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율겸행』은 전국선원수좌회 의장을 역임하고, 현재 문경 한산사 용성선원 선원장으로 있으면서 선교겸수(禪敎兼修) · 선율겸행(禪律兼行)의 불이선(不二禪) 운동에 힘쓰고 있는 월암 스님이 우리 시대의 수행자는 물론 불자들에게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지고 여기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한 책이다.
월암 스님은 그동안 선수행자로서 선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선수행에 관한 저서를 많이 출간했듯이 명실공히 선수행자로서 한국불교의 선맥을 잇고 있다. 금번 『선율겸행』은 선(禪)에 관한 내용과 더불어 교(敎)와 율(律)에 이르기까지 선 · 교 · 율(禪敎律) 삼학을 통틀어 탐색하고 그 결실을 맺었다.
선율겸행(참선과 계율을 함께 수행하는 것)의 가르침 아래 그 사상과 실천에 대한 탐색을 통해 이 시대 한국불교에서 어떻게 선풍과 율풍을 진작시킬 수 있겠는가에 관한 고민의 결과물이라고 저자가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을 통해 불교 수행자는 반드시 계율을 법답게 수지하는 것이 근본바탕이 되어야 하고 계율수지의 바탕 위에 선정과 지혜의 완성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특히 저자는 무생선과 무생계의 사상과 실천이 선계일치 · 선율겸행의 전거로서 충분한 인소(因素)가 될 것으로 믿기 때문에 무생선(無生禪)과 지공화상의 무생계(無生戒)에 대해 주목했다.
일찍이 청허선사는 계율의 그릇이 온전하고 견고해야 선정의 물이 맑아지고 선정의 물이 맑아야지 혜의 달이 비칠 수 있다고 하였다. 계율 · 선정 · 지혜는 셋이면서 하나이기 때문에 선정과 지혜를 닦는 수행은 반드시 지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계 · 정 · 혜 삼학을 등지(等持)하면 자연히 계선일치(戒禪一致), 선율겸행(禪律兼行)의 수행가풍이 진작된다는 가르침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월암月菴 스님
1973년 경주 중생사에서 불심도문(佛心道文) 대종사를 은사로 출가하였다. 해인사에서 고암상언(古庵祥彦) 대종사로부터 비구계를 수지하였으며, 중국과 한국의 선원에서 수선 안거 하였다.
전국선원수좌회 의장을 역임하였으며, 벽송사, 기기암 선원장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문경 한산사 용성선원 선원장으로서 선교겸수禪敎兼修 · 선율겸행禪律兼行의 불이선不二禪 운동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간화정로』, 『돈오선』, 『친절한 간화선』, 『선원청 규』(주편), 『좌선요결』, 『니 혼자 부처 되면 뭐하노』, 『생각 이전 자리에 앉아라』 등이 있다.
책을 펴내면서·5
서문·14
제1장
무생선無生禪과 무생계無生戒
이끄는 말·22
무생선無生禪·27
1 여래선如來禪과 무생선無生禪— 무생법인無生法忍·27
2 무생선의 실천— 무생행無生行·56
무생계無生戒·77
1 지공선사와 무생계·77
2 『 무생계경』의 구성과 사상·80
1) 『 무생계경 』의 구성·80
2) 『무생계경』의 사상·93
3 「무생계첩」 의 내용과 사상·107
맺는말— 선계일치禪戒一致·138
부1록— 문수최상승무생계법文殊最上乘無生戒法·152
제2장
계율과 선수행
이끄는 말·160
중국 남산율종과 수행— 계선일치戒禪一致·166
한국불교의 계율전승과 수행— 선율겸행禪律兼行·194
맺는말·227
제3장
선종의 계율수행
이끄는 말·232
달마선의 계율관·235
북종 신수의 계율관·244
남종 혜능의 계율관·253
혜능 이후 선종의 삼학등지·269
맺는말·294
제4장
천태天台의 계율수행
이끄는 말·300
천태의 계율사상·304
1 『범망경』에 대한 견해·304
2 『보살계의소 』의 계상戒相·312
3 『천태소지관 』의 계율사상·317
『마하지관』의 계율사상·327
1 계명戒名 과계상戒相·327
2 범계犯戒와 참회·338
1) 범계犯戒·338
2) 사참事懺·340
3) 이참理懺·343
맺는말·348
부록— 천태지의의 규범·351
제5장
청규와 수행
이끄는 말·360
청규제정의 의의·365
청규와 수행·378
1 규와 계율·378
2 법식쌍운法食雙運— 청빈가풍淸貧家風·386
3 좌선과 일상수행— 동정일여動靜一如·395
4 보청법의 실시— 선농일치禪農一致·406
맺는말·425
저자의 말
누가 한국불교의 주인인가? 지계(持戒)로 세상을 향기롭게 하고, 강학(講學)으로 세상을 정화하고, 수선(修禪)으로 세상을 밝히며, 교화(敎化)로 세상을 이익 되게 하는 수행자이다. 참다운 수행자는 계ㆍ정ㆍ혜를 균등하게 닦는 자이다.
소납은 주로 선원에서 생활하며 안거문화에 익숙한 편이다. 수선의 도량에 머물고 있으면서도 계율을 엄정히 준수하지 못한 측면과 교학 연찬에 소홀한 경향이 관습화되어 버린 것이 늘 마음에 걸린다. 항상 출가사문의 본분에 입각하려 노력하여도 일대사를 참구(參究)하는 것과 계율수지, 경전 열람이 늘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실제적 참구에서 삼학등지(三學等持)의 자세로 수행균형을 갖추겠다는 다짐도 잠시뿐, 이내 생심(生心)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미약한 발심의 결과이다. 이런 미온적 삶의 자세와 수행행태가 당장 개선되지 않음이 늘 무거운 숙제로 남아 있었다.
시절인연의 도래인지 선원에서 오랜 세월 함께 지내 온 도반들의 모임인 전등회(傳燈會) 선우(禪友)들이 비록 망칠(望七)의 세납(歲納)임에도 불구하고 수오지심(羞惡之心)을 무릅쓰고 그 정신만이라도 선율겸행(禪律兼行)의 종풍에 적극 동참해 보고자 재발심의 원력을 세워 보았다.
오늘날과 같이 승풍(僧風)이 쇠잔(衰殘)한 시절을 당하여 선원에서 오랜 세월 선지禪旨를 참구하던 선백(禪伯) 수좌들이 선율겸수(禪律兼修)의 정신을 앙양(昂揚)하고자 전계대화상으로부터 전계를 수지하게 된 것은 그 나름 선사(禪史)에 유의미한 법사(法事)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비록 옹달샘 물 같은 작은 서원이지만 장차 강이 되고 바다가 되어 해인(海印)의 삼매로 회향되어 많은 후학들이 선율겸행의 회상에 함께하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