쉬운 한글이라도 한자 하나하나에 담겼던 뜻을 더 깊이 풀어내 주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한역 『화엄경』만큼 한글 『화엄경』 역시 접근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불교계 안팎에서는 스님이나 재가불자는 물론이고 동양사상 전반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화엄경』 ‘강설본’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오직 한 사람, 무비 스님만이 할 수 있었던 작업『화엄경』 강설본 출판의 요구는 오래되었지만 『화엄경』을 강설할 만한 실력 그리고 이걸 책으로 엮기 위해 원고를 쓸 막대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한 사람’이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화엄경』 강설은 중국불교에서도 당나라 시대 이후 청량 징관, 이통현 장자 등에 의해 오직 3~4차례만 시도되었던 대역사이고 근대 이후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을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만약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이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무비 스님이었다. 탄허 스님의 강맥을 이은 무비 스님은 우리나라에서는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현존하는 대강백이면서 경전을 이해하기 쉽게 풀 수 있는 대중성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진척이 늦었던 『화엄경』 강설은 몇 년 전부터 스님과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화엄경』 법회가 몇 년째 계속되면서 서서히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二十五. 십회향품十廻向品 3화엄경 7처 9회 39품 중에서 제5회 법문의 본론인 제25 십회향품 가운데 세 번째 권이다.십회향 법문은 제5회 법문의 본론으로, 십회향품은 80권 중에서 무려 10권 반이나 되는 매우 긴 품이다. 회향(廻向)은 흔히 회소향대(廻小向大)라 하여 작은 수행을 돌려서 보다 큰 수행으로 향한다는 뜻이다. 또 회자향타(廻自向他)라고 해서 자신의 이익이나 재산이나 수행이나 공부를 돌려서 모두 다른 이에게 드린다는 뜻이다. 본문에서는 금강당보살이 열 가지 회향을 설하면서 모두 중생회향과 보리회향과 진여실제에 회향하는 것을 밝힌다. 아래로는 대비심을 중생에게 베풀어 교화하기 위하여 중생에게 회향하는 것이며, 위로는 보리를 구하기 위하여 보리에 회향하는 것이며, 다음은 회향하는 사람이나 회향하는 이치가 고요하기 때문에 진여의 실제에 회향하여 그지없는 수행의 바다로 보현법계의 공덕을 성취하는 일이 그것이다. 제25 십회향품 3에서는 제5 무진공덕장회향(無盡功德藏廻向)-보살마하살의 다함이 없는 공덕을 저장한 회향과 제6 수순견고일체선근회향(隨順堅固一切善根廻向)-견고한 일체 선근을 수순하는 회향에 대해 설한다. 사람 사람의 진여생명은 본래로 다함이 없고 끝이 없는 공덕을 저장하고 있어서 제5 무진공덕장회향에서는 그 이치를 근본으로 하여 여러 가지 선근을 닦아서 생긴 내용들을 밝혔다. 제6 수순견고일체선근회향에서는 불교의 가르침 중에서 제일가는 덕목인 보시행을 구체적으로 광범위하게 설한다.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다 보시하는데 그 종류가 60종이나 되어 제6 수순견고일체선근회향만 앞으로도 세 권의 경문이 더 이어진다.
