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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되지 못한 채 말씀으로만 새겨두었다가 잊어버린 가르침이 한둘이 아니었다.”
유고집이 되어버린 이 책에는 저자의 진솔함과 성실함이 문장 곳곳에 배어있다. 저자는 작고하기까지 백유경의 한문 원서를 영역본과 대조해가며 매주 한 편씩 읽고 써 내려갔다. 저자의 문장은 불도를 닦는 수행자처럼 진지하면서도 ‘나를 돌아보는 읽기’로 부드럽고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다.
본래 백유경은 인도 승려 가사나(伽斯那, Ghasena)가 5세기경 지은 불교 우언집으로 그의 제자 구나비지(求那毗地, Gunāviddh)가 한역하여 《백구비유경百句譬喩經》이라는 이름으로 중원에 전한 것이다. 백유경 이야기의 대부분이 풍자와 해학이 돋보이는 비유에 교리를 원용한 해설을 덧붙인 2단 논법으로 되어있는데, 여기에 저자가 현대인에게 이 이야기들이 어떤 의미이며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 그만의 특유한 문체로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은 백유경 한역 경전 4권의 구성을 따라 총 4장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반추(反芻) 장에는 나를 돌아보는 거울로 삼아 깊이 새겨보면 좋을 어리석은 사람의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들이 담겼으며, 두 번째 정진(精進) 장에는 쉽게 열반을 이루려 하지 말고 끝까지 성실하라는 가르침의 이야기를 담았다. 세 번째 불도(佛道) 장에는 욕심과 집착에 물들어 깨끗하지 못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범부의 이야기를, 네 번째 허상(虛像) 장에서는 거짓과 허상에 매여 자신과 삶을 망치는 반면교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는 독자들에게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일독이 아니라 이독, 삼독, 다독하며 비유 이야기에 담긴 독자만의 진리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매일 이야기 한 편씩 100일 동안 꾸준히, 나를 비춰 보고 내 삶을 비춰 보는 거울로 삼아 읽어 나간다면 삶이 조금씩 맑아지리라. 저자 역시 그러한 믿음으로 써 내려가며 비워내지 않았겠는가.
이현수
수필가. 1954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났다. 2005년 「만시지탄」 외 9편으로 《대한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30여 년의 SK케미칼 연구소 생활을 마치고 좋은 글과 차와 음악을 벗하며 지냈다. 불교를 만난 후에는 경전을 읽고 칼럼을 쓰며 부지런히 불자 수필가의 삶을 살아왔다. 근위축증으로 하루하루 근육의 힘을 잃어가서 관풍이라 이름 붙인 휠체어에 의지하면서 지내야 했지만 부인이 날마다 찍어오는 사진에 글을 덧붙여 블로그에 올리는 부지런함에 지인들에게는 커다란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 당송 대의 한시를 풀어내서 블로그에 맛깔스러운 글을 올렸고, 만년에는 클래식에 심취하여 하루 한 곡씩 꼼꼼하게 챙겨 듣기도 한, 이 시대의 아름다운 문인이었다. 2020년 12월 28일, 사랑하는 가족과 작별인사를 나눈 뒤 잠자듯 조용히 세상과 인연을 내려놓았다. 그의 블로그는 유족의 바람으로 여전히 열려있어 지금도 가까운 사람들이 찾아와 들돌의 향기를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황홀한 책읽기》, 《강물처럼 흘러 바람처럼 거닐다》, 《풀어쓴 티벳 현자의 말씀》이 있다.
이미령_감수
동국대학교에서 불교를 전공했다. 어렵다고 아우성인 불교경전에서 참으로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난 뒤로는 언제나 불교경전과 관련한 칼럼을 쓰고, 경전을 풀어내며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불교 강사, 방송인, 번역가라는 이름보다 ‘경전 이야기꾼’이란 이름을 더 좋아한다. 들돌 이현수 님과는 불교책 읽기 모임인 ‘붓다와 떠나는 책여행’에서 만나 불교와 책의 도타운 인연을 이어 왔다. 지은 책으로는 『시시한 인생은 없다』, 『붓다 한 말씀』 등이 있다.
