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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70 三十九. 입법계품入法界品 11
저자 여천 무비
분야 불교 경전
출판사 담앤북스
발행일 20171013
정가 14,000원
최초, 최고, 최대라는 세 가지 수식어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경전 『화엄경』『대방광불화엄경』(약칭 『화엄경』)은 불교의 수많은 경전(經典) 가운데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의 내용을 어떤 방편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보였기 때문에 그만큼 가장 어려운 경전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화엄경』은 불교 ‘최고’의 경전이기도 하지만 또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화엄경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4세기경부터 산스크리트에서 한역(漢譯)된 이래 『화엄경』은 동아시아 사상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6세기경에는 중국에 『화엄경』을 중심으로 한 종문(화엄종-현수종)이 성립해 중국불교사 전반을 주도하며 관통했고 이후 중국에 뿌리내린 선불교나 심지어 신유학에까지 『화엄경』의 영향이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한국 사상계에 화엄경이 미친 영향 역시 지대하다. 원효와 의상은 한국에 화엄철학의 기초를 다지고 화엄종의 문을 연 한국 사상계의 대표적인 두 거목이다. 이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승과(僧科)에서도 『화엄경』은 빠져 본 적이 없다.  특히 ‘종교’로서의 불교가 큰 위기에 처했던 조선 시대에도 매한가지였다. 승려는 물론 유학자들도 『화엄경』 읽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 선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화엄경』을 읽고 있는데 (『화엄경』의) 교차되어 나타나는 묘리가 (그렇게 된) 연유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초의 선사에게 『화엄경』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의중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교 안팎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라고 얘기하는 『화엄경』은 특히 근대 이후에는 그 유명세에 비해 더욱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이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너무 방대하고 너무 난해하였기 때문이다. 첫째, 화엄경은 너무 방대하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화엄경은 모두 4종이다. 각각 40권본, 60권본, 80권본이 있고 티베트어로 된 화엄경이 있다.(산스크리트로 된 것은 「십지품」과 「입법계품」 등 일부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되었다.) 이 중 40권본은 『화엄경』에서 「입법계품」만 따로 떼어 놓은 것이니 차치하고 60권본, 80권본, 그리고 티베트본이 있는데 그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누구나 선뜻 그 시작의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둘째는 난해함, 즉 단단한 언어와 이해의 벽이다. 산스크리트에서 한역된 『화엄경』은 근대 이후 모두 네 차례 한글화됐다. 용성, 운허, 탄허, 무비 스님이 역경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한글로 되어 있다고 누구나 『화엄경』을 볼 수는 없었다. 난해한 번역도 문제였지만 쉬운 한글이라도 한자 하나하나에 담겼던 뜻을 더 깊이 풀어내 주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한역 『화엄경』만큼 한글 『화엄경』 역시 접근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불교계 안팎에서는 스님이나 재가불자는 물론이고 동양사상 전반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화엄경』 ‘강설본’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오직 한 사람, 무비 스님만이 할 수 있었던 작업『화엄경』 강설본 출판의 요구는 오래되었지만 『화엄경』을 강설할 만한 실력 그리고 이걸 책으로 엮기 위해 원고를 쓸 막대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한 사람’이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화엄경』 강설은 중국불교에서도 당나라 시대 이후 청량 징관, 이통현 장자 등에 의해 오직 3~4차례만 시도되었던 대역사이고 근대 이후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을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만약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이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무비 스님이었다. 탄허 스님의 강맥을 이은 무비 스님은 우리나라에서는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현존하는 대강백이면서 경전을 이해하기 쉽게 풀 수 있는 대중성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진척이 늦었던 『화엄경』 강설은 몇 년 전부터 스님과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화엄경』 법회가 몇 년째 계속되면서 서서히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대방광불화엄경 강설』은 2014년 4월 「세주묘엄품」 5권 발간을 시작으로 2017년 10월 현재 70권까지 발행되었다. 제70권에는 입법계품 11이 실려 있다.三十九. 입법계품入法界品 11입법계(入法界)란 법계(法界)에 들어간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법계란 무엇인가. 세계와 우주 전체를 불교에서 일컫는 말이다. 법계란 법(法)의 세계, 진리의 세계, 진여법성의 세계인데 우주 전체를 그와 같은 법계라고 하는 뜻은 무엇인가. 입법계품은 근본법회(根本法會)와 지말법회(枝末法會)라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근본법회는 법계에 들어간 상태에서의 결과적인 내용을 밝혔고, 지말법회는 법계에 들어가는 과정으로서의 원인을 밝혔다. 법계에 들어간 결과로서의 내용은 법계에 순식간에 들어가고, 법계에 들어가는 과정으로서의 원인은 점차적으로 들어간다. 또 근본법회가 전체적인 내용이라면, 지말법회는 개별적인 내용이다. 지말법회가 이어진다. 선재동자가 53명의 선지식을 찾아서 남쪽으로 구법(求法)의 긴 여행을 떠나는데, 제70권에서 선재동자는 십지위 선지식으로 보구중생묘덕주야신을 뵙고 법을 묻는다. 70권 한 권이 온전히 보구중생묘덕주야신 선지식의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제목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69 三十九. 입법계품入法界品 10
저자 여천 무비
분야 불교 경전
출판사 담앤북스
발행일 20170920
정가 14,000원
 최초, 최고, 최대라는 세 가지 수식어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경전 『화엄경』『대방광불화엄경』(약칭 『화엄경』)은 불교의 수많은 경전(經典) 가운데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의 내용을 어떤 방편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보였기 때문에 그만큼 가장 어려운 경전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화엄경』은 불교 ‘최고’의 경전이기도 하지만 또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화엄경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4세기경부터 산스크리트에서 한역(漢譯)된 이래 『화엄경』은 동아시아 사상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6세기경에는 중국에 『화엄경』을 중심으로 한 종문(화엄종-현수종)이 성립해 중국불교사 전반을 주도하며 관통했고 이후 중국에 뿌리내린 선불교나 심지어 신유학에까지 『화엄경』의 영향이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한국 사상계에 화엄경이 미친 영향 역시 지대하다. 원효와 의상은 한국에 화엄철학의 기초를 다지고 화엄종의 문을 연 한국 사상계의 대표적인 두 거목이다. 이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승과(僧科)에서도 『화엄경』은 빠져 본 적이 없다.  특히 ‘종교’로서의 불교가 큰 위기에 처했던 조선 시대에도 매한가지였다. 승려는 물론 유학자들도 『화엄경』 읽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 선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화엄경』을 읽고 있는데 (『화엄경』의) 교차되어 나타나는 묘리가 (그렇게 된) 연유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초의 선사에게 『화엄경』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의중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교 안팎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라고 얘기하는 『화엄경』은 특히 근대 이후에는 그 유명세에 비해 더욱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이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너무 방대하고 너무 난해하였기 때문이다. 첫째, 화엄경은 너무 방대하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화엄경은 모두 4종이다. 각각 40권본, 60권본, 80권본이 있고 티베트어로 된 화엄경이 있다.(산스크리트로 된 것은 「십지품」과 「입법계품」 등 일부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되었다.) 이 중 40권본은 『화엄경』에서 「입법계품」만 따로 떼어 놓은 것이니 차치하고 60권본, 80권본, 그리고 티베트본이 있는데 그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누구나 선뜻 그 시작의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둘째는 난해함, 즉 단단한 언어와 이해의 벽이다. 산스크리트에서 한역된 『화엄경』은 근대 이후 모두 네 차례 한글화됐다. 용성, 운허, 탄허, 무비 스님이 역경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한글로 되어 있다고 누구나 『화엄경』을 볼 수는 없었다. 난해한 번역도 문제였지만 쉬운 한글이라도 한자 하나하나에 담겼던 뜻을 더 깊이 풀어내 주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한역 『화엄경』만큼 한글 『화엄경』 역시 접근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불교계 안팎에서는 스님이나 재가불자는 물론이고 동양사상 전반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화엄경』 ‘강설본’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오직 한 사람, 무비 스님만이 할 수 있었던 작업『화엄경』 강설본 출판의 요구는 오래되었지만 『화엄경』을 강설할 만한 실력 그리고 이걸 책으로 엮기 위해 원고를 쓸 막대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한 사람’이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화엄경』 강설은 중국불교에서도 당나라 시대 이후 청량 징관, 이통현 장자 등에 의해 오직 3~4차례만 시도되었던 대역사이고 근대 이후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을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만약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이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무비 스님이었다. 탄허 스님의 강맥을 이은 무비 스님은 우리나라에서는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현존하는 대강백이면서 경전을 이해하기 쉽게 풀 수 있는 대중성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진척이 늦었던 『화엄경』 강설은 몇 년 전부터 스님과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화엄경』 법회가 몇 년째 계속되면서 서서히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대방광불화엄경 강설』은 2014년 4월 「세주묘엄품」 5권 발간을 시작으로 2017년 9월 현재 69권까지 발행되었다. 제69권에는 입법계품 10이 실려 있다.三十九. 입법계품入法界品 10입법계(入法界)란 법계(法界)에 들어간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법계란 무엇인가. 세계와 우주 전체를 불교에서 일컫는 말이다. 법계란 법(法)의 세계, 진리의 세계, 진여법성의 세계인데 우주 전체를 그와 같은 법계라고 하는 뜻은 무엇인가. 입법계품은 근본법회(根本法會)와 지말법회(枝末法會)라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근본법회는 법계에 들어간 상태에서의 결과적인 내용을 밝혔고, 지말법회는 법계에 들어가는 과정으로서의 원인을 밝혔다. 법계에 들어간 결과로서의 내용은 법계에 순식간에 들어가고, 법계에 들어가는 과정으로서의 원인은 점차적으로 들어간다. 또 근본법회가 전체적인 내용이라면, 지말법회는 개별적인 내용이다. 지말법회가 이어진다. 선재동자가 53명의 선지식을 찾아서 남쪽으로 구법(求法)의 긴 여행을 떠나는데, 제69권에서 선재동자는 십지위 선지식으로 보덕정광주야신과 희목관찰중생주야신을 친견하여 법을 묻는다.