제목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24 二十五. 십회향품十廻向品 2
저자 여천 무비
분야 불교 경전
출판사 담앤북스
발행일 20150615
정가 14,000원
최초, 최고, 최대라는 세 가지 수식어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경전 『화엄경』『대방광불화엄경』(약칭 『화엄경』)은 불교의 수많은 경전(經典) 가운데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의 내용을 어떤 방편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보였기 때문에 그만큼 가장 어려운 경전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화엄경』은 불교 ‘최고’의 경전이기도 하지만 또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화엄경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4세기경부터 산스크리트에서 한역(漢譯)된 이래 『화엄경』은 동아시아 사상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6세기경에는 중국에 『화엄경』을 중심으로 한 종문(화엄종-현수종)이 성립해 중국불교사 전반을 주도하며 관통했고 이후 중국에 뿌리내린 선불교나 심지어 신유학에까지 『화엄경』의 영향이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한국 사상계에 화엄경이 미친 영향 역시 지대하다. 원효와 의상은 한국에 화엄철학의 기초를 다지고 화엄종의 문을 연 한국 사상계의 대표적인 두 거목이다. 이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승과(僧科)에서도 『화엄경』은 빠져 본 적이 없다.  특히 ‘종교’로서의 불교가 큰 위기에 처했던 조선 시대에도 매한가지였다. 승려는 물론 유학자들도 『화엄경』 읽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 선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화엄경』을 읽고 있는데 (『화엄경』의) 교차되어 나타나는 묘리가 (그렇게 된) 연유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초의 선사에게 『화엄경』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의중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교 안팎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라고 얘기하는 『화엄경』은 특히 근대 이후에는 그 유명세에 비해 더욱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이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너무 방대하고 너무 난해하였기 때문이다. 첫째, 화엄경은 너무 방대하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화엄경은 모두 4종이다. 각각 40권본, 60권본, 80권본이 있고 티베트어로 된 화엄경이 있다.(산스크리트로 된 것은 「십지품」과 「입법계품」 등 일부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되었다.) 이 중 40권본은 『화엄경』에서 「입법계품」만 따로 떼어 놓은 것이니 차치하고 60권본, 80권본, 그리고 티베트본이 있는데 그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누구나 선뜻 그 시작의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둘째는 난해함, 즉 단단한 언어와 이해의 벽이다. 산스크리트에서 한역된 『화엄경』은 근대 이후 모두 네 차례 한글화됐다. 용성, 운허, 탄허, 무비 스님이 역경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한글로 되어 있다고 누구나 『화엄경』을 볼 수는 없었다. 난해한 번역도 문제였지만 쉬운 한글이라도 한자 하나하나에 담겼던 뜻을 더 깊이 풀어내 주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한역 『화엄경』만큼 한글 『화엄경』 역시 접근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불교계 안팎에서는 스님이나 재가불자는 물론이고 동양사상 전반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화엄경』 ‘강설본’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오직 한 사람, 무비 스님만이 할 수 있었던 작업『화엄경』 강설본 출판의 요구는 오래되었지만 『화엄경』을 강설할 만한 실력 그리고 이걸 책으로 엮기 위해 원고를 쓸 막대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한 사람’이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화엄경』 강설은 중국불교에서도 당나라 시대 이후 청량 징관, 이통현 장자 등에 의해 오직 3~4차례만 시도되었던 대역사이고 근대 이후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을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만약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이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무비 스님이었다. 탄허 스님의 강맥을 이은 무비 스님은 우리나라에서는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현존하는 대강백이면서 경전을 이해하기 쉽게 풀 수 있는 대중성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진척이 늦었던 『화엄경』 강설은 몇 년 전부터 스님과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화엄경』 법회가 몇 년째 계속되면서 서서히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二十五. 십회향품十廻向品 2화엄경 7처 9회 39품 중에서 제5회 법문의 본론인 제25 십회향품 가운데 두 번째 권이다.십회향 법문은 제5회 법문의 본론으로, 십회향품은 80권 중에서 무려 10권 반이나 되는 매우 긴 품이다. 회향(廻向)은 흔히 회소향대(廻小向大)라 하여 작은 수행을 돌려서 보다 큰 수행으로 향한다는 뜻이다. 또 회자향타(廻自向他)라고 해서 자신의 이익이나 재산이나 수행이나 공부를 돌려서 모두 다른 이에게 드린다는 뜻이다. 본문에서는 금강당보살이 열 가지 회향을 설하면서 모두 중생회향과 보리회향과 진여실제에 회향하는 것을 밝힌다. 아래로는 대비심을 중생에게 베풀어 교화하기 위하여 중생에게 회향하는 것이며, 위로는 보리를 구하기 위하여 보리에 회향하는 것이며, 다음은 회향하는 사람이나 회향하는 이치가 고요하기 때문에 진여의 실제에 회향하여 그지없는 수행의 바다로 보현법계의 공덕을 성취하는 일이 그것이다. 앞서 십회향품 1에서 금강당보살이 제1 구호일체중생이중생상회향(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廻向)-보살마하살의 일체 중생을 구호하면서도 중생이라는 상을 떠난 회향에 대해 설한 데 이어 제25 십회향품 2에서는 제2 불괴회향(不壞廻向)-보살마하살의 깨뜨릴 수 없는 회향과 제3 등일체불회향(等一切佛廻向)-보살마하살의 일체 부처님과 평등한 회향, 제4 지일체처회향(至一切處廻向)-보살마하살의 일체 처에 이르는 회향에 대해 금강당보살이 설한다.