들어가며
반추(反芻) - 어리석음
01 소금만 먹다가 병을 얻은 사람
02 소의 젖을 모아두려고 한 사람
03 배에 머리를 맞아 다친 사람
04 죽음을 사칭한 여인
05 물 앞에서도 목말라한 사람
06 죽은 아들을 집에 두려고 했던 사람
07 다른 사람을 형이라고 부른 사람
08 왕의 창고에서 옷을 훔친 무지한 사람
09 아버지의 덕행을 찬탄한 사람
10 아래층을 짓지 않고 삼층집을 짓는 사람
11 자기 아들을 죽인 바라문
12 당밀을 끓이는 사람
13 화를 잘 내는 사람
14 길잡이를 죽여 제사 지낸 장사꾼들
15 빠르게 자라는 약을 준 의사
16 사탕수수에 단물을 뿌린 사람
17 반냥 빚을 갚으려다 헛돈을 쓴 상인
18 다락에 올라가 칼을 간 사람
19 바다에서 잃어버린 그릇을 강에서 찾는 사람
20 베어낸 살을 떼어낸 살로 갚으려고 한 왕
21 새 아들을 얻고자 키우던 아들을 죽이려 한 여인
정진(精進) – 완성을 선언하지 않는 삶
22 바다에서 얻은 침향으로 숯을 만든 사람
23 비단을 훔쳐 해진 옷을 가리는 데 사용한 도적
24 볶은 참깨를 땅에 심은 사람
25 불과 찬물을 함께 잃어버린 사람
26 눈을 실룩거리는 왕을 흉내 내다가 쫓겨난 사람
27 채찍으로 맞은 상처에 말똥을 바른 사람
28 아내의 코를 자른 남편
29 베옷을 불에 태운 가난한 사람
30 양을 잘 키우는 어리석은 사람
31 도공 대신 나귀를 데려온 사람
32 금을 훔친 장사꾼
33 과일을 얻으려고 나무를 베어버린 사람
34 백 리 길을 오십 리 길로 바꿔 부른 사람들
35 보물 상자 위에 놓인 거울
36 신통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망쳐버린 사람
37 소 떼를 죽인 사람
38 나무로 만든 물통에게 화를 낸 사람
39 쌀을 진흙에 섞어 벽에 바른 사람
40 머리에 머리카락이 없어 고민한 사람
41 함께 써야 할 것을 혼자 가지려고 다툰 귀신
불도(佛道) – 진리의 방식
42 귀한 모포로 죽은 낙타의 가죽을 덮어버린 사람
43 큰 돌을 갈아 작은 장난감 소를 만드는 사람
44 부침개 반 장으로 배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
45 지키라는 재물 대신 대문만 지킨 하인
46 소를 훔쳐 먹은 사람
47 원앙새 소리를 내며 꽃을 훔친 사람
48 나뭇가지에 얻어맞은 여우
49 털을 갖고 다툰 아이와 선인
50 환자를 치료하다가 두 눈을 튀어나오게 한 의사
51 다섯 명의 주인을 섬기는 하녀
52 왕 앞에서 음악을 연주한 사람
53 스승의 다리를 부러뜨린 제자
54 앞을 다툰 뱀의 머리와 꼬리
55 왕의 이발사가 되기를 바란 사람
56 없는 것을 달라고 한 사람
57 장자의 입을 밟은 사람
58 부친이 남긴 모든 재물을 두 조각으로 나눈 형제
59 병 만드는 것을 구경한 사람
60 연못 속에 비친 금 그림자를 본 사람
61 만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한 브라만 제자
62 꿩고기를 먹다 만 중환자
63 악귀 옷을 입은 이를 두려워한 사람들
64 귀신이 나온다는 집에서 맞선 두 사람
65 독이 든 환희환
허상(虛像) – 거짓의 무게
66 말로만 외우고 배를 운전할 줄 모르는 사람
67 함께 먹을 수 있는 떡으로 내기를 한 부부
68 자기가 다칠 것을 모르고 남을 해치려 한 사람
69 집안 전통이라고 하면서 밥을 빨리 먹은 사람
70 과일을 살 때 일일이 맛을 보고 산 사람
71 부인 둘과 함께 살다가 눈을 잃은 남자
72 쌀을 훔쳐 먹으려다가 입을 찢긴 사람
73 타고 간 말이 죽었다고 거짓말을 한 사람
74 씻지 않고 씻었다고 거짓말을 한 출가자
75 낙타와 항아리를 함께 잃은 사람
76 공주를 사랑한 농부
77 수나귀에게서 젖을 짜려고 한 사람
78 아버지 말을 듣지 않고 길을 간 아들
79 왕의 의자를 짊어지게 된 신하
80 관장약을 잘못 먹은 사람
81 곰에게 아들을 물린 아버지
82 엉뚱한 방법으로 밭에 씨를 뿌린 농부
83 엉뚱한 곳에 화풀이한 원숭이
84 달빛이 사라지자 엉뚱하게 개를 때린 사람들
85 눈이 아플 것을 걱정하며 눈을 없애려 한 여인
86 귀고리를 지키려고 아들의 목을 베어버린 아버지
87 빼앗은 재물의 가치를 알고 나서야 즐거워한 도적
88 콩 한 개를 주우려다 콩 한 줌을 잃어버린 원숭이
89 금족제비를 얻어 가슴에 품은 사람
90 길을 가다 돈주머니를 주운 사람
91 부자만큼 갖게 되기를 바란 가난한 사람
92 기분이 좋아지는 약에 취한 아이
93 곰에게 쫓기다 나쁜 꾀를 낸 노파
94 ‘마니’의 뜻을 잘못 이해한 어리석은 사람
95 어리석어 짝을 죽인 수비둘기
96 일부러 자기 눈을 멀게 하려고 한 사람
97 도적에게 귀한 옷과 금을 빼앗긴 어리석은 사람
98 큰 거북이를 잡은 어린아이
게송 - 풍자와 해학, 그 속에 담긴 삶의 지혜
끝마치며
모두 네 권으로 구성된 백유경은 본래 백 가지의 우화를 모은 것이었지만 후대에 두 가지가 소실되어 전해지는 아흔여덟 가지 이야기에 머리글과 권말 게송을 합해 ‘百喩’라 명명하였다. 이 책은 먼저 유머와 풍자성을 갖춘 이야기를 들려 준 다음, 이것이 우리 생활에 어떤 의미이며 무엇을 경계하는 것인지에 대해 풀어 쓰는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이 책의 주제어: #백유경 #불교 #우화 #풍자 #해학 #비유 #경전 #불교이야기 #비유고사
“경전에 쓰인 문자적 가르침이나 스승의 말과 행으로 받는 가르침 모두 불교적 지혜를 완성하는 도구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혜의 완성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도 빠져서는 안 되는 한 가지, 그것은 바로 ‘나’와 ‘나의 삶’이다.”
“장중하고 심오한 내용으로 가득 찬 다른 불교 경전에 비해 가벼운 마음으로 쉽게 읽히는 까닭에 백유경을 어린이용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만, 사실 이 경은 어른이 읽어야 할 경입니다. 말 그대로 세상의 ‘어른’인 것처럼 구는 우리네 보통 사람들이 한 번쯤 진지하게 읽고 그 맛을 오래도록 보면서 자신의 민낯과 만나게 하는 경이 바로 백유경인 것이지요.”
_이미령(감수)