제목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68 三十九. 입법계품入法界品 9
저자 여천 무비
분야 불교 경전
출판사 담앤북스
발행일 20170908
정가 14,000원
최초, 최고, 최대라는 세 가지 수식어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경전 『화엄경』『대방광불화엄경』(약칭 『화엄경』)은 불교의 수많은 경전(經典) 가운데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의 내용을 어떤 방편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보였기 때문에 그만큼 가장 어려운 경전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화엄경』은 불교 ‘최고’의 경전이기도 하지만 또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화엄경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4세기경부터 산스크리트에서 한역(漢譯)된 이래 『화엄경』은 동아시아 사상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6세기경에는 중국에 『화엄경』을 중심으로 한 종문(화엄종-현수종)이 성립해 중국불교사 전반을 주도하며 관통했고 이후 중국에 뿌리내린 선불교나 심지어 신유학에까지 『화엄경』의 영향이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한국 사상계에 화엄경이 미친 영향 역시 지대하다. 원효와 의상은 한국에 화엄철학의 기초를 다지고 화엄종의 문을 연 한국 사상계의 대표적인 두 거목이다. 이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승과(僧科)에서도 『화엄경』은 빠져 본 적이 없다.  특히 ‘종교’로서의 불교가 큰 위기에 처했던 조선 시대에도 매한가지였다. 승려는 물론 유학자들도 『화엄경』 읽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 선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화엄경』을 읽고 있는데 (『화엄경』의) 교차되어 나타나는 묘리가 (그렇게 된) 연유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초의 선사에게 『화엄경』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의중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교 안팎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라고 얘기하는 『화엄경』은 특히 근대 이후에는 그 유명세에 비해 더욱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이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너무 방대하고 너무 난해하였기 때문이다. 첫째, 화엄경은 너무 방대하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화엄경은 모두 4종이다. 각각 40권본, 60권본, 80권본이 있고 티베트어로 된 화엄경이 있다.(산스크리트로 된 것은 「십지품」과 「입법계품」 등 일부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되었다.) 이 중 40권본은 『화엄경』에서 「입법계품」만 따로 떼어 놓은 것이니 차치하고 60권본, 80권본, 그리고 티베트본이 있는데 그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누구나 선뜻 그 시작의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둘째는 난해함, 즉 단단한 언어와 이해의 벽이다. 산스크리트에서 한역된 『화엄경』은 근대 이후 모두 네 차례 한글화됐다. 용성, 운허, 탄허, 무비 스님이 역경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한글로 되어 있다고 누구나 『화엄경』을 볼 수는 없었다. 난해한 번역도 문제였지만 쉬운 한글이라도 한자 하나하나에 담겼던 뜻을 더 깊이 풀어내 주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한역 『화엄경』만큼 한글 『화엄경』 역시 접근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불교계 안팎에서는 스님이나 재가불자는 물론이고 동양사상 전반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화엄경』 ‘강설본’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오직 한 사람, 무비 스님만이 할 수 있었던 작업『화엄경』 강설본 출판의 요구는 오래되었지만 『화엄경』을 강설할 만한 실력 그리고 이걸 책으로 엮기 위해 원고를 쓸 막대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한 사람’이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화엄경』 강설은 중국불교에서도 당나라 시대 이후 청량 징관, 이통현 장자 등에 의해 오직 3~4차례만 시도되었던 대역사이고 근대 이후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을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만약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이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무비 스님이었다. 탄허 스님의 강맥을 이은 무비 스님은 우리나라에서는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현존하는 대강백이면서 경전을 이해하기 쉽게 풀 수 있는 대중성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진척이 늦었던 『화엄경』 강설은 몇 년 전부터 스님과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화엄경』 법회가 몇 년째 계속되면서 서서히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대방광불화엄경 강설』은 2014년 4월 「세주묘엄품」 5권 발간을 시작으로 2017년 9월 현재 68권까지 발행되었다. 제68권에는 입법계품 9가 실려 있다.三十九. 입법계품入法界品 9입법계(入法界)란 법계(法界)에 들어간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법계란 무엇인가. 세계와 우주 전체를 불교에서 일컫는 말이다. 법계란 법(法)의 세계, 진리의 세계, 진여법성의 세계인데 우주 전체를 그와 같은 법계라고 하는 뜻은 무엇인가. 입법계품은 근본법회(根本法會)와 지말법회(枝末法會)라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근본법회는 법계에 들어간 상태에서의 결과적인 내용을 밝혔고, 지말법회는 법계에 들어가는 과정으로서의 원인을 밝혔다. 법계에 들어간 결과로서의 내용은 법계에 순식간에 들어가고, 법계에 들어가는 과정으로서의 원인은 점차적으로 들어간다. 또 근본법회가 전체적인 내용이라면, 지말법회는 개별적인 내용이다. 지말법회가 이어진다. 선재동자가 53명의 선지식을 찾아서 남쪽으로 구법(求法)의 긴 여행을 떠나는데, 제68권에서 선재동자는 십회향 선지식으로 바수밀다녀와 비슬지라거사, 관자재보살, 정취보살, 대천신, 안주신을 뵙고 십지위 선지식으로 바산바연저주야신을 친견하여 법을 묻는다.