제목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23 二十四. 도솔궁중게찬품 二十五. 십회향품 1
저자 여천 무비
분야 불교 경전
출판사 담앤북스
발행일 20150525
정가 14,000원
최초, 최고, 최대라는 세 가지 수식어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경전 『화엄경』『대방광불화엄경』(약칭 『화엄경』)은 불교의 수많은 경전(經典) 가운데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의 내용을 어떤 방편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보였기 때문에 그만큼 가장 어려운 경전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화엄경』은 불교 ‘최고’의 경전이기도 하지만 또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화엄경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4세기경부터 산스크리트에서 한역(漢譯)된 이래 『화엄경』은 동아시아 사상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6세기경에는 중국에 『화엄경』을 중심으로 한 종문(화엄종-현수종)이 성립해 중국불교사 전반을 주도하며 관통했고 이후 중국에 뿌리내린 선불교나 심지어 신유학에까지 『화엄경』의 영향이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한국 사상계에 화엄경이 미친 영향 역시 지대하다. 원효와 의상은 한국에 화엄철학의 기초를 다지고 화엄종의 문을 연 한국 사상계의 대표적인 두 거목이다. 이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승과(僧科)에서도 『화엄경』은 빠져 본 적이 없다.  특히 ‘종교’로서의 불교가 큰 위기에 처했던 조선 시대에도 매한가지였다. 승려는 물론 유학자들도 『화엄경』 읽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 선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화엄경』을 읽고 있는데 (『화엄경』의) 교차되어 나타나는 묘리가 (그렇게 된) 연유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초의 선사에게 『화엄경』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의중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교 안팎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라고 얘기하는 『화엄경』은 특히 근대 이후에는 그 유명세에 비해 더욱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이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너무 방대하고 너무 난해하였기 때문이다. 첫째, 화엄경은 너무 방대하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화엄경은 모두 4종이다. 각각 40권본, 60권본, 80권본이 있고 티베트어로 된 화엄경이 있다.(산스크리트로 된 것은 「십지품」과 「입법계품」 등 일부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되었다.) 이 중 40권본은 『화엄경』에서 「입법계품」만 따로 떼어 놓은 것이니 차치하고 60권본, 80권본, 그리고 티베트본이 있는데 그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누구나 선뜻 그 시작의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둘째는 난해함, 즉 단단한 언어와 이해의 벽이다. 산스크리트에서 한역된 『화엄경』은 근대 이후 모두 네 차례 한글화됐다. 용성, 운허, 탄허, 무비 스님이 역경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한글로 되어 있다고 누구나 『화엄경』을 볼 수는 없었다. 