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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문空門에 들어와 지금에 이르기까지
님들에게 보낸 편지와 엽서, 소참을 모아 엮다.
어느 산승이 차분히 쌓아 올려 나간 수선修禪공덕의 기록!
옛것과 지금, 말로 할 수 없음과 말로 드러냄…
그 오묘한 조화를 엿볼 수 있는 월암 스님의 에세이
“괴로움과 즐거움의 노예가 되지 말라. 지나가는 구름에 손만 흔들어라.”
『니 혼자 부처 되면 뭐하노』는 스님이 출가하여 지금까지, 강산이 다섯 번 바뀌는 세월 동안 상좌들과 불자들께 보낸 편지, 엽서, 문자 등을 모아 엮은 책이다. 주로 성현들의 말씀에 사족을 붙인 내용과 직접 쓴 글 모음집이다. 그동안 간화선의 대가로서, 학술서 위주의 책을 내온 월암 스님의 첫 에세이집이라 할 수 있다.
담박한 줄글에 담은 선수행자의 깨우침 이야기
스님은 이 책을 ‘망상집’이라고 표현한다. 그럼에도 “불조의 언설과 고덕의 행실이 그 속에 녹아 있기에 눈과 귀에 스치는 인연만으로도 불법의 종자를 심어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라고 책머리에서 밝히고 있다. 부제인 ‘금구망설’이란 불조의 금구성언金口聖言, 즉 ‘부처님의 말씀을 빌린 망설(妄說)’이라는 스님의 겸손한 표현이다. 부제대로, 이 책의 내용은 부처님의 말씀과 거기에 붙인 스님의 사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엽서처럼 짤막한 글귀 안에 무릎을 치게 하는 단박의 깨달음이 들어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고사(古事)와 고시 인용, 스님이 직접 지은 한시와 우리말 시가 어우러져, 읽어 내려가는 동안 선수행자만의 담백한 정신을 맛볼 수 있다.
출가한 지 50년 된 노승에게 하시는 어머니 말씀
“니 혼자 부처 되면 뭐하노?”
스님은 자신을 산승이라고 표현하며, 사람관계와 자연 속에서 느끼는 깨달음을 때로는 산문처럼 풀어내고, 때로는 시처럼 압축적으로 전달한다. 선문답처럼 알쏭달쏭하지만 되새김질하고 싶어지는 문장도 섞여 있다.
먼저, 책의 표제가 왜 《니 혼자 부처 되면 뭐하노》인지를 알려주는 1번 꼭지 <모정 단절>(18쪽)에서는 스님 자신의 사연이 드러난다. 자식이 출가한 지 50여 년이 되었는데도 가끔 전화를 걸어와 “한 중생도 제도 못 하면서 무슨 만중생을 제도할 끼고. 한 중생 다 죽고 난 뒤에 제도해라.”라는 어머니. 글에는 여전히 자식을 놓지 못하는 모정에 대한 애틋하면서도 묘한 심경이 담겨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좌절과 절망에도 담담히 일어나는 삶의 자세를 보여주는 <개망초>(28쪽) 그리고 “눈썹에 허공 하나 매달고 그냥 살다 그냥 간다”는 <복수초福壽草>(418쪽)는 각기 한 편의 시다. 이처럼 《니 혼자 부처 되면 뭐하노》는 선수행자만의 시각과 깨달음의 정수를 다양한 갈래로 만날 수 있는 독특한 에세이이다.
월암晴空 月庵
문경 한산사 용성선원장이며, 전국선원 수좌회 의장 소임을 맡고 있다. 불이선不二禪 운동을 통해 둘 아닌 세상 만들기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간화정로』, 『돈오선』, 『친절한 간화선』, 『선원청규』(주편) 등이 있다.