제목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67 三十九. 입법계품入法界品 8
저자 여천 무비
분야 불교 경전
출판사 담앤북스
발행일 20170824
정가 14,000원
최초, 최고, 최대라는 세 가지 수식어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경전 『화엄경』『대방광불화엄경』(약칭 『화엄경』)은 불교의 수많은 경전(經典) 가운데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의 내용을 어떤 방편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보였기 때문에 그만큼 가장 어려운 경전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화엄경』은 불교 ‘최고’의 경전이기도 하지만 또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화엄경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4세기경부터 산스크리트에서 한역(漢譯)된 이래 『화엄경』은 동아시아 사상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6세기경에는 중국에 『화엄경』을 중심으로 한 종문(화엄종-현수종)이 성립해 중국불교사 전반을 주도하며 관통했고 이후 중국에 뿌리내린 선불교나 심지어 신유학에까지 『화엄경』의 영향이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한국 사상계에 화엄경이 미친 영향 역시 지대하다. 원효와 의상은 한국에 화엄철학의 기초를 다지고 화엄종의 문을 연 한국 사상계의 대표적인 두 거목이다. 이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승과(僧科)에서도 『화엄경』은 빠져 본 적이 없다.  특히 ‘종교’로서의 불교가 큰 위기에 처했던 조선 시대에도 매한가지였다. 승려는 물론 유학자들도 『화엄경』 읽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 선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화엄경』을 읽고 있는데 (『화엄경』의) 교차되어 나타나는 묘리가 (그렇게 된) 연유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초의 선사에게 『화엄경』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의중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교 안팎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라고 얘기하는 『화엄경』은 특히 근대 이후에는 그 유명세에 비해 더욱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이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너무 방대하고 너무 난해하였기 때문이다. 첫째, 화엄경은 너무 방대하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화엄경은 모두 4종이다. 각각 40권본, 60권본, 80권본이 있고 티베트어로 된 화엄경이 있다.(산스크리트로 된 것은 「십지품」과 「입법계품」 등 일부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되었다.) 이 중 40권본은 『화엄경』에서 「입법계품」만 따로 떼어 놓은 것이니 차치하고 60권본, 80권본, 그리고 티베트본이 있는데 그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누구나 선뜻 그 시작의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둘째는 난해함, 즉 단단한 언어와 이해의 벽이다. 산스크리트에서 한역된 『화엄경』은 근대 이후 모두 네 차례 한글화됐다. 용성, 운허, 탄허, 무비 스님이 역경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한글로 되어 있다고 누구나 『화엄경』을 볼 수는 없었다. 난해한 번역도 문제였지만 쉬운 한글이라도 한자 하나하나에 담겼던 뜻을 더 깊이 풀어내 주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한역 『화엄경』만큼 한글 『화엄경』 역시 접근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불교계 안팎에서는 스님이나 재가불자는 물론이고 동양사상 전반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화엄경』 ‘강설본’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오직 한 사람, 무비 스님만이 할 수 있었던 작업『화엄경』 강설본 출판의 요구는 오래되었지만 『화엄경』을 강설할 만한 실력 그리고 이걸 책으로 엮기 위해 원고를 쓸 막대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한 사람’이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화엄경』 강설은 중국불교에서도 당나라 시대 이후 청량 징관, 이통현 장자 등에 의해 오직 3~4차례만 시도되었던 대역사이고 근대 이후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을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만약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이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무비 스님이었다. 탄허 스님의 강맥을 이은 무비 스님은 우리나라에서는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현존하는 대강백이면서 경전을 이해하기 쉽게 풀 수 있는 대중성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진척이 늦었던 『화엄경』 강설은 몇 년 전부터 스님과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화엄경』 법회가 몇 년째 계속되면서 서서히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대방광불화엄경 강설』은 2014년 4월 「세주묘엄품」 5권 발간을 시작으로 2017년 8월 현재 67권까지 발행되었다. 제67권에는 입법계품 8이 실려 있다.三十九. 입법계품入法界品 8입법계(入法界)란 법계(法界)에 들어간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법계란 무엇인가. 세계와 우주 전체를 불교에서 일컫는 말이다. 법계란 법(法)의 세계, 진리의 세계, 진여법성의 세계인데 우주 전체를 그와 같은 법계라고 하는 뜻은 무엇인가. 입법계품은 근본법회(根本法會)와 지말법회(枝末法會)라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근본법회는 법계에 들어간 상태에서의 결과적인 내용을 밝혔고, 지말법회는 법계에 들어가는 과정으로서의 원인을 밝혔다. 법계에 들어간 결과로서의 내용은 법계에 순식간에 들어가고, 법계에 들어가는 과정으로서의 원인은 점차적으로 들어간다. 또 근본법회가 전체적인 내용이라면, 지말법회는 개별적인 내용이다. 지말법회가 이어진다. 선재동자가 53명의 선지식을 찾아서 남쪽으로 구법(求法)의 긴 여행을 떠나는데, 제67권에서 선재동자는 십행위 선지식으로 변행외도와 십회향 선지식으로 육향장자, 바시라선사, 무상승장자, 사자빈신비구니를 친견하여 법을 묻는다.
제목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66 三十九. 입법계품入法界品 7
저자 여천 무비
분야 불교 경전
출판사 담앤북스
발행일 20170810
정가 14,000원
최초, 최고, 최대라는 세 가지 수식어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경전 『화엄경』『대방광불화엄경』(약칭 『화엄경』)은 불교의 수많은 경전(經典) 가운데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의 내용을 어떤 방편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보였기 때문에 그만큼 가장 어려운 경전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화엄경』은 불교 ‘최고’의 경전이기도 하지만 또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화엄경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4세기경부터 산스크리트에서 한역(漢譯)된 이래 『화엄경』은 동아시아 사상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6세기경에는 중국에 『화엄경』을 중심으로 한 종문(화엄종-현수종)이 성립해 중국불교사 전반을 주도하며 관통했고 이후 중국에 뿌리내린 선불교나 심지어 신유학에까지 『화엄경』의 영향이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한국 사상계에 화엄경이 미친 영향 역시 지대하다. 원효와 의상은 한국에 화엄철학의 기초를 다지고 화엄종의 문을 연 한국 사상계의 대표적인 두 거목이다. 이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승과(僧科)에서도 『화엄경』은 빠져 본 적이 없다.  특히 ‘종교’로서의 불교가 큰 위기에 처했던 조선 시대에도 매한가지였다. 승려는 물론 유학자들도 『화엄경』 읽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 선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화엄경』을 읽고 있는데 (『화엄경』의) 교차되어 나타나는 묘리가 (그렇게 된) 연유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초의 선사에게 『화엄경』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의중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교 안팎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라고 얘기하는 『화엄경』은 특히 근대 이후에는 그 유명세에 비해 더욱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이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너무 방대하고 너무 난해하였기 때문이다. 첫째, 화엄경은 너무 방대하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화엄경은 모두 4종이다. 각각 40권본, 60권본, 80권본이 있고 티베트어로 된 화엄경이 있다.(산스크리트로 된 것은 「십지품」과 「입법계품」 등 일부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되었다.) 이 중 40권본은 『화엄경』에서 「입법계품」만 따로 떼어 놓은 것이니 차치하고 60권본, 80권본, 그리고 티베트본이 있는데 그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누구나 선뜻 그 시작의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둘째는 난해함, 즉 단단한 언어와 이해의 벽이다. 산스크리트에서 한역된 『화엄경』은 근대 이후 모두 네 차례 한글화됐다. 용성, 운허, 탄허, 무비 스님이 역경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한글로 되어 있다고 누구나 『화엄경』을 볼 수는 없었다. 난해한 번역도 문제였지만 쉬운 한글이라도 한자 하나하나에 담겼던 뜻을 더 깊이 풀어내 주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한역 『화엄경』만큼 한글 『화엄경』 역시 접근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불교계 안팎에서는 스님이나 재가불자는 물론이고 동양사상 전반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화엄경』 ‘강설본’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오직 한 사람, 무비 스님만이 할 수 있었던 작업『화엄경』 강설본 출판의 요구는 오래되었지만 『화엄경』을 강설할 만한 실력 그리고 이걸 책으로 엮기 위해 원고를 쓸 막대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한 사람’이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화엄경』 강설은 중국불교에서도 당나라 시대 이후 청량 징관, 이통현 장자 등에 의해 오직 3~4차례만 시도되었던 대역사이고 근대 이후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을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만약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이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무비 스님이었다. 탄허 스님의 강맥을 이은 무비 스님은 우리나라에서는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현존하는 대강백이면서 경전을 이해하기 쉽게 풀 수 있는 대중성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진척이 늦었던 『화엄경』 강설은 몇 년 전부터 스님과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화엄경』 법회가 몇 년째 계속되면서 서서히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대방광불화엄경 강설』은 2014년 4월 「세주묘엄품」 5권 발간을 시작으로 2017년 8월 현재 66권까지 발행되었다. 제66권에는 입법계품 7이 실려 있다.三十九. 입법계품入法界品 7입법계(入法界)란 법계(法界)에 들어간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법계란 무엇인가. 세계와 우주 전체를 불교에서 일컫는 말이다. 법계란 법(法)의 세계, 진리의 세계, 진여법성의 세계인데 우주 전체를 그와 같은 법계라고 하는 뜻은 무엇인가. 입법계품은 근본법회(根本法會)와 지말법회(枝末法會)라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근본법회는 법계에 들어간 상태에서의 결과적인 내용을 밝혔고, 지말법회는 법계에 들어가는 과정으로서의 원인을 밝혔다. 법계에 들어간 결과로서의 내용은 법계에 순식간에 들어가고, 법계에 들어가는 과정으로서의 원인은 점차적으로 들어간다. 또 근본법회가 전체적인 내용이라면, 지말법회는 개별적인 내용이다. 지말법회가 이어진다. 선재동자가 53명의 선지식을 찾아서 남쪽으로 구법(求法)의 긴 여행을 떠나는데, 제66권에서 선재동자는 십행위 선지식으로 법보계장자, 보안장자, 무염족왕, 대광왕, 부동우바이를 친견하여 법을 묻는다.