난해한 번역도 문제였지만 쉬운 한글이라도 한자 하나하나에 담겼던 뜻을 더 깊이 풀어내 주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한역 『화엄경』만큼 한글 『화엄경』 역시 접근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불교계 안팎에서는 스님이나 재가불자는 물론이고 동양사상 전반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화엄경』 ‘강설본’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오직 한 사람, 무비 스님만이 할 수 있었던 작업『화엄경』 강설본 출판의 요구는 오래되었지만 『화엄경』을 강설할 만한 실력 그리고 이걸 책으로 엮기 위해 원고를 쓸 막대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한 사람’이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화엄경』 강설은 중국불교에서도 당나라 시대 이후 청량 징관, 이통현 장자 등에 의해 오직 3~4차례만 시도되었던 대역사이고 근대 이후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을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만약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이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무비 스님이었다. 탄허 스님의 강맥을 이은 무비 스님은 우리나라에서는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현존하는 대강백이면서 경전을 이해하기 쉽게 풀 수 있는 대중성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진척이 늦었던 『화엄경』 강설은 몇 년 전부터 스님과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화엄경』 법회가 몇 년째 계속되면서 서서히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二十四. 도솔궁중게찬품兜率宮中偈讚品화엄경 7처 9회 설법 중에서 제5회 3품 설법은 십회향법문이 본론이다. 그 서론으로 앞에서 부처님께서 도솔천궁으로 올라가시는 광경을 승도솔천궁품에서 장황하게 설하여 마쳤다. 이번에는 시방에서 각각 한 분의 큰 보살들이 다시 또 작은 먼지 수처럼 많고 많은 권속 보살들과 함께 모여 와서 부처님의 공덕과 지혜와 자비와 신통묘용 등 온갖 덕을 찬탄하는 내용이다. 광대무변한 십회향법문이 설해지기 전에 부처님의 위대함을 더욱 드러내기 위해서 서론은 아직도 노래로써 계속된다.二十五. 십회향품十廻向品 1화엄경 7처 9회 39품 중에서 제5회 법문의 본론인 제25 십회향품이다. 십회향 법문은 제5회 법문의 본론이다. 부처님이 보리수나무 밑을 떠나지 않으신 채 도솔천에 올라가시는 내용과 도솔천에서 시방의 보살들이 각각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는 두 품은 서론이다. 두 품의 길고 긴 서론이 끝나고 비로소 본론에 들어간다. 서론이 길었듯이 십회향품은 80권 중에서 무려 10권 반이나 되는 매우 긴 품이다. 보살의 수행 계위에서 보면 삼현십성三賢十聖 중 삼현의 끝이다. 삼현은 십주와 십행과 십회향이다. 십성은 십지十地의 지위를 말한다.회향廻向은 흔히 회소향대廻小向大라 하여 작은 수행을 돌려서 보다 큰 수행으로 향한다는 뜻이다. 또 회자향타廻自向他라고 해서 자신의 이익이나 재산이나 수행이나 공부를 돌려서 모두 다른 이에게 드린다는 뜻이다. 본문에서는 금강당보살이 열 가지 회향을 설하면서 모두 중생회향과 보리회향과 진여실제에 회향하는 것을 밝혔다. 아래로는 대비심을 중생에게 베풀어 교화하기 위하여 중생에게 회향하는 것이며, 위로는 보리를 구하기 위하여 보리에 회향하는 것이며, 다음은 회향하는 사람이나 회향하는 이치가 고요하기 때문에 진여의 실제에 회향하여 그지없는 수행의 바다로 보현법계의 공덕을 성취하는 일을 설하였다.