1장 가슴으로 우는 새는 소리가 없다
모정 단절 18 | 모든 바람은 지나가는데 21 | 내려놓아라 23 | 중노릇 25 | 개망초 28 | 산에 들어가 31 | 청빈가풍 33 | 선탈 35 | 칠불암에서 37 | 새벽에 홀로 앉아 39 | 한낮의 꿈 42 | 동지사설 44 | 천만 겁이 지나도 47 | 동안거를 시작하며 50 | 꿈인 줄 알고 52 | 무문관을 나오며 54 | 친절 57 | 소가 되어 59 | 도에 나아가는 것 61 | 죽음에 이르나니 63 | 참된 출가 65 | 본무생사 67 | 서호에서 69 | 구경행복 72 | 내일 모레 74 | 안거의 반 철을 지나 76 | 매화향기 한바탕 78 | 고요히 앉아라 81 | 한 생각 일어난 곳 83 | 경신안심 86
2장 생각 이전 자리에 앉아라
명리는 아침이슬 90 | 선교방편 92 | 삶의 풍경 그대로 94 | 명리를 구하지 않고 96 | 춘망사 98 | 매화향기 100 | 암자 한 칸 101 | 선다일미 103 | 아미산에 올라 106 | 유발상좌를 보내며 108 | 열 가지 이익 없음 110 | 칠불 정토에서 112 | 초명의 살림살이 114 | 대도무문 116 |생각 이전 자리 118 | 첫눈이 오면 120 | 선우를 맞이하며 122 | 본래면목 124 | 문에 서서 127 | 안영한담 129 | 염일방일 132 | 유채꽃밭에서 135 | 동안거 해제날에 138 | 소림초당에서 140 | 불이암에서 142 | 사청사우 144 | 사월의 기기암 146 | 전생 애인 148 | 귀에만 스쳐도 150 | 한 물건도 없다 152
3장 오늘 지금 여기를 살아라
수연자재 156 | 거울 하나씩 158 | 한산에 들어 160 | 차나 한잔 드시게 164 | 출가인은 166 | 중생은 분별이다 168 | 조주의 정신 170 | 색탑공탑 172 | 있다 없다 174 | 천년을 하루같이 176 | 설매화 178 | 봉암사에서 180 | 불이중도 182 | 취설화 184 | 오늘 지금 여기 186 | 단막증애 188 | 일 없는 사람 191 | 무상신속 193 | 우주적인 삶 195 | 대지의 마음 198 | 마음의 주인 200 | 조고각하 202 | 한산의 정원에 노닐다 204 | 한 생각 청정한 마음 206 | 여사인 208 | 산산수수 210 | 추위와 더위가 죽는 곳 212 | 하안거 해제일에 214 | 일야현자 216 | 마음을 거울처럼 218
4장 온 누리에 달빛이로다
산 다하고 물 다하고 222 | 보리심을 일으키면 224 | 보천삼무 226 | 무념 228 | 낙엽 구르는 소리 230 | 관왕지래 232 | 꿈을 깨야 234 | 생각 끊지 않네 235 | 화두수행 237 | 무금선원 239 | 원후취월 241 | 이뭣고? 244 | 그대로인 것을 247 | 한 생각 의심 249 | 천자에게도 절하지 않고 251 | 홀로 정상에 노닐다 253 | 본지풍광 255 | 운수납자 257 | 눈나라 259 | 도솔삼관 261 | 한 밤 자고 가다 263 | 십이각 265 | 반야의 노래 267 | 여래여거 271 | 영가이시여! 273 | 만 가지 경계를 따라 275 | 불이선 서원 278 | 천진불이라네 280 | 둘이 아닌 세상 282 | 양피사 옛 도량 284
5장 천번 만번 나고 죽어도
동자를 보내며 290 | 천당과 지옥 293 | 초발심이 정각을 이룬다 295 | 부처의 눈으로 보면 297 | 일수사견 299 | 생사고 301 | 밥 맛있게 먹어라 303 | 최잔고목 305 |벽송에 꽃이 피니 308 | 대장부 지조 311 | 후회 313 | 무수자상 315 | 화로 속의 눈 317 | 본래 공하다 319 | 연기 322 | 사람다운 사람 324 | 한 생각 돌이키면 326 | 고향엘랑 가지 마소 328 | 부처를 안고 330 | 텅 빈 허공 332 | 법연사계 334 | 가슴으로 피우는 꽃 336 | 참선을 권하는 시 338 | 전도를 떠나라 342 | 공부가 되든지 안 되든지 345 | 도를 생각하리라 347 | 오비이락 349 | 생사를 벗어나는 공부 351 | 마음을 가져오너라 353 | 꿈속 같아 356
6장 넘쳐흘러야 사랑이다
산빛 달빛 360 | 이정표가 된다네 362 | 산처럼 물처럼 그리고 거울처럼 364 | 물속에 비친 달 368 | 칠보시 372 | 무금선원에서 374 | 아픔이 공인 줄 알지만 376 | 몽자재 선원에서 378 | 둘 다 옳다 380 | 부즉불리 382 | 계정혜 384 | 아침이면 일어나고 387 | 일행삼매 389 | 봄볕 비치는 곳 391 | 오직 할 뿐 393 | 미움과 시기가 없기를 395 | 둘 다 좋은 사람 397 | 이름만 주지일 뿐 399 | 생사가 열반이다 401 | 산곡거사 403
안 태어난 셈치고 406 | 신령스러운 광명이 408 | 산은 산이요 412 | 밖에서 찾지 말라 414 | 돈오해탈 416 | 복수초 418
제자가 선사에게 여쭈었다. “수행하여 깨달아 마친 이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답하기를, “마을로 내려가 소가 되어라.”
또 물었다. “그럼 아직 깨닫지 못한 수행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절집의 소가 되어라.”
-59쪽
나를 놓아야 너를 얻듯이
번뇌를 깨트려놓아야
보리를 얻을 수 있고
생사를 깨트려놓아야
열반을 얻을 수 있고
중생을 깨트려놓아야
부처를 얻을 수 있다.
-133쪽
도를 깨달은 사람은 그 밝은 마음이 거울과 같다. 대상이 오면 그대로 비추지만 무엇을 바라는 것이 없기에 취함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대상이 아직 비치지도 않았는데 미리 먼저 마음을 보내지도 않는다. 사물이 거울에 이르면 명백하게 분별하지만 분별을 따라가지 않기에 그 자취를 남기지 않아 옳음, 그름의 시비가 끊어졌다. 이와 같이 마음을 텅 비워서 어떠한 대상이 오더라도 있는 그대로 응하므로 그 대상에 끄달리지 않고, 그 대상은 거울에 생채기 낼 수 없다. 원숭이마다 옛 거울 하나씩 가지고 놀고 있는데 까맣게 잊고 있구나.
-2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