제목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65 三十九. 입법계품入法界品 6
저자 여천 무비
분야 불교 경전
출판사 담앤북스
발행일 20170717
정가 14,000원
최초, 최고, 최대라는 세 가지 수식어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경전 『화엄경』『대방광불화엄경』(약칭 『화엄경』)은 불교의 수많은 경전(經典) 가운데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의 내용을 어떤 방편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보였기 때문에 그만큼 가장 어려운 경전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화엄경』은 불교 ‘최고’의 경전이기도 하지만 또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화엄경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4세기경부터 산스크리트에서 한역(漢譯)된 이래 『화엄경』은 동아시아 사상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6세기경에는 중국에 『화엄경』을 중심으로 한 종문(화엄종-현수종)이 성립해 중국불교사 전반을 주도하며 관통했고 이후 중국에 뿌리내린 선불교나 심지어 신유학에까지 『화엄경』의 영향이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한국 사상계에 화엄경이 미친 영향 역시 지대하다. 원효와 의상은 한국에 화엄철학의 기초를 다지고 화엄종의 문을 연 한국 사상계의 대표적인 두 거목이다. 이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승과(僧科)에서도 『화엄경』은 빠져 본 적이 없다.  특히 ‘종교’로서의 불교가 큰 위기에 처했던 조선 시대에도 매한가지였다. 승려는 물론 유학자들도 『화엄경』 읽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 선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화엄경』을 읽고 있는데 (『화엄경』의) 교차되어 나타나는 묘리가 (그렇게 된) 연유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초의 선사에게 『화엄경』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의중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교 안팎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라고 얘기하는 『화엄경』은 특히 근대 이후에는 그 유명세에 비해 더욱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이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너무 방대하고 너무 난해하였기 때문이다. 첫째, 화엄경은 너무 방대하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화엄경은 모두 4종이다. 각각 40권본, 60권본, 80권본이 있고 티베트어로 된 화엄경이 있다.(산스크리트로 된 것은 「십지품」과 「입법계품」 등 일부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되었다.) 이 중 40권본은 『화엄경』에서 「입법계품」만 따로 떼어 놓은 것이니 차치하고 60권본, 80권본, 그리고 티베트본이 있는데 그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누구나 선뜻 그 시작의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둘째는 난해함, 즉 단단한 언어와 이해의 벽이다. 산스크리트에서 한역된 『화엄경』은 근대 이후 모두 네 차례 한글화됐다. 용성, 운허, 탄허, 무비 스님이 역경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한글로 되어 있다고 누구나 『화엄경』을 볼 수는 없었다. 난해한 번역도 문제였지만 쉬운 한글이라도 한자 하나하나에 담겼던 뜻을 더 깊이 풀어내 주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한역 『화엄경』만큼 한글 『화엄경』 역시 접근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불교계 안팎에서는 스님이나 재가불자는 물론이고 동양사상 전반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화엄경』 ‘강설본’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오직 한 사람, 무비 스님만이 할 수 있었던 작업『화엄경』 강설본 출판의 요구는 오래되었지만 『화엄경』을 강설할 만한 실력 그리고 이걸 책으로 엮기 위해 원고를 쓸 막대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한 사람’이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화엄경』 강설은 중국불교에서도 당나라 시대 이후 청량 징관, 이통현 장자 등에 의해 오직 3~4차례만 시도되었던 대역사이고 근대 이후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을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만약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이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무비 스님이었다. 탄허 스님의 강맥을 이은 무비 스님은 우리나라에서는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현존하는 대강백이면서 경전을 이해하기 쉽게 풀 수 있는 대중성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진척이 늦었던 『화엄경』 강설은 몇 년 전부터 스님과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화엄경』 법회가 몇 년째 계속되면서 서서히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대방광불화엄경 강설』은 2014년 4월 「세주묘엄품」 5권 발간을 시작으로 2017년 7월 현재 65권까지 발행되었다. 제65권에는 입법계품 6이 실려 있다.三十九. 입법계품入法界品 6입법계(入法界)란 법계(法界)에 들어간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법계란 무엇인가. 세계와 우주 전체를 불교에서 일컫는 말이다. 법계란 법(法)의 세계, 진리의 세계, 진여법성의 세계인데 우주 전체를 그와 같은 법계라고 하는 뜻은 무엇인가. 입법계품은 근본법회(根本法會)와 지말법회(枝末法會)라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근본법회는 법계에 들어간 상태에서의 결과적인 내용을 밝혔고, 지말법회는 법계에 들어가는 과정으로서의 원인을 밝혔다. 법계에 들어간 결과로서의 내용은 법계에 순식간에 들어가고, 법계에 들어가는 과정으로서의 원인은 점차적으로 들어간다. 또 근본법회가 전체적인 내용이라면, 지말법회는 개별적인 내용이다. 지말법회가 이어진다. 선재동자가 53명의 선지식을 찾아서 남쪽으로 구법(求法)의 긴 여행을 떠나는데, 제65권에서 선재동자는 십주위 선지식으로 자행동녀와 십행위 선지식으로 선견비구, 자재주동자, 구족우바이, 명지거사를 친견하여 법을 묻는다.