제목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22 二十三. 승도솔천궁품昇兜率天宮品
저자 여천 무비
분야 불교 경전
출판사 담앤북스
발행일 20150427
정가 14,000원
최초, 최고, 최대라는 세 가지 수식어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경전 『화엄경』『대방광불화엄경』(약칭 『화엄경』)은 불교의 수많은 경전(經典) 가운데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의 내용을 어떤 방편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보였기 때문에 그만큼 가장 어려운 경전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화엄경』은 불교 ‘최고’의 경전이기도 하지만 또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화엄경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4세기경부터 산스크리트에서 한역(漢譯)된 이래 『화엄경』은 동아시아 사상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6세기경에는 중국에 『화엄경』을 중심으로 한 종문(화엄종-현수종)이 성립해 중국불교사 전반을 주도하며 관통했고 이후 중국에 뿌리내린 선불교나 심지어 신유학에까지 『화엄경』의 영향이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한국 사상계에 화엄경이 미친 영향 역시 지대하다. 원효와 의상은 한국에 화엄철학의 기초를 다지고 화엄종의 문을 연 한국 사상계의 대표적인 두 거목이다. 이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승과(僧科)에서도 『화엄경』은 빠져 본 적이 없다.  특히 ‘종교’로서의 불교가 큰 위기에 처했던 조선 시대에도 매한가지였다. 승려는 물론 유학자들도 『화엄경』 읽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 선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화엄경』을 읽고 있는데 (『화엄경』의) 교차되어 나타나는 묘리가 (그렇게 된) 연유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초의 선사에게 『화엄경』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의중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교 안팎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라고 얘기하는 『화엄경』은 특히 근대 이후에는 그 유명세에 비해 더욱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이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너무 방대하고 너무 난해하였기 때문이다. 첫째, 화엄경은 너무 방대하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화엄경은 모두 4종이다. 각각 40권본, 60권본, 80권본이 있고 티베트어로 된 화엄경이 있다.(산스크리트로 된 것은 「십지품」과 「입법계품」 등 일부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되었다.) 이 중 40권본은 『화엄경』에서 「입법계품」만 따로 떼어 놓은 것이니 차치하고 60권본, 80권본, 그리고 티베트본이 있는데 그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누구나 선뜻 그 시작의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둘째는 난해함, 즉 단단한 언어와 이해의 벽이다. 산스크리트에서 한역된 『화엄경』은 근대 이후 모두 네 차례 한글화됐다. 용성, 운허, 탄허, 무비 스님이 역경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한글로 되어 있다고 누구나 『화엄경』을 볼 수는 없었다. 난해한 번역도 문제였지만 쉬운 한글이라도 한자 하나하나에 담겼던 뜻을 더 깊이 풀어내 주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한역 『화엄경』만큼 한글 『화엄경』 역시 접근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불교계 안팎에서는 스님이나 재가불자는 물론이고 동양사상 전반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화엄경』 ‘강설본’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오직 한 사람, 무비 스님만이 할 수 있었던 작업『화엄경』 강설본 출판의 요구는 오래되었지만 『화엄경』을 강설할 만한 실력 그리고 이걸 책으로 엮기 위해 원고를 쓸 막대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한 사람’이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화엄경』 강설은 중국불교에서도 당나라 시대 이후 청량 징관, 이통현 장자 등에 의해 오직 3~4차례만 시도되었던 대역사이고 근대 이후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을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만약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이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무비 스님이었다. 탄허 스님의 강맥을 이은 무비 스님은 우리나라에서는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현존하는 대강백이면서 경전을 이해하기 쉽게 풀 수 있는 대중성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진척이 늦었던 『화엄경』 강설은 몇 년 전부터 스님과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화엄경』 법회가 몇 년째 계속되면서 서서히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二十三. 승도솔천궁품昇兜率天宮品승도솔천궁품昇兜率天宮品은 화엄경 7처 9회 39품 중에 제5회 3품 설법이다. 세존이 도솔천궁으로 올라가시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도솔궁중게찬품兜率宮中偈讚品과 함께 5회 3품 설법의 서론에 해당한다. 본론은 십회향품十廻向品이다. 승도솔천궁품에서는 도솔궁중의 일체 사자좌의 장엄과 누각의 장엄에서부터 보살 대중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가 백만억으로 불어났다. 제3회 십주법十住法을 설할 때는 일만이었고 제4회 십행법十行法을 설할 때는 백만이라고 하였으나 제5회에서는 수행 계위가 더욱 높아진 십회향법十廻向法을 설하기 때문에 그 숫자가 백만억인 것이다. 십회향법이 그와 같이 높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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