제목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64 三十九. 입법계품入法界品 5
저자 여천 무비
분야 불교 경전
출판사 담앤북스
발행일 20170713
정가 14,000원
최초, 최고, 최대라는 세 가지 수식어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경전 『화엄경』『대방광불화엄경』(약칭 『화엄경』)은 불교의 수많은 경전(經典) 가운데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의 내용을 어떤 방편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보였기 때문에 그만큼 가장 어려운 경전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화엄경』은 불교 ‘최고’의 경전이기도 하지만 또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화엄경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4세기경부터 산스크리트에서 한역(漢譯)된 이래 『화엄경』은 동아시아 사상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6세기경에는 중국에 『화엄경』을 중심으로 한 종문(화엄종-현수종)이 성립해 중국불교사 전반을 주도하며 관통했고 이후 중국에 뿌리내린 선불교나 심지어 신유학에까지 『화엄경』의 영향이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한국 사상계에 화엄경이 미친 영향 역시 지대하다. 원효와 의상은 한국에 화엄철학의 기초를 다지고 화엄종의 문을 연 한국 사상계의 대표적인 두 거목이다. 이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승과(僧科)에서도 『화엄경』은 빠져 본 적이 없다.  특히 ‘종교’로서의 불교가 큰 위기에 처했던 조선 시대에도 매한가지였다. 승려는 물론 유학자들도 『화엄경』 읽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 선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화엄경』을 읽고 있는데 (『화엄경』의) 교차되어 나타나는 묘리가 (그렇게 된) 연유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초의 선사에게 『화엄경』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의중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교 안팎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라고 얘기하는 『화엄경』은 특히 근대 이후에는 그 유명세에 비해 더욱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이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너무 방대하고 너무 난해하였기 때문이다. 첫째, 화엄경은 너무 방대하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화엄경은 모두 4종이다. 각각 40권본, 60권본, 80권본이 있고 티베트어로 된 화엄경이 있다.(산스크리트로 된 것은 「십지품」과 「입법계품」 등 일부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되었다.) 이 중 40권본은 『화엄경』에서 「입법계품」만 따로 떼어 놓은 것이니 차치하고 60권본, 80권본, 그리고 티베트본이 있는데 그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누구나 선뜻 그 시작의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둘째는 난해함, 즉 단단한 언어와 이해의 벽이다. 산스크리트에서 한역된 『화엄경』은 근대 이후 모두 네 차례 한글화됐다. 용성, 운허, 탄허, 무비 스님이 역경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한글로 되어 있다고 누구나 『화엄경』을 볼 수는 없었다. 난해한 번역도 문제였지만 쉬운 한글이라도 한자 하나하나에 담겼던 뜻을 더 깊이 풀어내 주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한역 『화엄경』만큼 한글 『화엄경』 역시 접근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불교계 안팎에서는 스님이나 재가불자는 물론이고 동양사상 전반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화엄경』 ‘강설본’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오직 한 사람, 무비 스님만이 할 수 있었던 작업『화엄경』 강설본 출판의 요구는 오래되었지만 『화엄경』을 강설할 만한 실력 그리고 이걸 책으로 엮기 위해 원고를 쓸 막대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한 사람’이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화엄경』 강설은 중국불교에서도 당나라 시대 이후 청량 징관, 이통현 장자 등에 의해 오직 3~4차례만 시도되었던 대역사이고 근대 이후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을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만약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이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무비 스님이었다. 탄허 스님의 강맥을 이은 무비 스님은 우리나라에서는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현존하는 대강백이면서 경전을 이해하기 쉽게 풀 수 있는 대중성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진척이 늦었던 『화엄경』 강설은 몇 년 전부터 스님과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화엄경』 법회가 몇 년째 계속되면서 서서히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대방광불화엄경 강설』은 2014년 4월 「세주묘엄품」 5권 발간을 시작으로 2017년 7월 현재 64권까지 발행되었다. 제64권에는 입법계품 5가 실려 있다.三十九. 입법계품入法界品 5입법계(入法界)란 법계(法界)에 들어간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법계란 무엇인가. 세계와 우주 전체를 불교에서 일컫는 말이다. 법계란 법(法)의 세계, 진리의 세계, 진여법성의 세계인데 우주 전체를 그와 같은 법계라고 하는 뜻은 무엇인가. 입법계품은 근본법회(根本法會)와 지말법회(枝末法會)라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근본법회는 법계에 들어간 상태에서의 결과적인 내용을 밝혔고, 지말법회는 법계에 들어가는 과정으로서의 원인을 밝혔다. 법계에 들어간 결과로서의 내용은 법계에 순식간에 들어가고, 법계에 들어가는 과정으로서의 원인은 점차적으로 들어간다. 또 근본법회가 전체적인 내용이라면, 지말법회는 개별적인 내용이다. 지말법회가 이어진다. 선재동자가 53명의 선지식을 찾아서 남쪽으로 구법(求法)의 긴 여행을 떠나는데, 제64권에서 선재동자는 십주위 선지식으로 휴사우바이와 비목구사선인, 승열바라문을 친견하여 법을 묻는다.
제목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63 三十九. 입법계품入法界品 4
저자 여천 무비
분야 불교 경전
출판사 담앤북스
발행일 20170629
정가 14,000원
 최초, 최고, 최대라는 세 가지 수식어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경전 『화엄경』『대방광불화엄경』(약칭 『화엄경』)은 불교의 수많은 경전(經典) 가운데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의 내용을 어떤 방편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보였기 때문에 그만큼 가장 어려운 경전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화엄경』은 불교 ‘최고’의 경전이기도 하지만 또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화엄경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4세기경부터 산스크리트에서 한역(漢譯)된 이래 『화엄경』은 동아시아 사상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6세기경에는 중국에 『화엄경』을 중심으로 한 종문(화엄종-현수종)이 성립해 중국불교사 전반을 주도하며 관통했고 이후 중국에 뿌리내린 선불교나 심지어 신유학에까지 『화엄경』의 영향이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한국 사상계에 화엄경이 미친 영향 역시 지대하다. 원효와 의상은 한국에 화엄철학의 기초를 다지고 화엄종의 문을 연 한국 사상계의 대표적인 두 거목이다. 이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승과(僧科)에서도 『화엄경』은 빠져 본 적이 없다.  특히 ‘종교’로서의 불교가 큰 위기에 처했던 조선 시대에도 매한가지였다. 승려는 물론 유학자들도 『화엄경』 읽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 선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화엄경』을 읽고 있는데 (『화엄경』의) 교차되어 나타나는 묘리가 (그렇게 된) 연유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초의 선사에게 『화엄경』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의중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교 안팎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라고 얘기하는 『화엄경』은 특히 근대 이후에는 그 유명세에 비해 더욱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이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너무 방대하고 너무 난해하였기 때문이다. 첫째, 화엄경은 너무 방대하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화엄경은 모두 4종이다. 각각 40권본, 60권본, 80권본이 있고 티베트어로 된 화엄경이 있다.(산스크리트로 된 것은 「십지품」과 「입법계품」 등 일부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되었다.) 이 중 40권본은 『화엄경』에서 「입법계품」만 따로 떼어 놓은 것이니 차치하고 60권본, 80권본, 그리고 티베트본이 있는데 그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누구나 선뜻 그 시작의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둘째는 난해함, 즉 단단한 언어와 이해의 벽이다. 산스크리트에서 한역된 『화엄경』은 근대 이후 모두 네 차례 한글화됐다. 용성, 운허, 탄허, 무비 스님이 역경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한글로 되어 있다고 누구나 『화엄경』을 볼 수는 없었다. 난해한 번역도 문제였지만 쉬운 한글이라도 한자 하나하나에 담겼던 뜻을 더 깊이 풀어내 주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한역 『화엄경』만큼 한글 『화엄경』 역시 접근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불교계 안팎에서는 스님이나 재가불자는 물론이고 동양사상 전반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화엄경』 ‘강설본’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오직 한 사람, 무비 스님만이 할 수 있었던 작업『화엄경』 강설본 출판의 요구는 오래되었지만 『화엄경』을 강설할 만한 실력 그리고 이걸 책으로 엮기 위해 원고를 쓸 막대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한 사람’이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화엄경』 강설은 중국불교에서도 당나라 시대 이후 청량 징관, 이통현 장자 등에 의해 오직 3~4차례만 시도되었던 대역사이고 근대 이후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을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만약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이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무비 스님이었다. 탄허 스님의 강맥을 이은 무비 스님은 우리나라에서는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현존하는 대강백이면서 경전을 이해하기 쉽게 풀 수 있는 대중성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진척이 늦었던 『화엄경』 강설은 몇 년 전부터 스님과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화엄경』 법회가 몇 년째 계속되면서 서서히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대방광불화엄경 강설』은 2014년 4월 「세주묘엄품」 5권 발간을 시작으로 2017년 6월 현재 63권까지 발행되었다. 제63권에는 입법계품 4가 실려 있다.三十九. 입법계품入法界品 4입법계(入法界)란 법계(法界)에 들어간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법계란 무엇인가. 세계와 우주 전체를 불교에서 일컫는 말이다. 법계란 법(法)의 세계, 진리의 세계, 진여법성의 세계인데 우주 전체를 그와 같은 법계라고 하는 뜻은 무엇인가. 입법계품은 근본법회(根本法會)와 지말법회(枝末法會)라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근본법회는 법계에 들어간 상태에서의 결과적인 내용을 밝혔고, 지말법회는 법계에 들어가는 과정으로서의 원인을 밝혔다. 법계에 들어간 결과로서의 내용은 법계에 순식간에 들어가고, 법계에 들어가는 과정으로서의 원인은 점차적으로 들어간다. 또 근본법회가 전체적인 내용이라면, 지말법회는 개별적인 내용이다. 지말법회가 시작되었다. 선재동자가 53명의 선지식을 찾아서 남쪽으로 구법(求法)의 긴 여행을 떠나는데, 제63권에서 선재동자는 십주위 선지식으로 미가장자와 해탈장자, 해당비구를 친견하여 법을 묻는다.
제목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62 三十九. 입법계품入法界品 3
저자 여천 무비
분야 불교 경전
출판사 담앤북스
발행일 20170615
정가 14,000원
최초, 최고, 최대라는 세 가지 수식어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경전 『화엄경』『대방광불화엄경』(약칭 『화엄경』)은 불교의 수많은 경전(經典) 가운데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의 내용을 어떤 방편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보였기 때문에 그만큼 가장 어려운 경전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화엄경』은 불교 ‘최고’의 경전이기도 하지만 또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화엄경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4세기경부터 산스크리트에서 한역(漢譯)된 이래 『화엄경』은 동아시아 사상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6세기경에는 중국에 『화엄경』을 중심으로 한 종문(화엄종-현수종)이 성립해 중국불교사 전반을 주도하며 관통했고 이후 중국에 뿌리내린 선불교나 심지어 신유학에까지 『화엄경』의 영향이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한국 사상계에 화엄경이 미친 영향 역시 지대하다. 원효와 의상은 한국에 화엄철학의 기초를 다지고 화엄종의 문을 연 한국 사상계의 대표적인 두 거목이다. 이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승과(僧科)에서도 『화엄경』은 빠져 본 적이 없다.  특히 ‘종교’로서의 불교가 큰 위기에 처했던 조선 시대에도 매한가지였다. 승려는 물론 유학자들도 『화엄경』 읽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 선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화엄경』을 읽고 있는데 (『화엄경』의) 교차되어 나타나는 묘리가 (그렇게 된) 연유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초의 선사에게 『화엄경』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의중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교 안팎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라고 얘기하는 『화엄경』은 특히 근대 이후에는 그 유명세에 비해 더욱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이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너무 방대하고 너무 난해하였기 때문이다. 첫째, 화엄경은 너무 방대하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화엄경은 모두 4종이다. 각각 40권본, 60권본, 80권본이 있고 티베트어로 된 화엄경이 있다.(산스크리트로 된 것은 「십지품」과 「입법계품」 등 일부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되었다.) 이 중 40권본은 『화엄경』에서 「입법계품」만 따로 떼어 놓은 것이니 차치하고 60권본, 80권본, 그리고 티베트본이 있는데 그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누구나 선뜻 그 시작의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둘째는 난해함, 즉 단단한 언어와 이해의 벽이다. 산스크리트에서 한역된 『화엄경』은 근대 이후 모두 네 차례 한글화됐다. 용성, 운허, 탄허, 무비 스님이 역경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한글로 되어 있다고 누구나 『화엄경』을 볼 수는 없었다. 난해한 번역도 문제였지만 쉬운 한글이라도 한자 하나하나에 담겼던 뜻을 더 깊이 풀어내 주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한역 『화엄경』만큼 한글 『화엄경』 역시 접근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불교계 안팎에서는 스님이나 재가불자는 물론이고 동양사상 전반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화엄경』 ‘강설본’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오직 한 사람, 무비 스님만이 할 수 있었던 작업『화엄경』 강설본 출판의 요구는 오래되었지만 『화엄경』을 강설할 만한 실력 그리고 이걸 책으로 엮기 위해 원고를 쓸 막대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한 사람’이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화엄경』 강설은 중국불교에서도 당나라 시대 이후 청량 징관, 이통현 장자 등에 의해 오직 3~4차례만 시도되었던 대역사이고 근대 이후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을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만약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이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무비 스님이었다. 탄허 스님의 강맥을 이은 무비 스님은 우리나라에서는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현존하는 대강백이면서 경전을 이해하기 쉽게 풀 수 있는 대중성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진척이 늦었던 『화엄경』 강설은 몇 년 전부터 스님과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화엄경』 법회가 몇 년째 계속되면서 서서히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2013년부터 80권 완간을 목표로 준비했던 『대방광불화엄경 강설』은 2014년 4월 「세주묘엄품」 5권 발간을 시작으로 2017년 6월 현재 62권까지 발행되었다. 『대방광불화엄경 강설』제62권에는 입법계품 3이 실려 있다.三十九. 입법계품入法界品 3입법계(入法界)란 법계(法界)에 들어간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법계란 무엇인가. 세계와 우주 전체를 불교에서 일컫는 말이다. 법계란 법(法)의 세계, 진리의 세계, 진여법성의 세계인데 우주 전체를 그와 같은 법계라고 하는 뜻은 무엇인가. 입법계품은 근본법회(根本法會)와 지말법회(枝末法會)라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근본법회는 법계에 들어간 상태에서의 결과적인 내용을 밝혔고, 지말법회는 법계에 들어가는 과정으로서의 원인을 밝혔다. 법계에 들어간 결과로서의 내용은 법계에 순식간에 들어가고, 법계에 들어가는 과정으로서의 원인은 점차적으로 들어간다. 또 근본법회가 전체적인 내용이라면, 지말법회는 개별적인 내용이다. 드디어 지말법회가 시작되었다. 선재동자가 53명의 선지식을 찾아서 남쪽으로 구법(求法)의 긴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제62권에서 선재동자는 십신위(十信位)를 상징하는 선지식으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십주위 선지식으로 덕운비구와 해운비구, 선주비구를 친견하여 법을 묻는다.
제목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61 三十九. 입법계품入法界品 2
저자 여천 무비
분야 불교 경전
출판사 담앤북스
발행일 20170602
정가 14,000원
최초, 최고, 최대라는 세 가지 수식어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경전 『화엄경』『대방광불화엄경』(약칭 『화엄경』)은 불교의 수많은 경전(經典) 가운데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의 내용을 어떤 방편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보였기 때문에 그만큼 가장 어려운 경전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화엄경』은 불교 ‘최고’의 경전이기도 하지만 또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화엄경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4세기경부터 산스크리트에서 한역(漢譯)된 이래 『화엄경』은 동아시아 사상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6세기경에는 중국에 『화엄경』을 중심으로 한 종문(화엄종-현수종)이 성립해 중국불교사 전반을 주도하며 관통했고 이후 중국에 뿌리내린 선불교나 심지어 신유학에까지 『화엄경』의 영향이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한국 사상계에 화엄경이 미친 영향 역시 지대하다. 원효와 의상은 한국에 화엄철학의 기초를 다지고 화엄종의 문을 연 한국 사상계의 대표적인 두 거목이다. 이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승과(僧科)에서도 『화엄경』은 빠져 본 적이 없다.  특히 ‘종교’로서의 불교가 큰 위기에 처했던 조선 시대에도 매한가지였다. 승려는 물론 유학자들도 『화엄경』 읽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 선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화엄경』을 읽고 있는데 (『화엄경』의) 교차되어 나타나는 묘리가 (그렇게 된) 연유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초의 선사에게 『화엄경』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의중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교 안팎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라고 얘기하는 『화엄경』은 특히 근대 이후에는 그 유명세에 비해 더욱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이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너무 방대하고 너무 난해하였기 때문이다. 첫째, 화엄경은 너무 방대하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화엄경은 모두 4종이다. 각각 40권본, 60권본, 80권본이 있고 티베트어로 된 화엄경이 있다.(산스크리트로 된 것은 「십지품」과 「입법계품」 등 일부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되었다.) 이 중 40권본은 『화엄경』에서 「입법계품」만 따로 떼어 놓은 것이니 차치하고 60권본, 80권본, 그리고 티베트본이 있는데 그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누구나 선뜻 그 시작의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둘째는 난해함, 즉 단단한 언어와 이해의 벽이다. 산스크리트에서 한역된 『화엄경』은 근대 이후 모두 네 차례 한글화됐다. 용성, 운허, 탄허, 무비 스님이 역경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한글로 되어 있다고 누구나 『화엄경』을 볼 수는 없었다. 난해한 번역도 문제였지만 쉬운 한글이라도 한자 하나하나에 담겼던 뜻을 더 깊이 풀어내 주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한역 『화엄경』만큼 한글 『화엄경』 역시 접근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불교계 안팎에서는 스님이나 재가불자는 물론이고 동양사상 전반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화엄경』 ‘강설본’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오직 한 사람, 무비 스님만이 할 수 있었던 작업『화엄경』 강설본 출판의 요구는 오래되었지만 『화엄경』을 강설할 만한 실력 그리고 이걸 책으로 엮기 위해 원고를 쓸 막대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한 사람’이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화엄경』 강설은 중국불교에서도 당나라 시대 이후 청량 징관, 이통현 장자 등에 의해 오직 3~4차례만 시도되었던 대역사이고 근대 이후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을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만약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이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무비 스님이었다. 탄허 스님의 강맥을 이은 무비 스님은 우리나라에서는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현존하는 대강백이면서 경전을 이해하기 쉽게 풀 수 있는 대중성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진척이 늦었던 『화엄경』 강설은 몇 년 전부터 스님과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화엄경』 법회가 몇 년째 계속되면서 서서히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2013년부터 80권 완간을 목표로 준비했던 『대방광불화엄경 강설』은 2014년 4월 「세주묘엄품」 5권 발간을 시작으로 2017년 5월 현재 60권까지 발행되었다. 『대방광불화엄경 강설』제60권에는 입법계품 1이 실려 있다.三十九. 입법계품入法界品 2입법계(入法界)란 법계(法界)에 들어간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법계란 무엇인가. 세계와 우주 전체를 불교에서 일컫는 말이다. 법계란 법(法)의 세계, 진리의 세계, 진여법성의 세계인데 우주 전체를 그와 같은 법계라고 하는 뜻은 무엇인가. 입법계품은 근본법회(根本法會)와 지말법회(枝末法會)라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근본법회는 법계에 들어간 상태에서의 결과적인 내용을 밝혔고, 지말법회는 법계에 들어가는 과정으로서의 원인을 밝혔다. 법계에 들어간 결과로서의 내용은 법계에 순식간에 들어가고, 법계에 들어가는 과정으로서의 원인은 점차적으로 들어간다. 또 근본법회가 전체적인 내용이라면, 지말법회는 개별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실은 전체와 개별이 원융하고 근본과 지말이 걸림이 없다.입법계품 2에는 근본법회의 후반 부분이 나오면서 근본법회가 끝나고, 드디어 지말법회가 시작된다. 선재동자가 53명의 선지식을 찾아서 남쪽으로 구법(求法)의 긴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선재동자는 십신위(十信位)를 상징하는 선지식으로 문수보살을 친견하게 된다.
제목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60 三十九. 입법계품入法界品 1
저자 여천 무비
분야 불교 경전
출판사 담앤북스
발행일 20170518
정가 14,000원
최초, 최고, 최대라는 세 가지 수식어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경전 『화엄경』『대방광불화엄경』(약칭 『화엄경』)은 불교의 수많은 경전(經典) 가운데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의 내용을 어떤 방편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보였기 때문에 그만큼 가장 어려운 경전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화엄경』은 불교 ‘최고’의 경전이기도 하지만 또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화엄경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4세기경부터 산스크리트에서 한역(漢譯)된 이래 『화엄경』은 동아시아 사상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6세기경에는 중국에 『화엄경』을 중심으로 한 종문(화엄종-현수종)이 성립해 중국불교사 전반을 주도하며 관통했고 이후 중국에 뿌리내린 선불교나 심지어 신유학에까지 『화엄경』의 영향이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한국 사상계에 화엄경이 미친 영향 역시 지대하다. 원효와 의상은 한국에 화엄철학의 기초를 다지고 화엄종의 문을 연 한국 사상계의 대표적인 두 거목이다. 이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승과(僧科)에서도 『화엄경』은 빠져 본 적이 없다.  특히 ‘종교’로서의 불교가 큰 위기에 처했던 조선 시대에도 매한가지였다. 승려는 물론 유학자들도 『화엄경』 읽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 선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화엄경』을 읽고 있는데 (『화엄경』의) 교차되어 나타나는 묘리가 (그렇게 된) 연유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초의 선사에게 『화엄경』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의중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교 안팎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라고 얘기하는 『화엄경』은 특히 근대 이후에는 그 유명세에 비해 더욱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이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너무 방대하고 너무 난해하였기 때문이다. 첫째, 화엄경은 너무 방대하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화엄경은 모두 4종이다. 각각 40권본, 60권본, 80권본이 있고 티베트어로 된 화엄경이 있다.(산스크리트로 된 것은 「십지품」과 「입법계품」 등 일부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되었다.) 이 중 40권본은 『화엄경』에서 「입법계품」만 따로 떼어 놓은 것이니 차치하고 60권본, 80권본, 그리고 티베트본이 있는데 그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누구나 선뜻 그 시작의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둘째는 난해함, 즉 단단한 언어와 이해의 벽이다. 산스크리트에서 한역된 『화엄경』은 근대 이후 모두 네 차례 한글화됐다. 용성, 운허, 탄허, 무비 스님이 역경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한글로 되어 있다고 누구나 『화엄경』을 볼 수는 없었다. 난해한 번역도 문제였지만 쉬운 한글이라도 한자 하나하나에 담겼던 뜻을 더 깊이 풀어내 주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한역 『화엄경』만큼 한글 『화엄경』 역시 접근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불교계 안팎에서는 스님이나 재가불자는 물론이고 동양사상 전반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화엄경』 ‘강설본’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오직 한 사람, 무비 스님만이 할 수 있었던 작업『화엄경』 강설본 출판의 요구는 오래되었지만 『화엄경』을 강설할 만한 실력 그리고 이걸 책으로 엮기 위해 원고를 쓸 막대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한 사람’이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화엄경』 강설은 중국불교에서도 당나라 시대 이후 청량 징관, 이통현 장자 등에 의해 오직 3~4차례만 시도되었던 대역사이고 근대 이후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을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만약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이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무비 스님이었다. 탄허 스님의 강맥을 이은 무비 스님은 우리나라에서는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현존하는 대강백이면서 경전을 이해하기 쉽게 풀 수 있는 대중성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진척이 늦었던 『화엄경』 강설은 몇 년 전부터 스님과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화엄경』 법회가 몇 년째 계속되면서 서서히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대방광불화엄경 강설』제60권에는 입법계품 1이 실려 있다.三十九. 입법계품入法界品 1입법계(入法界)란 법계(法界)에 들어간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법계란 무엇인가. 세계와 우주 전체를 불교에서 일컫는 말이다. 법계란 법(法)의 세계, 진리의 세계, 진여법성의 세계인데 우주 전체를 그와 같은 법계라고 하는 뜻은 무엇인가. 우리들이 경험하고 있는 현실의 있는 그대로의 세계와 그것을 그렇게 존재하게 하는 바의 것, 즉 진리, 진여법성의 두 가지가 하나로 융합되어 구분할 수 없는 상태로 표현하는 말이 곧 법계이다. 즉 본체계(本體界)와 현상계(現象界)를 하나의 진리의 세계로 묶어서 일컫는 말이 법계이다. 그러므로 세계와 우주와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곧 법으로 존재하고 진리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계라고 한다. 그래서 천지만물과 삼라만상과 두두물물은 현재 그대로가 곧 진리며 법이다. 이와 같은 이치를 깨달아 들어가는 가르침이므로 입법계품이라 한다.입법계품은 근본법회(根本法會)와 지말법회(枝末法會)라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근본법회는 법계에 들어간 상태에서의 결과적인 내용을 밝혔고, 지말법회는 법계에 들어가는 과정으로서의 원인을 밝혔다. 법계에 들어간 결과로서의 내용은 법계에 순식간에 들어가고, 법계에 들어가는 과정으로서의 원인은 점차적으로 들어간다. 또 근본법회가 전체적인 내용이라면, 지말법회는 개별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실은 전체와 개별이 원융하고 근본과 지말이 걸림이 없다.입법계품 1에서는 부처님과 함께 계시는 많은 보살 대중과 성문 대중과 세간주인 대중의 덕과, 대중들이 부처님께 법을 청함과, 부처님께서 사자빈신삼매에 드시는 일과, 새로운 대중들이 시방에서 모이고, 시방의 보살들이 게송으로 부처님의 덕을 찬탄함을 밝히고 있다.
제목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59 三十八. 이세간품離世間品 7
저자 여천 무비
분야 불교 경전
출판사 담앤북스
발행일 20170510
정가 14,000원
최초, 최고, 최대라는 세 가지 수식어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경전 『화엄경』『대방광불화엄경』(약칭 『화엄경』)은 불교의 수많은 경전(經典) 가운데 부처님께서 최초로 설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의 내용을 어떤 방편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보였기 때문에 그만큼 가장 어려운 경전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화엄경』은 불교 ‘최고’의 경전이기도 하지만 또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화엄경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4세기경부터 산스크리트에서 한역(漢譯)된 이래 『화엄경』은 동아시아 사상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6세기경에는 중국에 『화엄경』을 중심으로 한 종문(화엄종-현수종)이 성립해 중국불교사 전반을 주도하며 관통했고 이후 중국에 뿌리내린 선불교나 심지어 신유학에까지 『화엄경』의 영향이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한국 사상계에 화엄경이 미친 영향 역시 지대하다. 원효와 의상은 한국에 화엄철학의 기초를 다지고 화엄종의 문을 연 한국 사상계의 대표적인 두 거목이다. 이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승과(僧科)에서도 『화엄경』은 빠져 본 적이 없다.  특히 ‘종교’로서의 불교가 큰 위기에 처했던 조선 시대에도 매한가지였다. 승려는 물론 유학자들도 『화엄경』 읽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는 초의 선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화엄경』을 읽고 있는데 (『화엄경』의) 교차되어 나타나는 묘리가 (그렇게 된) 연유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초의 선사에게 『화엄경』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의중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교 안팎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이라고 얘기하는 『화엄경』은 특히 근대 이후에는 그 유명세에 비해 더욱 접근하기 어려운 경전이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너무 방대하고 너무 난해하였기 때문이다. 첫째, 화엄경은 너무 방대하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화엄경은 모두 4종이다. 각각 40권본, 60권본, 80권본이 있고 티베트어로 된 화엄경이 있다.(산스크리트로 된 것은 「십지품」과 「입법계품」 등 일부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되었다.) 이 중 40권본은 『화엄경』에서 「입법계품」만 따로 떼어 놓은 것이니 차치하고 60권본, 80권본, 그리고 티베트본이 있는데 그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누구나 선뜻 그 시작의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둘째는 난해함, 즉 단단한 언어와 이해의 벽이다. 산스크리트에서 한역된 『화엄경』은 근대 이후 모두 네 차례 한글화됐다. 용성, 운허, 탄허, 무비 스님이 역경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한글로 되어 있다고 누구나 『화엄경』을 볼 수는 없었다. 난해한 번역도 문제였지만 쉬운 한글이라도 한자 하나하나에 담겼던 뜻을 더 깊이 풀어내 주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한역 『화엄경』만큼 한글 『화엄경』 역시 접근이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불교계 안팎에서는 스님이나 재가불자는 물론이고 동양사상 전반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화엄경』 ‘강설본’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오직 한 사람, 무비 스님만이 할 수 있었던 작업『화엄경』 강설본 출판의 요구는 오래되었지만 『화엄경』을 강설할 만한 실력 그리고 이걸 책으로 엮기 위해 원고를 쓸 막대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한 사람’이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화엄경』 강설은 중국불교에서도 당나라 시대 이후 청량 징관, 이통현 장자 등에 의해 오직 3~4차례만 시도되었던 대역사이고 근대 이후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을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만약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이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무비 스님이었다. 탄허 스님의 강맥을 이은 무비 스님은 우리나라에서는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현존하는 대강백이면서 경전을 이해하기 쉽게 풀 수 있는 대중성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진척이 늦었던 『화엄경』 강설은 몇 년 전부터 스님과 재가불자를 대상으로 『화엄경』 법회가 몇 년째 계속되면서 서서히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대방광불화엄경 강설』제59권에는 이세간품 7이 실려 있다.三十八. 이세간품離世間品 7이세간품(離世間品)은 화엄경 총 아홉 번의 법회 중에서 여덟 번째 법회다. 마갈제국 아란야 법 보리도량의 보광명전에서 한 품의 경전 7권을 설한 것이다. 그 내용은 십신과 십주와 십행과 십회향과 십지와 등각과 묘각의 법에 관해 보혜보살이 이백 가지 질문을 하고 그 하나하나의 질문에 보현보살이 각각 열 가지의 대답을 하는 것으로 불교의 수많은 용어를 화엄경의 안목으로 새롭게 설파하였다. 예컨대 그 첫 질문으로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의지(依支)입니까?”라고 하였는데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의지가 있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보리심으로 의지를 삼나니 항상 잊지 않는 연고며, 선지식으로 의지를 삼나니 화합하여 한결같은 연고며, 착한 뿌리로 의지를 삼나니 닦아 모아 증장하는 연고며, 바라밀다로 의지를 삼나니 구족하게 수행하는 연고며, 일체 법으로 의지를 삼나니 구경에 벗어나는 연고며, 큰 서원으로 의지를 삼나니 보리를 증장케 하는 연고며, 모든 행으로 의지를 삼나니 다 성취하는 연고며, 일체 보살로 의지를 삼나니 지혜가 같은 연고며, 모든 부처님께 공양함으로 의지를 삼나니 믿는 마음이 청정한 연고며, 일체 여래로 의지를 삼나니 자비하신 아버지의 가르침과 같이 끊어지지 않는 연고이니라. 이것이 열 가지이니 만일 모든 보살이 이러한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큰 지혜의 의지할 곳이 되느니라.”라고 하였다. 불교의 중요한 이백 가지 명제에 대해서 낱낱이 열 가지씩 답하였다. 이세간품 7은 이세간품의 마지막 권으로 묘각위의 19문 가운데 일부를 답하고, 이 법문의 명칭과 상서가 나타남과 부처님이 증명하심 등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현보살이 다시 아름다운 게송을 설한다. 세간에서 살되 세간을 떠나 있는 자세로 살고, 세간을 떠나 있으나 항상 세간 속에서 중생과 더불어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자세로 사는 보살의 삶을 가르친 이세간품이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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